Photo by Ja Tecson
몇 주 전 우리는 아티스트 소피아 창(Sophia Chang)에 관련된 뉴스를 쓰며 큰 실수를 하나 범했다. 그것은 바로 대만계인 그녀를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말한 것. 한국의 성인 ‘장’씨로 착각한 것도 있지만 다양한 해외매체로 접한 그녀에게서 왠지 모를 친근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나고 자라 뉴욕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소피아 창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다. 질끈 묶은 머리를 트레이드 마크로 굴지의 브랜드 사이를 종횡무진 달리는 그녀에게 개인적인 이야기와 성공을 물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내 이름은 소피아 창이고, 일러스트레이터/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뉴욕 퀸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당신이 사용하는 예명 ‘Esymai’에 담긴 의미는?
친구들이 만들어준 닉네임이다. ‘Esy’는 내 이름의 이니셜 ‘S.C’와 소리가 비슷하고 ‘Mai’는 ‘I am’을 거꾸로 쓴 거다.
뉴욕은 당신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뉴욕이 주는 영감에 관해 듣고 싶다.
너무 많다. 나는 뉴요커, 장소, 물건 등 모든 것에서 영감 받는다. 이곳에는 되게 훌륭한 자원이 많다. 아름다운 게 지천에 있으니 우리는 눈으로 보기만 하면 된다.
Photo by Courtney Dudley
뉴욕을 대표하는 것 중에 역시 힙합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신에게 힙합은 어떤 의미인가?
힙합은 내가 자라온 환경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나와 친구들이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음악이 힙합이었고, 스트리트 패션, 스타일, 예술까지 모든 영역에 걸쳐서 힙합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언제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커리어를 시작했나.
파슨스(Parsons School of Design)를 다닐 때부터다. 그곳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2010년도에 일러스트레이션 BFA(Bachelor of Fine Arts)로 졸업했다. 회사에서 인턴십도 잠깐 경험했다. 내가 졸업할 때 즈음엔 탄탄한 포트폴리오와 유명 클라이언트의 이름이 포함된 내 이력서가 완성됐지. 취미로 시작한 일이 꿈과 목표가 되었고, 그 뒤로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많은 시간을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배웠다.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려고 노력했다.
그 시절 학과 수업과 몇 번의 인턴십이 지금 하는 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나.
많은 사람이 내게 파슨스 학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다. 파슨스는 좋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엔 당신이 얼마나 절실히 원하는가에 달렸다. 나는 교수님, 학교 도서실, 학교 랩의 많은 장점을 경험했고, 단돈 1센트도 허비하지 않았다고 자부할 만큼 많은 시간을 파슨스에서 보냈다. 인턴십 경험은 나를 프로페셔널의 환경으로 밀어 넣었고 아티스트의 스튜디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프리랜서가 어떻게 일하는지, 다양한 잡지 매체와 어떻게 일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데드라인 설정, 다른 포지션과 함께 일하는 법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인턴십에서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Michael Jordan by Sophia Chang
당신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환경이 궁금하다.
많은 종류의 어도비(Adobe) 프로그램을 쓴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드림위버 정도가 있다. 또한, 내 책상에는 많은 미크론(Micron) 펜과 연필 그리고 지우개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도구들을 일본 문구점에서 사는 걸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알려 달라. 어떤 일러스트레이터에게서 가장 큰 자극을 받았는가?
상당히 많은데 일부를 말하자면 ‘Jillian Tamaki’, ‘James Jean’, ‘Matthew Tapia’, ‘Serge Nidegger’, ‘James Jeans,의 선 작업이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훌륭한 일러스트레이션을 결정 짓는 요소가 있다면?
뭐라 딱 꼬집기는 힘들다. 대중이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린 문제일 수도 있다.
‘Coming to America’ by Sophia Chang
일러스트레이션에 담긴 철학이 있다면.
딱히 없다. 내 그림 자체가 내가 그리는 모든 것들의 설명이자 해석이고,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다.
브랜드 스태플(Staple)과 많은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연을 맺게 되었나. 그리고 이 브랜드에서 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스태플 디자인에서 프리랜서 형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가끔 의류 브랜드 스태플과 그들의 잡지 ‘Reed Page’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한다. 스태플 대장인 제프 스태플(Jeff Staple)과는 대학교 2학년 때 기차에서 만났다. 나중에 그가 콜롬비아 대학과 파슨스에서 디자인 비즈니스 전략에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운이 좋게 그 수업을 들었고, 그와 일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당신은 컴플렉스 매거진(Complex Magazine), 바오하우스(Baohaus), 언디핏(Undefeated), 닥터 페퍼(Dr. Pepper), 삼성(Samsung) 등 거대한 기업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
가장 인상적인 협업은 안소니 부르댕(Anthony Bourdain)의 TV 시리즈 “No Reservations”이다. 매회 일러스트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왔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함께 일하기 매우 편한 클라이언트고, 프로젝트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3년, 당신이 한 작업 중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스포츠 브랜드 푸마(Puma)와 함께할 기회를 얻었다. 그들과 함께 스니커 컬렉션을 진행했다.
새해에도 푸마와의 협업은 계속되는 것인가? 이외에도 준비 중인 프로젝트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2014년 가을, 우리는 함께 협업 컬렉션을 런칭할 것이다. 소피아 창과 푸마에 의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나처럼 어린 여성 아티스트가 신발, 악세사리, 의류를 포괄한 글로벌 브랜드와 함께 일한다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이슈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일러스트레이터일 뿐만 아니라 여성 스트리트 패션 분야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가는 것 같다. 당신의 스타일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내 뿌리인 뉴욕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앞에서 힙합이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것처럼. 일반적인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스포츠웨어, 그리고 그것을 하이 패션과 믹스해서 입는다. 한 사람의 스타일은 타인이 당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뤄주길 바라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여성에게 말이다!
Photo by Ja Tescon
현재 뉴욕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를 하나 꼽자면.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는 MadeME다. 이것은 에린 마지(Erin Magee)의 패션 프로젝트이자 하나의 브랜드로 그녀가 원할 때만 발매된다. MadeME는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의 시즌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있다.
당신이 자주 가는 웹사이트를 알려 달라.
behance.net, fecalface.com, jjjjound.com 정도?
HBAZN의 티셔츠를 자주 입더라. HBAZN은 무엇인가? 당신도 연관됐나.
HBAZN은 내 친구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단지 재미를 위한 의류 콜렉션이다. 아시아인에게 초점을 맞췄고, 빈트릴(Been Trill)과 후드 바이 에어(Hood By Air) 디자인을 놀리기 위한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크루의 개념보다는 스타일과 의류에 관한 브랜드다.
스트리트웨어 신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중에서 여성은 손에 꼽을 정도로 그 수가 많지 않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스트리트웨어는 서브컬처 중에서도 작은 한 부분이며 이것 역시 힙합 문화를 중심으로 돌고 있어서 여성이 낄 공간이 많지 않다. 모든 여성이 그렇지는 않지만 다수의 여자들은 힐, 드레스, 라나 델 레이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힙합이 남성 위주의 문화라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힙합, 그리고 스트리트 패션은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감성과는 달라서 여성이 손을 대면 고유의 멋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 길거리 문화와 힙합에 관심을 가지고 자라서 남자친구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내 관점도 더 열린 편이다.
Photo by Ja Tescon
길거리 문화에 여성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성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한 그룹을 만들 생각은 없나.
필요 없다. 이미 여성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잘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크루를 형성하는 것보다는 각자 긍정적인 방향으로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한 걸로 알고 있다. 뉴욕과 한국의 서브컬처 신을 보면서 어떤 차이점을 느꼈나.
뉴욕은 많은 것들이 압축된 도시다. 나는 종종 커피를 들고 뉴욕을 걷는데, 이 도시를 산책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과 재미있는 것들이 이목을 끈다. 한국에 머무른 기간이 길지 않아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곳은 뉴욕과는 달리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넓게 퍼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보물을 사냥하러 다니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신과 연계된 에이전시 그룹 에센틱(Essentic)에 대해 알고 싶다.
에센틱 에이전시는 곧 완전한 형태를 갖출 것이다. 현재는 뮤지션을 중심으로 한 컨설팅과 매니지먼트가 주 업무다.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컨텐츠를 제작 중이고, 멋진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해달라.
한국은 프리랜서 환경이 척박한 편이다. 그래서 많은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 혹은 그 직업을 꿈꾸는 이들이 미국에 판타지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전통적인 대만 가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길 원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내 직업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부모님은 예전부터 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길 바랐고, 덕분에 지금 내 커리어는 외면당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당신의 성공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환상을 품고 뉴욕에 오지만, 오직 최고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지 않나. 당신의 야망, 활동 모두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가 중요하다. 실천하지 않는 한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
Photo by Courtney Dudley
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를 꿈꾸는 당신의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Notourious B.i.G가 말한 “The sky is the limit,” 당신의 꿈에 한계는 없다.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실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로 알려지고 싶다. 나는 해야 할 일들이 많아서 어떤 한 가지 최종 목표를 가질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내가 계획한 대로 인생이 흘러가지는 않으니까. 하하.
마지막 질문이다. 머리를 묶는 헤어스타일이 소피아 창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는데,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건가?
머리숱이 너무 많아서 관리하기 힘들어서 그렇다. 머리를 묶고 다니니까 많은 사람이 이 헤어스타일로 나를 알아보더라. 어느새 ‘Bun’이 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 뒤로 나는 ‘Bun Girl’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인스타그램에 내가 만난 사람들, 즐겨 가는 장소, 좋아하는 물건들과 내 머리를 함께 찍어 올리기도 한다.
*bun; 머리를 위로 묶는 속칭 똥머리
번역ㅣ 최장민
진행 / 텍스트 ㅣ 권혁인 최장민
도움 ㅣ Jaeki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