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스 코리아(Vans Korea)에서 지난 6개월간 심혈을 기울인 풀렝스(Full-Length) 스케이트보드 비디오, “계속계속(Gyesok Gyesok)”을 공개했다. 이 프로젝트는 서핑, 스케이트보드를 중심으로 여러 문화에 깊게 뿌리내린 브랜드 반스의 방향성을 밀도 있게 드러낸 뜻깊은 결과물이자, 한국 스케이트보드 신(Scene)이 올가을 건져낸 풍성한 수확이다. 팀 라이더 구현준, 안대근, 이민혁, 이원준 그리고 브라이언 몰롯(Brian Mollot)은 깨지고 구르기를 반복하며 뜨거운 여름을 통과했다. VISLA는 영상이 완성되기 직전, 반스 팀의 그림자를 조용히 따라간 필르머 황지석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들을 계속해서 다그친 프로젝트 매니저 브라이언 몰롯에게 긴 여정을 물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니 기분이 어떤가.
브라이언 몰롯(이하 브라이언): 일부 멤버들의 파이널 트릭이 남았다. 인터뷰가 끝나면 구현준의 파트를 마무리하러 갈 예정이다. 나는 이 프로젝트의 한 파트를 맡은 스케이터이자 전체 스케줄을 관리하는 매니저, 디렉터 역할을 맡았다. 팀원들이 자신의 파트를 끝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스케이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끌어내야 했다. 그건 편히 쉬는 것과는 완전히 반대의 개념이다. 높은 기준을 설정한 다음 이번 프로젝트에 임했다. 나는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잠재력을 믿기에 더 재촉했다.
황지석: 후련하다. 동시에 미련이 남는다. 항상 영상을 만들고 나서 아쉬운 걸 보면 내가 열심히 안 했나 싶기도 하고. 더 자주 나가서 찍을 걸 그랬다.
단순히 스케이터가 아닌 프로젝트 매니저로 참여했다. 스케이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던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을 텐데.
브라이언: 한국에 자리 잡고 난 뒤 약 6년간 영어 강사로 일했다.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매니저 일이 딱히 부담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이건 결국 해야 할 일을 인식하고 끝내게 만드는 과정이다.
스케이터와 학생 중 누가 더 다루기 힘든가?
브라이언: 스케이터. 기본적으로 뭔가에 얽매이길 싫어하는 애들이 보드를 탄다. “엿이나 먹어라, 나는 보드 탈 테니까”. 뭐 이런 거다. 야구 같은 스포츠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 스포츠는 규칙으로 멤버들을 묶을 수 있지만 스케이트보딩은 그렇지 않다.
같이 본 영상은 얼마나 완성된 상태인가? 지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황지석: 반 정도? 구상하던 그림이 조금 바뀌었다. 엔딩 트릭을 계속해서 시도하다가 끝내 실패한 경우도 있고, 여러 가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긴 탓에 영상을 수정 중이다.
Vans Korea Skate Team – 계속계속(Gyesok Gyesok)
반스 코리아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풀렝스 비디오다. 어떤 계기로 참여했나?
황지석: 반스 팀에 속한 스케이터들과 친해서 자연스럽게 참여했다. 지겹게 같이 놀던 애들이니까.
브라이언: 재작년쯤에 반스 코리아 마케팅 매니저인 브라이언 스미스(Brian Smith)가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지만, 바로 거절했다. 누군가에게 압박을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 1년이 지난 뒤, 그가 재차 제안했고 이번에는 수락했다. 대신 조건을 하나 말했다. 나는 반스 코리아의 이름으로 비디오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필르머로 황지석을 추천했고, 구현준을 팀 라이더로, 김평우를 플로우(Flow) 팀 ─ 정식 계약한 프로 스케이터와는 달리 특별한 제약 없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하는 스케이터 ─ 으로 데려왔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전부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진짜 존나 많은 일을 했다. So Fucking Hard.
어려운 일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나.
브라이언: 예전에 약 2년간 언성 매거진(Unsung Magazine)을 만들면서 한국 스케이터의 성향도 잘 알고 있었고, 비디오를 만드는 일 역시 각오하던 바다. 충분히 열정을 쏟을 준비가 된 상태였다. 난 스케이트보드에 미친 개새끼니까. 그러나 나는 재수 없는 매니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친구 같은 매니저가 되길 바랐다. 또한, 한 명의 스케이터로서 파트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 뭐가 어찌됐건 우리는 해냈다.
풀렝스 비디오를 만드는 과정은 스케이트보딩의 백미이자 가장 고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미적 구성, 패션, 트릭, 스타일, 브랜드, 스팟, BGM, 편집까지, 이 모든 걸 연결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의도하거나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
브라이언: 한국 스케이트보딩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싶었다. 다른 거 없었다. ‘RAW STREET SKATEBOARDING, RAW PARK SKATEBOARDING’, 이게 전부다. 그런 비디오를 만들려면 황지석이 필요했다. 그는 VX를 매우 잘 다루는 필르머이자 최고의 촬영감독이다. 이원준과 안대근은 기술이 좋고, 구현준과 김평우는 거친 매력이 있으며, 이민혁은 둘 다 갖췄다. 나는 계속 그들에게 “You can do it, I know it, try it!”을 반복해서 외쳤다. 함께 넥스트 레벨로 가고 싶었다. 이 비디오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Keep it raw, no bullshit’,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황지석과 몰롯은 몇 년 전, 몰롯의 개인 파트를 만들며 호흡을 맞춘 적 있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브라이언: 황지석은 최고의 친구다. 나는 그를 형제라고 생각한다. 2012년 당시 한국말도 못 하던 나를 묵묵히 따라오며 내 파트를 만들어줬다. 진짜 우리 둘밖에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정말 존경하지 않으면 ‘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황지석은 진짜 형이다. 바뀐 게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겠지. 뭔들 어때. 중요한 건 내가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그를 더 존경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황지석: 이번 프로젝트도 재미있었다. 옆에서 이 새끼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고.
“계속계속”을 찍기 전, 한동안 황지석의 비디오를 보기 힘들었다.
황지석: 텔레스코프 스케이트보드(Telescope Skateboards)라는 브랜드를 운영했는데, 필르밍과는 또 다른 의미로 빡셌다. 사업이 잘 안되면서 슬럼프가 왔다. 스케이트보드뿐만 아니라 인생이 안 좋은 쪽으로 기우는 것 같더라고.
그런 와중에 긴 프로젝트를 하나 마쳤다. 아무래도 필르머에게 풀렝스 비디오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은데, 막상 끝나니 어떤가?
황지석: 좀 더 어릴 때 풀렝스 비디오를 만들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몸이 예전 같지 않다. 필르밍은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근데 이제는 조금씩 힘에 부친다는 걸 느낀다.
기존 반스 글로벌에서 제작한 스케이트보드 비디오가 이번 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나?
황지석: 딱히 의식한 건 없다. 그냥 내 마음대로 했다.
브라이언: 이 문제는 매우 복잡하다. 그들은 전부 미국인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영향이 없다고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반스라는 브랜드를 부정하는 일이다. 다만 한국인은 한국인이다. 나는 그 둘을 굳이 연결하려고 하지 않았고, 이 비디오가 한국의 스케이트보딩에 관한 것이길 원했다.
네가 선택한 필르머 황지석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도 궁금하다.
브라이언: 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각자의 방향성과 비전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나는 내 비전이 있고, 황지석은 그의 비전이 있다. 나는 그가 진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스케이트보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걸 하게 하자’라고 계속 되뇌었다.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라면.
브라이언: 음, 너무 많은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홍콩 투어다. 이때 팀 라이더들에게 많은 애정을 느꼈다. 우리는 모든 걸 함께했다. 다 같이 먹고 자고 보드를 탔다. 그게 최고의 에피소드다.
황지석: 동감한다. 친구들이 트릭에 성공할 때마다 정말 기분 좋았다. 나는 그걸 그냥 주워 담기만 하면 됐다. 마치 낚시꾼이 물고기를 낚는 것처럼.
가장 의외의 모습을 보인 친구는?
브라이언: 나는 안대근과 일하는 게 매우 좋았다. 그의 헌신에 감명받았다. 그는 계속해서 노력했다.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지치지 않고 트릭을 시도했다. 반면에 보드를 타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마치 수줍은 소년 같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친구인데, 어쩔 땐 그가 되레 고양이로 보인다. 하하. 구현준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뚜렷하다. 나는 그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시킬 수 없다. 김평우는 완전 미친놈이고.
황지석: 다른 친구들하고는 이전부터 함께했지만, 안대근과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건 처음이다.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친해졌다.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 같았는데, 알고 보니 맛이 간 놈이었지.
한국에서 6년간 생활한 외국인 스케이터가 한국 풀렝스 비디오의 스팟을 선정했다는 점도 재미있다. 특별히 고려한 부분이 있다면.
브라이언: 서울에 오래 살아서 그 부분은 자신 있었다. 서울에는 멋진 스팟도 많고, 비교적 쉽게 보드를 탈 수 있다. 내 고향 필라델피아에서는 매주 경찰에 쫓겨야 했다. 그러나 이곳은 대부분 무관심하다. 하하.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친 적은 없었나? 프로젝트를 완수한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이었나.
황지석: 이번 여름 특히 더워서 낮에 보드 타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몰롯은 현재 술도 안 먹고 파티도 즐기지 않지만, 스케이터들은 대부분 파티 보이니까. 헨즈(The Henz Club)에서 진탕 놀다가 다음날 스팟에 도착해서 술 깨는 거지, 뭐. 하하. 보통 토요일 오전부터 몰롯이 닦달하면 하나둘씩 기어 나왔다. 파티에 가지 않는 대근이만 멀쩡하게 보드를 타고, 나머지는 술 깨고 보드 타고 그랬지.
브라이언: 맞다. 진짜 ‘Party Animal’이다. 그러나 그건 존나 상관없다. 나는 이 영상을 만든다는 사실이 흥분돼서 잠을 못 이룬 적도 많다. 팀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게 현실로 이루어질 때 쾌감은 최고지. 꿈을 꿨고, 이뤄냈다. 황지석은 그걸 만들어냈다. So Fucking Perfect.
비디오에서 BGM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게 트랙을 구성했는가?
황지석: 아무래도 브랜드 영상이다 보니 완전히 내 마음대로 짤 순 없었다. 평소 좋아하던 밴드인 불싸조에 한 곡을 요청했고, 이외에도 라이프 앤 타임, 나잠수, 제이신에게 음악을 부탁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다.
“계속계속”이라는 이름은 마음에 드나?
브라이언: 마음에 든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스케이트보드 비디오의 제목을 짓기도 했다. “초코파이”, “부대찌개” 같은 것들. “계속계속”은 내가 늘 하는 말이다. “계속, 계속!”, “잘하고 있어요, 한 번 더!”, “아직 시간 있어요, 그럼 타!”. 이런 말을 프로젝트 동안 입에 달고 살았다. 내 삶과도 이어지는 문구다. 나는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해서 그걸 이루고 마는 성격이다. 완전히 미친놈이지. 존나 미친, 개 미친놈인데 난 이런 미친 나 자신이 좋다. 그래서 반스가 나한테 일을 맡긴 건가 싶기도 하다. 하하.
황지석: 상하이 투어 때 몰롯이 사정상 참여하지 못했다. 투어 기간 중 다 같이 그의 말투 ─ 계속, 계속! ─ 를 따라 하곤 했는데, 이걸 제목으로 정해도 재밌을 것 같더라. 한국에 돌아와서 몰롯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니 되게 좋아하던데.
자유분방한 스케이터지만, 풀렝스 비디오를 완성하는 과정은 철저히 계획적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모든 총대를 몰롯이 멘 것 같은데, 팀에게 서운하지는 않았나?
브라이언: 오히려 나는 팀이 나를 싫어할 거라고 확신한다. 하하. 때때로 스케이터와 매니저는 사이가 안 좋아진다. 스케이터가 트릭을 시도하고 또 시도하다 성공했을 때, 우리는 친구가 된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안 나오면 나는 다시 고약한 매니저가 된다. 이 짓을 반년간 반복했으니 아무래도 나를 좋아할 수가 없겠지. 그간 아무도 나에게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난 과격해서 할 말이 있으면 편하게 말해보라는 식이라고. 그런데 지석, 혹시 팀이 나를 싫어하나?
황지석: 그래, 모두가 널 싫어한다.
브라이언: 존나 그럴 줄 알았어.
이제 프로젝트가 끝났으니 다 같이 헨즈에서 놀아도 되는 건가.
브라이언: 씨발, 알게 뭐야. 이제 밤새도록 파티해도 상관 안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문화적인 차이를 느낀 적 없나? 서울과 필라델피아는 여러모로 완전히 다른 지역일 것 같은데.
브라이언: 스케이트보드는 스케이트보드다. 지역은 상관없다.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다. 물론 성향은 아주 다르지만, 나는 한국이 좋고, 한국 스케이터도 좋다. 스케이트보딩은 예술이다.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강요한다고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타는 거다. 필라델피아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행위는 범죄나 다름없다. 한국은 비교적 안전하다. 캘리포니아는 해도 짱짱하고, 매일 보드 타기 좋은데 필라델피아는 경찰도 지랄이고, 날씨도 존나 구리다. 그게 우리를 배고프게 한다. 우리는 그냥 늑대 새끼처럼 스케이트보딩에 목말라 있었다. 날씨 좆까고 보드나 타자,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모든 게 완벽했다. 한국인으로 살아왔다면, 잘 모를 이야기다. 이곳은 판타지다.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너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무엇인가.
브라이언: 음,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황지석이라고 말하겠다. 나는 그와 함께라면 뭐든지 멋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일을 제안했다. 황지석이 없으면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우린 듀오다. 황지석도 내가 없었으면, 이 일을 감히 하지 못했을 거라고 장담한다. 그리고 이원준. 그는 멋진 스케이터다. 마술을 부리듯, 나를 놀라게 한다. 새벽까지 말도 없이 미친 듯이 보드만 타는 진짜 멋진 친구지.
황지석: 올해 할 일이 생겨서 좋았다. 이 새끼 뒤치다꺼리하는 일이긴 한데, 뭐 그것조차도 좋았다. 좋은 추억이었다.
몰롯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절제된 생활이 스케이트보딩에 더 창의적인 영감을 주는가?
브라이언: 그런 건 아니다. 한때 매일 취해서 보드를 탄 적이 있다. 근 몇 년 사이 내 파트가 담긴 영상이 두 개가 나왔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완전 술에 취해있을 때였고, 나머지 하나는 술과 담배를 모두 끊은 상태였다. 나중에는 또 운동에 미쳐있었지. 그런데 스케이트보딩의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나는 건강한 삶을 사는 편이 더 잘 맞았다.
별 차이가 없다면 왜 굳이 술, 담배를 끊은 건가?
브라이언: 음주를 멈추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나는 술을 엄청나게 좋아했고, 오토바이도 좋아했다. 미친 듯이 달리다가 죽을 것만 같았다. 술에 취해서 홍대와 강남을 왔다 갔다 하는 삶을 그만두고 싶었다. 맥주를 한 캔 따면 끝까지 마시니 아예 마시지 않기로 했다.
벌써 한국에 온 지 6년째다. 몰롯이 바라본 한국 스케이트보딩은 어떤 모습인가?
브라이언: 스케이트보딩은 적어도 미국인에게 낯선 문화가 아니다. 주변에 보드 타는 친구를 만나기도 쉽고, 어른이 보드 타는 애들에게 소리 지르는 일도 다반사다. 한국 아저씨가 애들에게 꺼지라고 하면, 애들은 보드를 그만 타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인은 똑같이 “Fuck you”라고 외치고 그냥 계속 탄다. 경찰이 오면 그때 도망가는 거지.
Vans Korea Skate Team – 계속계속(Gyesok Gyesok) B Sides
이번 비디오를 제작하면서 기존의 무언가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나? 뻔하고, 쿨한 척하는 그런 것들.
브라이언: ‘RAW AND SKATING’. 쉬운 트릭은 피하려고 했다. 쉬운 트릭을 파트에 넣을 거면 아름다워야 한다. 팀이 쉬운 트릭을 시도했다면 아마도 내가 막았을 거다. 나는 비판적인 사람이다. 가끔 필라델피아에 있는 친구들을 떠올린다. 나는 필리 친구들과 찍은 영상을 로컬 스케이트보드 숍 TV 화면에 나오게 하고 싶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사람들이 영상을 보면서 “너무 쉬운 트릭이야”라는 말을 하지 않길 바랐다. 보통 미국이나 호주, 영국 스케이터들이 아시아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보면 꼭 두 가지 이야기를 꺼낸다. 첫째는 기술이 너무 쉽다는 것. 둘째는 스팟이 멋지다는 거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황지석: 쉬운 건 계속 잘랐다. 몰롯이 팀 라이더를 재촉하고, 부추기는 과정에서 살짝 문제가 있기도 했다. 어려운 트릭을 시도하는 건 중요한 부분이지만, 여태까지 내가 해온 방식과는 조금 달랐다. 그러나 이건 반스의 비디오였고, 매니저인 몰롯이 추구하는 방향을 따르는 게 맞았다.
황지석은 오랜 시간을 스케이트보드 필르밍에 투자했다. 요새 어린 국내 필르머들의 영상을 본 적 있나? 시대가 조금씩 바뀌는 걸 느끼는지.
황지석: 큰 자극이 된다. 예전처럼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한두 명씩 필르밍하는 친구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은 중요한 부분이고, 즐거운 일이다. 외국의 경우에는 필르머 여럿이 서로 찍은 영상을 공유하면서 비디오를 만들어낸다. 예전부터 그게 참 부러웠다. 요즘에는 이한민 같은 친구가 부지런히 클립을 만들어내니 나도 자극을 많이 받는다. 실제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필르머들이 부지런하게 영상을 찍으면, 결과적으로 신이 커지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VX-1000을 바탕으로 한 영상의 거친 질감은 황지석의 트레이드마크다. 세계적으로 많은 필르머들이 VX를 버리고 HD로 갈아타는 와중에 오랜 VX 유저로서 무엇을 느끼는가?
황지석: VX는 이미 한번 존폐 위기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HD 또한 최첨단의 자리를 내줬지만, HD가 흐름을 탈 때도 VX를 고집하는 이들은 존재했다. VX는 영원할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영원한 VX 필르머로 남겠다는 말인가?
황지석: 그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VX가 잘 구현한다는 말이지, 결국 카메라는 하나의 매체일 뿐이다. 아마 HD가 새로운 시대의 VX처럼 되지 않을까 한다. 5년 정도 쓰니까 VX도 지겹더라고. 4K가 등장하고 나서 다시 HD가 구식이 되지 않았나? 계속 옛날 걸 쓰는 거지 뭐. 나도 HD 세트를 갖춘 뒤 HD에 맞는 무드의 비디오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 VX를 쓰겠지?
황지석: 맞아. 존나 영원한 거니까.
앞서 말했던 슬럼프 이야기로 잠깐 돌아가보자. “계속계속”이 다시 필르밍에 좋은 동기부여가 됐나?
황지석: 이 일을 지금까지 할 줄 몰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딱히 살아가면서 큰 욕심을 부린 적은 없는데. 하하. 좋은 계기였다. 나에게는 이게 최선의 삶인 것 같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스케이트보드 비디오를 만들면서 돈을 벌고 있으니까. 꼭 스케이트보드가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스케이트보드 외에도 영상물에 관심이 많은 편 아닌가? 다큐멘터리나 뭐, 그런 것들.
황지석: 어렸을 때,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물을 만들고 싶었지. 근데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니까. 니네가 하는 일만 봐도 끔찍하다고. 하하. 취미로 음악 하는 사람이 있듯이 나도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영상을 만들고 싶은 거지. 뭐, 그게 화면 보호기가 될 수도 있는 거고.
필르밍을 시작한 20대 초반에 바라보던 스케이트보딩과 30대를 넘긴 지금에 와서 돌아보는 그 시선에 차이가 있을까?
황지석: 내가 미친 듯이 보드를 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촬영은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스케이트보드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니까 계속할 수 있었지. 사실, 돈 많이 벌려면 딴 일 해야 하는데 아직도 나는 이게 가장 멋지거든. 다들 마음속에 하나쯤 있는 그런 거, 그게 나한테는 스케이트보딩이란 말이지. 그래서 지금까지 이렇게 존나 멍청하게 하는 거다. 웃긴 건 그러다 보니 이제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더라고.
요즘 눈여겨보는 친구가 있다면?
황지석: 곽경륜. 예전부터 좋았다. ‘멋’이라는 기준을 세운다면 아마도 그 친구와 의견이 맞지 않을까. 조금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같은 걸 추구하는 거니까. 나중에 다 병신이 될지도 몰라. 하하.
“계속계속”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싶다. 이 프로젝트 이후에도 이어나가고 싶은 것은?
브라이언: 건강이다. 보드 타다가 다친 뒤로 지금까지도 아픈데, 빨리 건강을 되찾고 나서 다시 보드를 타고 싶다. 보드 타면서 계속 재밌게 살아야지. 이제 더는 내 파트를 만들지 않을 계획이다. 보드는 영원히 타겠지만.
수고했다. 한 마디 남겨 달라.
브라이언: 계속, 계속. 스케이트보딩은 존나 짱이야. 나는 진짜 이걸 존나 사랑해. 내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것보다 보드를 더 사랑한다고. 가장 순수한 사랑이지. 신을 믿진 않지만, 이건 우주가 내려준 선물이야. 마치 내 자식인 것처럼. 만약 보드를 안타는 사람이라면… 음. 내가 스케이트보드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것처럼 너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뭔가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황지석의 의견이 궁금하다. 내가 너무 미친놈인가?
황지석: 맞아.
브라이언: 나쁜 건가?
황지석: 좋은 거지.
브라이언: Let’s fucking get it. LET’S FUCKING GET IT! 존나 매일 해. 나는 한국어를 못하고, 황지석은 영어를 잘 못해. 그래도 우린 해냈어. 그러니까 쉴 수 없어. 나도 내가 쉬길 바래. 진심으로. 난 제정신이 아니야. 인터뷰 이제 끝났지? 나는 오늘 밤에도 황지석과 함께 또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갈 거야. 지금은 다쳐서 보드를 빡세게 탈 수는 없지만.
왜 스케이트보드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가?
황지석: 스케이트보드? 존나 도시를 후비고 다니니까. 많은 사람이 그냥 걸어 다니는 이곳에서 우리는 계속 뭔가를 만들어내는 거지. 낮에는 보드 타고, 밤에는 클럽에 가. 완벽하잖아.
진행 / 글 │ 권혁인 최장민
사진 │ 박효신, 구현준
*해당 기사는 지난 10월에 발행한 VISLA Paper 2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