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사이저 계 스탠더드 장비부터 간소화된 버전까지, 영등포에 자리한 아담한 규모의 작업실은 갖가지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 등 음악 장비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랜 시간 훵크(Funk)에 몸담은 모과(Mogwaa)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과 협업을 이어가며 넓은 스펙트럼의 음악을 선보이는 중. 밴드 기타리스트로 다년간 닦아온 음악 경력은 현재 그가 이어가는 프로듀싱 작업의 기반이 되었다. 햇수로 5년째, 본인에게 영감을 준 과거 훵크 음악을 재해석하는 과정부터 자신의 이야기까지 그는 찬찬히 풀어냈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신시사이저, 드럼 머신을 주로 이용한 신스 훵크(Synth Funk)와 모던 훵크(Modern Funk) 장르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 모과(Mogwaa)라고 한다. 작년에 첫 EP 앨범 [Déjà Vu]를 냈다.
본인의 사운드클라우드(Soundcloud) 계정을 통해 ‘Representing YDP(영등포)’라 소개하더라.
영등포에서 쭉 자고 나랐기 때문이다. 소개란에 딱히 쓸 말도 없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성격도 아니라 영등포 일대가 활동 반경의 전부다. 심지어 자주 가는 술집도 영등포에 있다. 하하.
신스 훵크(Synth Funk)나 모던 훵크(Modern Funk)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간단히 풀어 말하면 신스/모던 훵크는 말 그대로 80년대 훵크를 기반으로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을 많이 사용하는 음악 장르다. 다수의 뮤지션이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때 당시 뮤지션들이 썼던 방법을 내 방식대로 풀어가는 게 나만의 신스 훵크라 생각한다.
80년대 훵크를 다른 악기로 접근하는 것인가?
어찌 보면 악기는 당시의 것과 비슷한 걸 선호하고, 사운드도 특별히 다르지 않은 소스를 사용한다. 솔직히 그 시대 그 사람들이 느꼈던 감정, 생활 방식은 지금과 분명히 다르기에 내가 따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래서 그 시절과 달라진 내 생활 방식과 태도를 음악적으로는 비슷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려 한다. 마치 같은 연필로 다른 걸 표현하는 것처럼.
크게 영향 받거나 선호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프린스(Prince)의 음악은 현재 훵크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위 바이블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스 훵크 계열에서는 역시 카시프(Kashif)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카시프의 여러 작업은 오늘날 훵크 뮤지션들이 추구하는 모던 훵크나 신스 훵크의 기본이자 내게는 가장 큰 영감의 대상이다.
프로듀서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 밴드 펑카프릭 부스터(Funkafric Booster)에서 수년간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기존의 밴드 활동과 독립 아티스트로서 활동하는 데 차이점이 있다면? 차별적인 두 활동 영역의 간극에서 풀어나가기 어려운 점(팀워크) 등이 있었는지.
혼자 작업하는 걸 좋아한다. 밴드 활동처럼 함께 작업할 때 서로 의견이 충돌하는 바람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 있다. 아무래도 불편하다. 혼자 할 때 더 잘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최소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밴드 활동 시절부터 개인 작업을 염두에 뒀나?
아니다. 밴드 활동과 개인 작업 사이에는 몇 년의 갭이 있다. 유학을 다녀오고 군대 생활을 마치니 총 4~5년이 걸렸다. 그즈음 음악적으로 혼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유학은 어디로 갔나?
스물한 살 페루의 한 음악학교서 공부했다. 하하. 원래 쿠바에 가고 싶었는데 공산주의 국가라 부모님의 반대가 컸다. 이후 군대 대신 베트남에 다녀왔으니까 총 세어보면 4년 정도 해외 생활을 했다.
프린스와 카시프라는 걸출한 뮤지션 외에도 본인 음악에 영향을 준 뮤지션을 꼽자면?
과거 80년대 밴드 ‘사랑과 평화’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김명곤. 신시사이저를 주로 활용한 세련된 음악을 선보였다. 사랑과 평화의 베이시스트 송명섭도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All Time Favourite’ 리스트가 있나? 곡이나 앨범이라든지.
굉장히 힘든 질문이다. 굳이 고른다면 프린스의 [1999]. 아니, [Sign ‘O’ the Times].
개인 작업을 제외한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도 눈에 띈다. 신세하(Xin Seha)의 앨범 [7F, the Void Remixes]의 수록된 “Tell Her” 리믹스 트랙에 코멘트를 남긴다면?
신세하가 연락했다. [7F, the Void]의 트랙 중에서 리믹스할 트랙을 직접 고를 기회가 있었는데 “Tell Her”를 택했고, 작업을 진행했다.
프로듀싱 이외에 디제잉 또한 병행하더라. 디제잉 욕구가 큰 편인가?
디제잉은 분명 재밌지만 만약 부업처럼 되어버린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다. 지금은 간간히 아르바이트 형태로 하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면 에너지를 상당히 뺏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한 번씩 주변 친구들이 여는 파티에 게스트로 하는 긱(Gig)은 부담 없다.
본인이 지향하는 모던 훵크를 집대성한 데뷔 앨범 [Déjà Vu]가 탄생하게 된 일련의 과정이 궁금한데, 제작한 경위에 관해 한 마디 부탁한다.
작업한 곡들의 모음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닌 까닭에 트랙 발매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클리크 레코드(Clique Records)의 앙투안(Antoine)과 우연히 연이 닿았다. 앙투안은 내가 전에 일하던 레코드 바 ‘곱창전골’의 단골손님이었고, 그는 디제이 에어베어(DJ Airbear)와 되게 자주 왔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그에게 작업하던 트랙을 테이프로 발매하고 싶다고 전했다. 앙투안과 음악 취향이 잘 맞아서인지 앨범 발매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앨범은 클리크 레코드를 통해 작년 3월에 발매했다.
클리크 레코드를 통해 테이프를 출시하고 나서 얼마 뒤 시카고의 스타 크리처 레코드(Star Creature Records)를 통해 LP를 발매했다. 이 과정 또한 예기치 않았는지.
그렇다. 디제이 에어베어가 시카고 기반 뉴메로 레코드(Numero Records)의 A&R(Artist and Repertoire, 아티스트의 트랙을 발굴, 계약, 육성 및 제작을 담당)을 내게 소개해줬고, 그 친구와 한국판을 보러 돌아다니다 금세 친해졌다. 이 친구가 내 음악에 관심을 가질 만한 레이블에 알선해주겠다 했고, 그중 한 군데인 스타 크리처에서 발매하기로 했다.
한국 음반은 주로 어디서 디깅하나?
황학동에 자주 간다. 그러나 요새 한국판은 많이 사지 않고 외국에서 디제이 친구들이 놀러 올 때 주로 한국판을 골라준다. 가요판 트는 가게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어떤 걸 원하는지 다 안다. 이참에 차라리 에어비엔비 투어를 할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하하.
본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도 재밌지만, 매일 보는 친구들을 만나도 항상 재밌고 그렇다. 성격 탓이다.
얼마 전 헤드룸 라커즈(Headroom Rockers)에서 진행하는 [profile:]을 통해 미노루 후시미(Minoru Hushimi)를 언급하면서, 전통 악기 소리를 가미한 음악에 관심을 표했다. 본인의 음악에도 한국 전통악기를 얹을 생각이 있는지.
그건 내가 쉽게 잘 해낼 자신이 없다. 아직은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언급한 미노루 후시미가 사용한 악기는?
그는 일본 전통 현악기를 많이 써서 훵크에 얹곤 한다. 과거에 김수철 씨도 기타를 산조로 풀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통 악기를 활용해 훵크로 풀어보려는 시도를 해보지 않을까 싶다.
직접 악기를 만지면서 창작의 욕구나 영감이 생긴다고 말한 적 있다. 혹여 음악 외적으로도 영감을 얻을 때가 있나? 일련의 과정을 말해줘도 재미있을 것 같다.
사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특정한 무드를 떠올리면서 영감을 얻는다. 추상적이지만, 내가 사는 동네 또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집에서 작업실까지 걸어가는 데 이십 분가량 걸리는데, 음악을 들으며 서서히 걷다 보면 특별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모과의 음악은 헤비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사운드, 드럼 머신이 특징이다. 주된 작업 과정은?
악기를 컴퓨터에 연결하게끔 도와주는 미디 장비를 통해 컨트롤한다. 드럼머신과 연결되어있어서 소리를 골라놓은 다음 시작하는 편이다. 작업 도중 드럼 비트 등 사운드를 골라 천천히 만들어 쌓아가는 경우도 있다.
신시사이저마다 특징이 모두 다른데, 몇 가지 모델을 소장하고 있나?
신시사이저마다 소리 내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작업실에는 총 여섯 가지를 뒀다. 주노 식스(JUNO-6)는 신스 연주자나 많은 밴드가 꼭 하나씩 소장하는 스탠더드 장비로, 80년대 음반 중 LP 뒷면 악기를 기재하는 란에서 자주 보인다.
JUNO-6 다음으로 많이 쓰이는 건 뭔가?
DX-100라는 장비인데, 80년대 중후반 야마하(Yamaha)에서 야심차게 FM(Frequency Modulation, 주파수 변조) 방식으로 만들었다. 허비 행콕(Herbie Hancock)과 카시프도 많이 썼고 나중엔 로저 트라우만(Roger Troutman) 같은 인물도 토크 박스(Talk box, 기타 이펙터의 한 종류로, 끝에 달린 튜브를 입에 물고 소리를 통과해 ‘와와’ 이펙트를 내는 장치)할 때 많이 사용하던 악기다.
다른 악기로는 옛날 장비의 새로운 버전을 소장하고 있다. 미니무그(Minimoog)가 간소화되어 나온 ‘Moog Sub 37’, 신시사이저 계 스탠다드 장비인 프로펫(Prophet)의 2000년대 버전 ‘Prophet 08’을 쓰고 있다.
신도시(seendosi)에서 라이브를 한 적 있는데, 당시 직접 본인의 악기를 가져가서 진행했나? 어떤 장비를 썼는지.
라이브 세션의 경우 밴드 단위가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려 한다. 신시사이저 두 대를 가져갔는데, 가끔 토크 박스를 할 때도 있고, 기타를 칠 때도 있다.
기타리스트로 음악을 시작했다. 기타가 신시사이저 연주에 도움이 되었나?
그렇다. 특히 베이스라인을 쓸 때나 리듬을 칠 때 느낀다. 물론 건반부터 시작하지 않아서 차이점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기타의 영향으로 리듬이나 라인 부분에서 접근하는 방식이 새롭지 않나 생각이 들곤 한다.
소장한 기타를 소개해달라.
색깔이 예뻐서 샀다. ‘G&L Guitars’는 펜더(Fender) 창립자가 나중에 펜더에서 나와서 따로 새로 회사를 차린 곳이다. 녹음할 때 많이 쓰며, 검은색 기타 위에 검은색이 덧입혀져서 마치 80년대 컬러 매치하듯 샀다.
배워보고 싶은 다른 악기가 있다면?
플루트(Flute). 나중에 밴드를 한다면 플루트를 불지 않을까 싶다. 옛날 소울이나 재즈 트랙을 듣다 보면 바비 험프리(Bobbi Humphrey)나 휴버트 로스(Hubert Laws), 허비 만(Herbie Mann)이 연주하는 플루트가 내는 소리가 되게 청아하고 인간적으로 들리더라. 숨소리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가 보다.
에이블톤(Ableton)도 사용하나?
그렇다. 작업할 때는 거의 쓰지 않지만, 라이브 연주할 때 주로 쓰는데 에이블톤은 플레이백(Playback, 직접 연주하지 않고 미리 녹음한 음악을 재생하는 행위) 하기에 편하고 리버브(Reverb)나 딜레이(Delay) 같은 이펙트를 손쉽게 조절할 수 있다. 라이브를 준비할 때 기본적으로 신시사이저 두 대, 랩탑과 에이블톤을 챙긴다.
2017년 본인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앨범 5개를 소개해달라.
매일 음악을 들어서 뭐가 작년 것인지 모르겠다. 싱글 같은 경우는 ‘SASAC’과 ‘Dreamcast’의 7인치 앨범이 나온 적 있는데 수록곡 “Liquid Deep”과 “Summer Love”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앨범은 신세하의 [7F, the Void]. 하하.
[Déjà Vu]에 수록된 트랙 중 “Midnight Madness”와 “Hong Xiao Lou”를 많이 들었다. “Hong Xiao Lou”의 제목은 무슨 의미인가.
옛날에 자주 가던 영등포의 중국집에서 모택동이 즐겨 먹던 요리인 홍소육을 팔았다. 중국어로 ‘Hong Xiao Lou’다.
‘Friendly Potential’에서 진행한 믹스셋은 어떤 계기로 참여했나?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는데, 방송을 진행하는 친구들이 앙투안 지인이라 [Déjà Vu] LP 발매와 동시에 참여했다.
LP는 언제부터 모았나? 얼마나 소장 중인지 궁금하다.
300~400장 정도? LP는 고등학교 때부터 모았다. 중간에 외국에 있을 때 주춤하다가 한국 와서 진짜 돈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레코드를 트는 데서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게 됐다.
LP를 수집하는 젊은 세대가 늘었다. ‘백 투 더 올드스쿨’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나?
트렌디한 사람들은 트렌디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인 취향 혹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LP 발매가 더 잦아졌다 해도 외국에서는 이전부터 뮤지션이 꾸준히 LP로 발매했으니 딱히 감흥은 없다.
추후 스타 크리처를 통한 앨범 발매가 계획되어있나?
스타 크리처에서 7인치, 12인치를 각각 발매할 예정이고, 다른 아티스트와 12인치 LP 발매를 위해 작업하고 있다. 아마 4월에 클리크에서 새로운 테이프 작업물을 낼 것 같다. 두 번째 EP 앨범인데 [Déjà Vu]가 멜로디 부분이 도드라졌다면 차기작은 사운드트랙처럼 집에서 누워있다 잠들기 좋은 음악이다.
헤드룸 라커즈(HEADROOM ROCKERS)를 통해 본인이 추구하는 장르가 신스/모던 훵크지만, 나아가 하우스, 발레아릭(Balearic)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가?
나를 소개할 때 신스 훵크를 한다고 했지만 내 음악이 신스 훵크 영향으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잖나. 하우스도 많이 들었고, 가끔은 앰비언트(Ambient)도 들었기 때문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발전까지는 몰라도 계속 변모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왜 이런 걸 하나 싶을 수도 있겠다. 하하.
하우스, 훵크는 대중에게 잘 알려졌지만, 발레아릭은 생소하다.
발레아릭은 장르보다 일종의 무드라고 생각한다. 설명하기 되게 애매하다. 내 작업을 굳이 구분하자면, 다소 실험적인 음악이나 하우스 등의 타 장르 쪽은 협업으로 많이 진행하고, 훵크는 앞으로 에잇볼타운에서 내놓을 계획이다. 지금은 기린과 작업하고 있다.
2018년 새해 개인적인 계획이나 소망이 있나.
기회가 된다면 해외 투어를 나가보고 싶다.
투어 장소는?
중국 한 번 가보고 싶다. 주변 친구들이 재밌다고 하더라. 대만? 최근 그쪽 신도 활발해진 것 같다. 아니면 인도네시아, 홍콩 등 아시아 쪽.
진행 / 글 │ 이준용
사진 │백윤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