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옐(Yahyel)을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 오프닝에 선 이들이 강렬한 잔상으로 남아 정작 메인 아티스트의 공연이 시시했던 기억. 아직 정규 앨범 두 장만을 내놓았지만, 오로지 음악으로 확실한 자신들만의 궤도를 잡아가는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외계인을 자처한 그들의 독특한 세계관은 구글링만 해봐도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확인해보면 야엘은 결국 하나의 인종으로 살아가며 겪는 스테레오타입으로부터 벗어나 한 명의 개인으로 살겠다는 의지를 표방한다.
1990년대, 시부야케이(Shibuya-kei)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면, 최근 도쿄를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세대의 음악은 소규모지만 특유의 성질을 과감히 드러내기에 단순히 트렌드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기존의 대중적인 취향과 선을 긋고, 제이팝(J-POP)을 포함한 팝으로 분류되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시대성을 반영하는 물결, 그 중심에 밴드 야옐이 있다.
아옐의 밴드 구성을 소개해달라.
카즈야(Ooi Kazuki): 야옐은 다섯 명이다. 보컬 이케가이 슌(Ikegai Shun), VJ 감독 야마다 켄토(Yamada Kento), 신시사이저 스기모토 와타루(Sugimoto Wataru), 샘플러 시노다 미루(Shinoda Miru). 나는 드럼을 맡는다.
어떤 계기로 밴드 활동을 시작했나.
슌: 정말 단순히 음악으로 모인 느낌이랄까. 멤버 모두 각자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어쿠스틱에 가까운 음악을 했고 야마다는 영상, 시노다는 다른 밴드에서 활동했으며 카즈야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음악 신(Scene)은 국내에 한정된 경향이 강하다. 제이팝을 들어본 적 있을 거다. 제이팝은 해외에서 탄생한 음악도 아니고 그저 국내의 요구에 따라 생성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 세대는 해외 음악의 동일한 타임라인을 공유했고, 일본 음악과 세계의 것이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면서도 우리만의 자연스러운 아웃풋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제이팝의 스테레오타입을 탈피해서 야옐의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멤버 모두 동의했다.
야옐이 지향하는 음악이 과연 무엇인지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슌: 정해진 건 딱히 없다. 굳이 말하자면 세계를 무대로 한번 겨뤄볼 수 있는 음악을 하는 것? 아시아 국가에서 태어나 살아가다 보면 꽤 많은 스테레오 타입이 우리를 규정한다고 느낀다. 특히 일본의 경우 자국의 문화적 요소를 소프트 파워로 밀어붙이려는 경향이 있어서, 전부 전형적인 ‘일본’ 같은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니까. 이는 애초에 한 개인이 삶을 살아갈 때 감정 표현을 억압하거나 정체성 확립을 방해하기도 한다.
우리가 도쿄에서 어떤 도시 생활을 보냈는지 각자의 생각,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잔존하는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을 극복하고 싶었다. 음악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 전 세계에 닿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Yahyel – Once
첫 앨범 [Flesh and Blood]를 발표하고 여러 공연에 나섰지만, ‘안이한 해시태그’에 태그되어 꽤 힘든 한 해를 보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 음악을 한다는 건 각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개인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오는 위화감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고 했는데.
슌: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 밴드를 시작했을 때 우리가 일본인이고, 일본에서 음악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겼다. 스테레오타입이 포함하는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음악을 그 자체로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해외의 입맛에 맞춘 음악을 추구하면서 그 출처를 숨기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일본의 도시에서 태어났고, 이를 바꿀 수 없기에 도망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최근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간극에서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싶은 게 요즘이다. 결국 음악을 통해 솔직히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차기작 [Human]을 통해 내고 싶었던 목소리는 무엇인가?
슌: 데뷔 앨범은 어떤 의미로 우리가 누구인지 거리를 둔 채 만들었다. 전에 언급했지만, 우리가 어떤 외관을 갖고 있고, 어느 나라 출신인지 공개하는 것 자체가 큰 장애물 같았다. 표현하고 싶은 욕구의 총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결국, 두 번째 앨범을 만들기 전까지 우리가 설정한 틀이 오히려 우리를 가둔다는 의구심이 일 년 동안 이어졌다. [Human]은 이러한 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거나,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완벽하게 전달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내놓은 결과물이다.
Yahyel – Pale
이전 세대에 견주어 보아 다양한 음악 플랫폼과 자유로운 형식의 음악은 장르의 벽을 허무는 듯 보인다. 오늘날 일본 음악 신을 바라보며 어떤 느낌을 받는지 궁금하다.
슌: 일본의 음악은 지금도 어떤 의미로 굉장히 특수하다. 일본은 일본만의 색깔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조금 비굴해져 가는 느낌이랄까. 틀에 자신을 가둬서 그 밖의 것은 남들의 몫으로 돌리는 느낌이다. 현재 일본 음악 신에 흥미로운 아티스트가 생겨나고는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직 적다고 본다.
작품이 되려 자신을 구속하게 된다고 말한 적 있다. 의도와 다르게 대중이 규정하는 일련의 현상으로부터 이제는 좀 의연해졌나.
슌: 쉽지 않았지만, 많이 익숙해졌다. 초반에는 우리 음악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우리의 실력 부족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결국, 아시아 스테레오타입을 상대로 저항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 보인다. 한국 또한 이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 탈출구가 있다고 한다면?
카즈야: 드럼 연주자로서 바라보자면, 영미권 문화가 스킬 면에서 가장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시아 내에서 이를 가장 빠르게 도입하고 있는 게 한국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갖가지 연주 영상을 보거나 아티스트를 찾다 보면, 결국 이 질문의 답은 플랫폼으로 귀결한다. 음악을 듣는 새로운 방법,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애플 뮤직과 스포티파이가 나를 자유롭게 한다.
슌: 카즈야의 말에 공감한다. 한국이 고정관념의 틀에 가장 직선적이고 진취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더 비굴한 편이다. 왜냐하면, 막상 본인들은 바깥(外)의 것들은 할 수 없다고 벽을 쳐버리니까. 결국, 유일한 방법은 정면으로 대결하는 일밖에 없다. ‘우리는 이거다!’라고 말하는 일. 아티스트가 그렇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다.
야옐의 음악은 일본어를 쓰지 않는 데다가 영상을 통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데, 이 또한 같은 맥락인가.
슌: 일본어를 쓰지 않는 이유는 사실 영어가 편하기 때문이다. 난 일본어, 영어를 동일한 수준으로 구사해서 그런지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한, 영어 자체가 광범위한 플랫폼이라 더 많은 사람이 음악을 들어주는 것 같다. 영상에 관한 생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영상에서 모습을 감추어도 구체적인 메시지를 통해 전달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제는 특별히 고집부리고 싶지 않다.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바를 앞세우는 게 중요하다.
디스토피아에 기반을 둔 세계관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
슌: 나일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선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일본은 인구 면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애초에 문화적 표현 행위 자체가 타부(Taboo)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게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나라니까. 일본의 사회적 구조를 깨달은 이라면 분노를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한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 또는 생각을 표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때는 언제인가.
슌: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 살기 힘들었으니까. 너흰 어때.
카즈야: 난 일본에서 존경할 만한 플레이어가 없어지고 나서부터다. 해외의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알면 알수록 열등감이 생기는 것 같다. 그 근원에는 부족한 음악적 역량이 자리하지 않을까.
켄토: 최근 2, 3년? 하하. 영상으로 내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한 게 그쯤부터라 이를 구현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라이브에서 보컬 슌의 춤과 제스처가 음악에 더욱 몰입하게끔 한다. 순간순간 즉흥적으로 몸을 맡기는 건가.
슌: 사실 아무 생각 없다. 하하. 내 제스처는 즉흥적이다. 나는 내 동작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지만, 야옐을 시작하고 나서 내 동작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처음엔 멤버들이 내 동작을 보고 대단하고 말해서 자각했다. 그때부터 프론트맨이 된 것 같다.
카즈야는 드럼으로 새로운 기술적 시도를 해보고 싶다고 들었다.
카즈야: 천천히 진행 중이다. 해외에서 표준으로 쓰이는 장비들이 일본 내에서 사용되지 않는다거나, 일본의 음악이 뒤처진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대등한 위치에 서기 위해서 많은 걸 갈구하는 편이다. 요약하면 새로운 걸 더욱 빠르게 도입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DATS와 겹치는 멤버들이 있는데, 두 밴드는 어떤 관계인가?
카즈야: 예전에 한 인터뷰를 통해 DATS와 야옐이 음과 양 같은 존재라 말한 적 있다. DATS가 상대적으로 밝은 분위기, 사람을 끌어들이는 양의 기운이라면 야옐은 그 반대라는 얘기를 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두 밴드를 비교하기보다는 아예 무관하다고 볼 수 있다. 뭐 양쪽 다 재밌으면 그걸로 됐지.
VJ의 시각적 퍼포먼스도 야옐의 음악을 완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듯하다. 어떤 점을 고려해서 영상을 구성하는가?
켄토: 어려운 질문이다. 메인은 영상이 아니라 라이브이기 때문에 과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사운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거나 이미지 자체를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열정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곡이라면 빨간색을 쓴다거나 순수 시각적인 부분에 더욱 주목한다.
영상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켄토: 중학교 때 프로그래밍을 배웠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이나 하드웨어 설계를 하면서 컴퓨터를 다루는 실력이 늘었다. 그때까지 영상을 직접 제작해본 적은 없었지만, 친구의 부탁으로 시작했다. 친구가 “너는 영상을 만들 것처럼 생겼어”라는 말을 듣고는 그게 짜증나서 “응, 나 영상 만들 줄 알아”라고 대답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하하.
아이디어는 보통 어디서 오나.
켄토: 페티시즘. 영상의 진정한 매력은 머릿속에 있는 것 모두를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상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무방하다.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만들고 싶은 것을 찾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걸 만드는 것. 다시 말하면 이는 일종의 충동, 페티시즘이다.
작업은 보통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켄토: 작업 의뢰가 들어오면? 하하. 그러고는 방에 처박힌 뒤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간다. 밥은 전부 우버 잇츠(Uber Eats)로 해결한다. 요새는 삼 일 정도 걸리지만 길면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내며 음악을 계속 듣는다. 음악이 가진 콘셉트와 페티쉬를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할까 생각하면서 콘티(촬영 대본)를 짜고, 이어서 장소 섭외, 회의, 촬영, 편집을 거쳐 색을 만든다.
한국 첫 내한 소감이 어떤가?
슌: 한국 힙합 신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여성 뮤지션의 활약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기엔 세계를 목표로 음악 하는 밴드가 일본보다 많아 보인다. 그런 한국에서 공연할 수 있었기에 굉장히 감회가 새롭다.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이라면.
슌: XXX, 페기구(Peggy Gou).
카즈야: 예지(Yaeji).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흘러나오는 유능한 한국 뮤지션의 트랙 역시 즐겨듣는다.
켄토 : 혁오, 시피카(CIFIKA), 키스에이프(Keith Ape). 아, 트와이스와 BTS, 빅뱅도 있다.
카즈야: 2PM, 인피니트도. 하하.
한국 아이돌을 잘 아는 눈치다.
카즈야: 사실 개인적으로 케이팝(K-pop) 팬이다.
켄토: 블랙핑크? 나도 엄청 보는 편인데, 한국 아이돌의 뮤직비디오는 퀄리티가 상당히 높다.
카즈야: 음악의 수준이 일본의 아이돌, 쟈니즈와 비교했을 때 훨씬 높다. 아메리카 팝 문화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트레이닝 방법도 체계적인 것 같고.
슌: 사운드 프로덕션 또한 대단하다. 어떻게 믹스하는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앞으로 야옐의 계획은 무엇인가?
슌: 세계에 음악을 퍼뜨리는 일이다. 야망을 표출한다기보다는 원체 할 말이 많은 밴드라 그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거다. SXSW에 참여했을 당시 음악적으로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느꼈고, 이제 한 발 한 발 솔직한 방법으로 정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