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어느날, 그 저녁의 주인공은 김병덕이었다. 한쪽 구석에 바른 자세로 앉은 그에게 모두의 관심이 쏠려 주변은 계속 북적거렸다. 심지어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을 기회를 엿보는 이도 있으니 흡사 아이돌 가수의 팬미팅 같기도 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그날 클리크 레코드(Clique Records)를 채운 인파는 모두 김병덕의 새로운 컴필레이션 앨범 [Experiment No. X]를 누구보다 먼저 만지고 듣기 위해 모였기 때문이다. 30년 전 세상에 나온 김병덕의 음악을 새롭게 경험하려는 한마음으로 세대를 초월한 그들의 사교 파티는 길게 이어졌다.
그와 대화할 틈을 노리던 우리를 흔쾌히 주선한 인물은 해당 앨범을 제작한 음반 레이블 대한 일렉트로닉스(Daehan Electronics)의 커티스(Curtis). 그 덕분에 우리는 주인공을 잠시 독점했다. 김병덕의 거침없는 화법이 주도한 한 시간 남짓, 건물 밖 벤치에 걸터앉은 우리의 담소는 여러 방면을 건드리며 작곡가 김병덕의 철학을 탐구했다. 이를 기록한 글과 사진을 공개한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이름은 김병덕이다. 단소와 같은 국악기, 기타, 신시사이저 등을 다루며 작곡하는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Multi instrumentalist)라 할 수 있다.
오랜 기간 소식이 들리지 않았는데, 인터뷰는 얼마 만인지?
인터뷰는 기억이 잘 안 날 정도로 오랜만이다. 전 세계의 실험 음악을 하는 음악인 대부분의 소식을 접하기 힘들지 않을까. 활동할 기회가 현저히 적은 데다가 실제 클래식, 재즈, 록 같은 소위 주류 신(Scene)에 속하기도 모호하다. 또한, 공연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관객 수로 보답받기 힘들다.
일찍부터 음악에 전념했다고 들었다. 고등학생 때는 이미 가발을 쓰고 밤무대에 올랐고, 밤업소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경력만큼 록, 재즈, 포크 등 다양한 장르를 두루 경험했는데, 음악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음악이 좋아서다. 어릴 적에는 집에서 혼자 통기타를 키며 비틀즈(Beatles)의 유명 넘버나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곡을 많이 연습했다. 그 시기 학교에서 기타를 치는 친구를 만나 같이 놀듯이 어울리며 합주를 자주 했는데, 그 친구의 제안으로 팝, 록 음악 위주의 밴드를 만든 것이 계기라면 계기다.
Graphic Design by Post Poetics.
94년 [Pot Concerto] 앨범을 발매하고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음도’라는 개념을 설명한 거로 안다. 이번 [Experiment No. X]로 새롭게 김병덕의 음악 세계를 만날 이들을 위해 가볍게 풀어서 설명 부탁한다.
음도란 말은 내가 직접 만들었다. 소리를 통해 도(道)에 접근한다는 의미다. 거창한 건 아니고, 내가 음악을 오랫동안 듣고 주물러보니 자연스럽게 느낀 바가 있는데, 기타 소리든 타악기 소리든 간에 자기가 내는 음에 아주 몰입한 연주자는 소리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다. 인도의 쿤달리니(Kundalini) 명상을 생각해보라. 나아가 쿤달리니에 영감을 얻어 섹스와 명상을 연결한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Chandra Mohan Jain)도 비슷한 말을 했다. 라즈니쉬 왈, 섹스할 때 사랑하는 상대방에게 한눈팔지 말고 집중해야 비로소 올라갈 수 있는 경지가 있단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연주자의 집중력이 극에 닿아 도달하는 상태, 이를 도라고 난 정의했다.
대학 시절 이야기다. 학교 개교기념일 행사 때 신청서를 내고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공연 전, 관계자가 무대에서 무엇을 할 건지 물어보더라. 이에 난 음도를 시험할 것이라고 간단히 대답하고 기타를 들고 나갔다. 약 7분간 공연했는데 어떤 특정 곡을 연주한 건 아니고 하울링과 피드백으로 낸 소리에 오롯이 집중하다 갑자기 폭발시켜서 관객들을 몰입하게 하는 구성으로 7분을 채웠다. 일반적인 기타 연주를 기대한 관객은 당황했겠지. 그날 관중 앞에서 이런 공연을 펼친 이유인즉슨, 나와 동료나 제자들은 음도에 공감하고 감상을 공유하는데, 과연 일반 가요를 주로 듣는 이들이 내 음악에 빠져들 수 있을지, 그것이 알고 싶어서 시험 삼아 나선 것이다. 7분의 공연이 끝나자 잠깐의 적막 후 한 2만 명 남짓한 인파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나는 그 순간 음도라는 말에 확신과 계속해서 관철해나갈 용기를 얻었다. 벌써 삼십 년도 지난 일이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떠오르는 일화다.
그렇지. 지미 헨드릭스는 물론 로이 부캐넌(Roy Buchanan)도 “The Messiah Will Come Again”을 보면 분명 극의에 접근하려 했다. 그들은 각자 영역의 두말할 것 없는 권위자다. 하지만 감히 후배로서 말하자면, 도라는 개념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입구까지만 들어갔다 나온 것이다. 나는 같은 입구에서 “아, 우리 선조가 다뤄왔고 동양에서 자주 말하는 도라는 개념이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에 더 깊게 비집고 들어갔다. 지미 헨드릭스의 자유분방함이 자연스레 도달한 도의 경지를 한국의 정서로 분석하고 정립하는 것. 그 길이야말로 이 상업적인 세상에서 음악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음악에 몰두한 지 40년이 넘었다, 지금의 마음가짐을 처음 음악을 접했을 때와 비교한다면?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했다. 그냥 록이 좋았다. 70년대에는 하드 록에 미쳐서 무작정 따라 했다. 반면에 나만의 음악을 하는 지금은 많이 정리된 상태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내 음악을 듣고 놀라는 친구들을 보며 새삼 느낀다. 내가 나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말이다.
김병덕을 소개할 때 한국 대중음악계의 큰 이름, 김진묵과 성시완을 빼놓을 수 없다.
91년도 여름 김진묵 씨를 먼저 알게 되었다. 그 이전에도 김진묵 씨가 부산 내 레코드 매장에 들린 적이 있기에 서로 구면인 사이지만 딱히 친분은 없었다. 그러다 곡을 녹음하러 서울 오는 길에 지나치는 수많은 휴게소 중 하필 옥천 휴게소 화장실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중 앞에서 누군가 세수하다 고개를 확 들었는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니 김진묵 씨가 아닌가. 그래서 아는 척을 하고 서로 근황을 묻다가 내가 녹음하러 서울에 가는 중이라고 말하자 곧장 대답했다. “그렇다면 한번 들어 봅시다”. 흔쾌히 김진묵 씨를 내 차로 안내해 당시 데모 테잎에 녹음된 항아리 협주곡, “Pot Concerto”를 틀었다. 듣고 크게 감명받은 그는 그 후 녹음실에도 찾아와 내 음악의 평론을 쓰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이를 계기로 친해져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김진묵 씨가 성시완 씨를 만나 나에게 받은 “Pot Concerto” 데모 테잎을 들려줬는데 듣고 심취한 그가 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물었다고 하더라. 그 시기 앨범 [Old is funny] 작업을 갈무리한 나는 이때다 싶어 그가 운영하는 시완 레코드에 전화를 걸었다. 이후 전개는 일사천리였다. 성시완 씨는 새로운 앨범 [Old is funny]뿐만 아니라 이전 대도 레코드를 통해 나온 [Experiment No. 2]까지 다듬어서 재발매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나는 그를 따라 시완 레코드로 둥지를 옮겼다.
지금도 활발하게 창작 활동 중인지?
미발표한 분량만 해도 앨범 서너 장 정도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은 없지만, 준비 시간이 길고 무엇보다도 같이할 연주자를 모집하기 어려워서 자꾸 미루고 있다. 연주자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한국에서 적합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조금 한다 싶으면 돈을 찾아 가요 세션으로 가더니 이젠 그마저도 종적을 감췄다.
오랜만에 나온 앨범 [Experiment No. X]는 어떻게 완성한 앨범인가.
이번 [Experiment No. X]는 처음부터 끝까지 커티스의 열정으로 만든 앨범이다. 시작은 1992년 대도 레코드에서 발매한 나의 앨범 [Experiment No. 2]를 커티스가 서울 황학동의 돌 레코드에서 우연히 구매한 순간부터다. 한국적인 무언가를 그 앨범에서 찾았다고 생각한 커티스는 내 번호를 수소문 끝에 알아내서 연락했다. 수화기 너머 들리는 말이 어눌하기에 그저 교포인 줄 알았으나 그가 부산까지 찾아와서 만나보니 생판 외국인이더라. 지구 반대편에서 온 아들뻘의 인물이 30년 지난 내 음악에 열정을 보인다는 점이 신기했다.
[Experiment No. X]는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곡 선정 기준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항아리 협주곡 “Pot Concerto”는 제외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머지는 모두 커티스가 알아서 정했다. 음악 잘 모르는 사람은 나를 그저 항아리나 두드리는 항아리 도사로 여기더라. 수십 개 작품 중 하나일 뿐인데. 내가 아니라 남이 들었을 때 좋은 곡을 모았다는 점에서 [Experiment No. X]는 참신하다.
김병덕에게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듣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다. 이야기 하나 해줄까. 돌아가신 윤이상 선생님은 나에게도 대선배이시고 아버지뻘이다. 음악 좀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윤이상 선생님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알고 존경한다고 답한다. 하지만 그 선생님의 작품을 들어봤나 물어보면 다 안 들어봤다고 한다. 그분의 음악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 아니고 현대음악이 전반적으로 정리가 덜 되었다는 얘기다. 현대음악가 대부분은 고전음악으로부터 탈주할 방법만 궁리한다. 때로는 주사위도 굴리며 각종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음악을 만드는데, 시도는 좋지만, 대중이 듣기에는 난잡하다. 그래서 안 듣지. 소위 귀가 열렸다고 하는 김진묵 씨 그리고 나 같이 현대음악을 직접 하는 사람에게도 재미없는 작품이 많다.
예를 들어, 부산 자갈치 시장을 표현한다고 해보자. 녹음기 들고 자갈치 시장에서 할머니들 떠들며 생선 써는 소리를 생으로 녹음하고 이리저리 짜깁기해 제목 “자갈치 시장”, 작곡 김병덕. 이렇게 내놓으면 하나의 작품이다. 자유로운 시도는 좋다. 하지만 만들 때 과연 재미가 있을까? 존 케이지(John Cage)가 4분 33초 동안 피아노 앞에 달랑 앉아만 있는 행위에는 철학적인 뜻이 있지만, 거기에 음악적인 가치가 있나? 난 없다고 본다. 저런 식의 작업물은 일종의 기록 정도로 남을 수는 있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없더라. 왜냐, 만드는 내가 재미없거든. 만드는 사람이 재미없는 음악은 듣는 사람도 재미없다. 장르를 초월한 진리다.
현대음악이든 고전음악이든 듣는 사람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어떻게 해야 청자가 내 음악에 빠져들 수 있는지 그 방법을 항시 연구한다. 동시에 나는 우리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자유로운 기법을 많이 참고한다. 내 곡 중에서 현대음악 주법이 적용된 걸 꼽아보자면, 우선 점묘 기법으로 접근한 “Experiment No. 2”가 있다. 점묘니 뭐니 복잡하게 들리지만 크게 난해하지 않은 곡이다. 듣다 보면 곡에 쭈욱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방금 말한 연구의 성과다. 용 그림이 그려진 [New Trilogy]의 “New Trilogy”에도 같은 맥락으로 현대음악 주법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즈 록에 얹어본 시도가 녹아 있다.
특정한 잣대를 들이밀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취향이 다르다’는 말로 적당히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사람을 만난 적 있는가. 난 그럴 때마다 말한다. 취향이 다른 게 아니고 당신 수준이 낮다고. 대학교에서 대수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기초 방정식을 풀 수 있다. 하지만 기초 방정식까지 풀 줄 아는 사람은 대학 수준의 수학을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이치다. 재즈, 하드 록, 현대음악을 듣는 사람은 요즘 말하는 온갖 종류의 팝송을 이해하지 못해서 안 듣는 게 아니다. 단지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딱 잘라 말해서 이는 수준의 문제다.
레코드 음반은 유물이 아닌 일종의 책이다. 일반적인 책처럼 음반은 개인의 음악적 수용 폭을 넓힌다. 즉, 공부해야 지식이 넓고 깊어지듯 음악을 듣는 귀도 훈련해야 얻어지는 것이란 얘기지.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들이 갑자기 무릎을 ‘탁’ 치고 찾아 듣지는 않겠지. 오히려 화를 엄청나게 내더라. 하지만 나 같으면 분해서라도 당장 레코드숍에서 음반을 구해서 들어볼 거 같다.
김병덕에게 한국적인 소리란 무엇인가.
한국의 소리라 하면 뭐 가야금 뚱기고 늘어지며 “흐으으~” 떨리는 종류가 쉽게 떠오를 거다. 이는 확실히 한복을 입은 소리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배워왔고 그나마 들어본 조선 시대 말기의 흐느끼는 음악인데 난 그게 너무 듣기 싫다. 결코 한국적인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더 깊이 들어갔다.
기악이 성악보다 고매한 서양음악처럼 국악도 그 우아함은 악기 연주에 스며있다. 산조, 정악 같은 악기 위주의 사조에서 난 내가 원하는 소리를 들었다. 절세 검객이 칼질을 여러 번 하는 법 없듯 한음 한음에 혼을 담는 우리의 기악. 그것이 바로 수준 높은 한국의 소리다.
또 다른 영감의 소재가 있다면?
작곡은 예술이고 작곡가는 기능인이 아닌 예술인이다. 그리고 예술인은 생활의 모든 단면에서 영감을 받는다. 심지어 개미가 기어가는 모습에서도 말이다.
37년째 운영 중인 먹통 레코드는 김병덕의 음악 세계가 반영된 공간인가.
아니다. 먹통 레코드는 내가 하는 음악과 별개로 운영 중이고 음반은 팔기 위해 들여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 미국에서 어떤 재즈, 록 밴드가 실력 있는지 그리고 지금 유럽에서 누가 가장 피아노를 잘 치는지, 첼로를 잘 켜는지 등 여러 가지 정보를 조사해서 들여오는 음반들이 먹통 레코드를 채운다. 사업은 사업이다. 팔릴만한 물건을 들여온다.
레코드숍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음악을 필연적으로 많이 접했을 것 같다. 현재 김병덕의 음악관을 구축하는 데 먹통 레코드가 큰 역할을 했는지?
커티스도 똑같이 말하더라. 내가 많은 음반을 수입하고 들으니 다양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맞는 이야기지만 그건 이차적이다. 일차적으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했던 고고클럽의 영향이 컸다. 70년대엔 고고클럽이 놀이문화를 꽉 잡고 있었다. 댄스플로어에서 사람들이 춤을 출 동안 난 10년간 매일같이 무대에서 기타로 딥 퍼플(Deep Purple) 같은 록을 연주했다. 창작곡을 하진 않았고 소위 말하는 카피 밴드로, 타인의 곡을 연주했다. 그렇지만 난 같은 곡을 연주해도 애드리브(Ad lib)는 언제나 나만의 영역이어서 제멋대로 구성했다. 그렇게 변주하며 내 것을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또, 리듬의 힘을 몸으로 배웠다. 음악은 무당의 영역이다. 하지만 요즘 무당이 아닌 사람들이 음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내림이 오듯 무아의 경지에서 모든 것의 중심인 리듬을 느껴야 하는데 자꾸 껍데기만 신경 쓰고 형태의 단계에 머무른다. 노래를 어우르는 리듬에 영혼마저 빨려들도록 집중하는 것은 음악을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다. 세계 곳곳의 여러 음악을 공부하는 단계는 그 후의 일이고 10년간의 딴따라 생활로 내가 가장 먼저 익힌 건 리듬에 빠져드는 방법이었다.
부산에서 멜팅팟(Melting Pot)이라는 재즈 클럽도 운영했다.
억수로 많이 조사했네. 거기서 재즈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록 공연도 많이 열었다. 당시 서울에는 야누스(Janus)라는 재즈 클럽이 잘나갔는데, 그곳에서는 스윙이나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같은 보컬 재즈 중심으로 틀었다. 그 주인장 박성연 씨가 우리나라 재즈 1세대 보컬리스트니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는 허비 행콕(Herbie Hancock), 키스 자렛(Keith Jarrett) 등 악기 중심의 재즈로 멜팅팟을 풀어나갔다. 당시 전설적인 베이스 기타 연주자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ous)나 그가 속한 적 있는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의 음악을 한국에 처음 소개한 것도 나다. 요즘 후배 음악인이 재즈를 한다고 해서 공연에 들려보면 빌리 홀리데이 같은 보컬 위주 재즈를 곧잘 하고 있더라. 차라리 그거 말고 록이 낫겠다 하는 생각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별로 높게 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요즘 한국 음악계를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매우 화가 난다. K-POP 일색이니까. 그나마 비교적 수준 높다고 하면 김광석 아니면 이문세 아닌가. 조용필보다 이문세 음반이 더 잘 팔린다. 그래도 김광석의 인기가 가장 높은데 음반이 한 장 당 20만 원을 호가하니 사려고 계산대까지 가져왔다가 가격을 듣고 놀라서 내려놓더라. 어쨌든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나라 음악계는 K-POP 아니면 발라드가 전부다. 아, 뽕짝도 있다. 그러니 화가 안 날 수 있나. 얘기하기도 싫다.
갖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한국 곳곳에 있지 않은가.
분명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자기 신념대로 가라. 단, 생계도 생각하라. 아무리 자신의 감성이 충만하고 실력을 많이 쌓았다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세상에 표출할 수 없더라. 먹고 사는 것도 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최근에 영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만 있자니 답답해서 한 번 다녀왔다. 과연 유럽에는 나와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는지, 혹 있다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더라. 또 그들과 어울려서 함께할 기회가 있을까 해서 간 거다.
형식은 거의 클럽 투어였다. 여러 클럽에서 즉흥적으로 합주도 하고 음악 하는 친구도 많이 만들었다. 자유로이 일정에 쫓기지 않고 돌아다녔는데, 한 번은 내 음악을 들려주니 영국인이 놀라면서 하는 말이 “You’re a lucky guy)”. 영국에서도 이런 음악은 판으로 잘 안 찍는다고 하더라. 돈이 안 되니까 그렇단다. 그런 의미에서 내 음악을 세상에 내놓아준 김진묵 씨, 성시완 씨 그리고 커티스를 만난 것은 인생의 크나큰 행운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눈여겨 보고 있는 새로운 음악적 흐름이 있다면?
최근 몇 년간 대중음악을 점령한 한국 힙합을 들어봤는데, 난 잘 모르겠더라. 레코드숍을 운영하며 나름 누군가 좋다고 한 앨범들도 구해서 들어봤지만 내가 중요시하는 음악적 요소들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전자음악을 만드는 후배들은 아주 눈여겨 보고 있다. 내 시절 사이키델릭 음악이 가져온 새로움을 난 요즘의 전자음악에서 다시금 느낀다. 지속해서 발전해 나간다면 한 단계 위의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크다.
음악인으로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옛날에 대학 다닐 때, 내가 없는 자리에서 어떤 교수가 나를 두고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을 유명한 작곡가가 될 것이라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다더라. 이것이 아직 이루지 못한 나의 목표다. 정말 한 획을 긋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돈과 관련된 각종 논리를 뛰어넘는 좋은 음악은 도(道)와 가까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죽기 전까지는 이뤄야지.
그런 메시지가 모두에게 전달된다면 정말 세상이 바뀌는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던 여자 엉덩이를 갑자기 만지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감정 교류라는 알맹이가 없으니 그건 추행이지. 음악도 마찬가지다. 알맹이가 없고 겉 형식에 눈이 먼 상업적인 음악만이 난무한다면 그건 추행이 활개 치는, 제대로 된 사랑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상업성이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아름다운 섹스를 하고 나아가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 한다. 그처럼 진실성 있는 음악이 계속 나와야 하고 주목받아야 한다.
우리가 사랑을 해서, 섹스해서 극에 닿는 과정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도(道)에 이르는 길이다. 그리고 그 정신으로 만든 좋은 음악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느냐 묻는다면, 삶의 본질을 깨우쳐 준다고 말하겠다. 거짓되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남녀가 부둥켜안는 사랑이든 음악이든 그것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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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 글 │ 홍석민
사진 │김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