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즈닝(SEASONING)이라는 이름의 패션 브랜드를 들어본 적 있는지. 일본 내 패션으로 이름난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브랜드라고 하면 당신의 구미를 당길 수 있을까. 도쿄 기반의 스타일리스트 마사(MASAH)와 모델 이마주쿠 아사미(Asami Imajuku) 부부가 전개하는 시즈닝은 언제 어디서나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에 그들만의 양념을 더한다. 두 사람 모두 오랜 시간 도쿄의 패션 신(Scene) 제일선에 머물렀던 만큼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거리 패션의 현재와 과거를 아우른다.
몇 가지 볼일로 빠듯했던 시간, 그는 90년대 하라주쿠와 시부야의 풍경, 후지와라 히로시(Hiroshi Fujiwara)와의 첫 만남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전했다. 도쿄 패션 면면에 대한 궁금증을 해갈해준 마사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자리를 마련해준 한남동의 편집 스토어 원더 사유(WANDER/SAYOO)에도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스타일리스트이자 지금은 시즈닝이라는 브랜드의 디렉션을 맡고 있는 마사라고 한다.
스타일리스트에서 의류 브랜드 디렉터로 일하게 된 그 배경이 궁금하다.
스타일리스트 당시에도 패션 브랜드를 맡아 운영했지만, 본격적으로 디렉터를 맡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금 아내와의 결혼이다. 시즈닝이라는 브랜드는 아내 이마주쿠 아사미와 함께하는 브랜드다. 마음 맞는 사람과 결혼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로 후지와라 히로시의 더 풀 아오야마(THE POOL AOYAMA)에서 인 더 하우스(IN THE HOUSE)라는 패션 브랜드를 기획했다. 이후 더 파킹 긴자(THE PARKING GINZA)을 통해 시즈닝을 프로젝트 브랜드로 선보인 뒤 본격적인 브랜딩을 시작했다. 특별히 어떤 확고한 콘셉트의 브랜드를 운영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편으로 옷을 만들어 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했다.
개인 인스타그램에 가족의 일상이 드러나는 점이 재미있다. 가족의 의미가 브랜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가.
사실 시즈닝이라는 브랜드가 단순히 가족의 모습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가족을 주제로 한 부분에서는 별도로 인 더 하우스라는 브랜드를 진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스타그램은 멋 부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가족이 주가 되어 버렸지만, 시즈닝은 오랜 시간 스트리트 패션 신에 종사한 나와 부인인 이마주쿠가 결과적으로는 부부의 연을 맺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예전 현역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는 브랜드였으면 한다.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는 언제인가.
일단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중학생 때부터 생각하곤 했다. 본격적으로 옷차림에 신경 쓴 시기는 고등학생 때다. 어린 시절에는 막연히 동네 옷 잘 입는 형들을 보고 따라서 입는 정도였는데, 고등학생이 되고 시부야에서 본 멋진 사람들을 동경하게 되어 패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시부야와 하라주쿠의 분위기나 트렌드는 어떠했나?
학창시절 하라주쿠와 시부야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도는 무서운 분위기였다. 당시의 시부야와 하라주쿠는 지금과 같은 패셔너블한 동네라는 느낌은 없었다. 예쁘고 멋진 옷을 사는 쇼핑의 메카보다는 몇몇 사람들이 한껏 멋을 내는 장소의 성격이 강했지. 더불어 여러 장르의 패션이 공존하는 재미난 모습이었다. 시부야에는 서퍼와 조금 불량한 느낌의 아메카지, 하라주쿠에는 스케이터, 비보이가 주를 이뤘다. 각 장소마다 장르가 뚜렷해, 시부야의 시부카지, 하라주쿠의 우라하라 같은 하나의 장르로 발전하는 시기였다.
시즈닝의 의류 라인업을 보자면 독특한 그래픽보다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의류가 눈에 띈다. 전반적인 브랜드 콘셉트에 관해 이야기해줄 수 있나.
후지와라 히로시의 더 콘비니(THE CONVENI)에 멋있게 입고 갈 수 있는 브랜드? 하하. 나이가 들어 멋을 바라보는 기준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난 아이도 있고 내 나이에 맞는 옷을 입고 싶다. 굳이 무리해서 과하게 입고 싶지 않은 느낌이라고 할까? 실생활에 입기 좋은 티셔츠나 후디를 중심으로 본인의 색깔을 통해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 느낌이다.
더 파킹 긴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시즈닝을 운영할 때, 만들고 싶은 것만 제작하라는 후지와라 히로시의 제안에 초점을 두었고, 지금 선보이는 컬렉션 또한 타 브랜드처럼 아우터나 셔츠, 팬츠 등으로 구색을 갖추는 것보다는 실생활에서 더 많이 찾는 품목으로 구성하고 있다.
말했다시피 시즈닝은 부부가 함께 진행하는 브랜드다, 가까운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프로젝트의 장점이나 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아내와 싸운 다음 날에도 브랜드 업무 관련으로 함께 미팅하는 날이 종종 있다. 그런 경우 자연스레 각자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다스려야 해서 싸움이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단점은 딱히 없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야 하는 부부관계라는 특성상, 결과적으로는 장점이 많다.
아내와 나이는 같지만, 어쨌거나 그녀가 커리어의 선배였고 나는 그녀의 스타일리스트를 하면서 어시스턴트를 겸하던 입장이었다. 어쩌다 보니 결혼까지 골인했고, 나 자신도 아내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브랜드 설립의 배경에 선 후지와라 히로시와의 관계도 궁금하다.
아내가 우라하라를 대표하는 스트리트 모델이어서 이전부터 후지와라 히로시를 알고 있었다. 난 그와 재미있는 계기로 친해졌다. 이전 더 풀 아오야마 오픈 기념으로 발매한 뱀포드 워치 디파트먼츠 롤렉스(Bamford Watch Department) x 프라그먼트 디자인(Fragment Design)을 갖고 싶어서 지인을 통해 제품을 예약해달라고 부탁했다. 제품을 구매하러 매장에 들렀는데, 시계 가격이 무려 300만 엔이었다. 곧 아기도 태어날 시기라 돈을 아껴야 했다. 고민하던 찰나, 히로시가 매장에 방문했다. 뭔가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에 그에게 제품을 맡아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건네며 구매했다.
그때 히로시가 아내의 안부 인사와 함께 언제 식사라도 하자는 이야기를 건넸는데, 그때 나는 동경의 대상인 후지와라 히로시의 식사 약속을 단순한 인사치레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히로시에게 문자가 왔고, 실제로 만나서 같이 밥도 먹고 가끔 집에도 놀러 오는 친밀한 관계로 이어졌다. 어느 날 히로시로부터 복어를 먹으러 가자는 연락을 받고 나갔는데, 그 장소가 오사카였다. 결혼 후 처음으로 아내가 아닌 누군가와 도쿄를 벗어나는 순간이었지. 하하. 그렇게 오사카로 향하는 신칸센에서 히로시와 장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부부가 함께하는 일을 하고 싶고, 곧 아이가 태어나는데 마땅히 입히고 싶은 아동복이 없어 아내와 함께 아동복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히로시는 내가 만들고 싶은 아동복을 더 풀 아오야마에서 전개하자는 제안과 함께 인 더 하우스라는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게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패션 디렉터로서 바라보는 현재 일본 패션 마켓의 동향은 어떠한가?
쓸쓸하고, 허무하다. 내가 지나온 세대에는 문화가 있었다. 스케이트보드나 힙합 등의 다양한 신에서 브랜드가 뻗어 나왔다. 반면에 지금은 슈프림(Supreme)은 있지만, 슈프림을 있게 한 문화가 없다고 느껴진다. 쉽게 말하면, 지금은 재화가 움직이는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세대의 패션 마켓에서는 반년에 한 번 정도의 페이스로 제품이 출시됐다. 덕분에 옷 하나를 사더라도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지. 지금은 매주 나이키(Nike)에서 새로운 운동화가 출시되고, 슈프림에서 새로운 제품이 등장한다. 이전에는 극히 한정적으로 발매하는 옷이나 신발을 신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클럽에 가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물건을 샀다’라는 목적밖에 없는 것 같다. 문화가 없이 단순 유행에 따라 움직이는 흐름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2000년 초반의 우라하라 브랜드들이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다, 마사가 기억하는 당시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난 오히려 우라하라를 꺼리는 편에 속했다. 지금은 패션 장르의 경계가 없지만, 당시 우라하라 계열과 내가 지향했던 비보이 계열은 특별한 접점이 없었고, 사이가 좋지도 않았다. 나는 그때 유행하던 베이프(A Bathing Ape)는 물론, 바운티헌터(Bounty Hunter)나 더블탭스(Wtaps), 네이버후드(Neighborhood)도 입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후지와라 히로시가 누군지도 몰랐다. 우라하라는 우라하라를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틀에 맞는 옷을 제작하고 판매했다. 문화로서의 브랜드라기보다는 비즈니스의 느낌이 강했다.
내가 비보이 계열을 지향한 이유 또한 우라하라 계열과는 다르게 비즈니스를 위한 패션보다는 ‘즐긴다는 느낌’이 좋았다. 나이키 스니커를 신고 멋있게 스타일링 하거나, 랄프 로렌(Ralph Lauren)이라는 고급 브랜드를 오버사이즈로 착용한 뒤 ‘난 이런 브랜드를 이렇게 입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때만 해도 몇 년 뒤 우라하라의 대표격인 후지와라 히로시와 일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 하하.
당시 즐겨 입은 브랜드는 무엇인가.
당시 랄프 로렌을 가장 좋아했다. 그러나 랄프 로렌이 폴로 스포츠(POLO Sport)라는 새로운 라벨을 전개하고 나서는 입지 않았다. 랄프 로렌은 삶의 질이 높은 상류층이 입는 브랜드처럼 느껴지지 않나. 그런데 힙합이나 비보이 계열의 사람이 색다른 스타일링으로 연출하는 방식이 좋았다. 폴로 스포츠는 판매하기 위한 옷을 제작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입지 않았다.
어디서 많은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딱히 영감을 받는 부분은 없다. 시즈닝의 메인 테마는 매 시즌 양념이라는 테마로 세 가지 컬러를 사용해 컬렉션을 전개한다. 그 컬러를 선정하는 데 특별한 영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아내와 식사를 하거나, 함께 보내는 일상에서 컬러를 떠올린다. 그날 먹은 카레가 인상적이었다면, 노란색을 메인 컬러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나는 계절에 따라 무엇을 입을지보다는 어떤 색의 옷을 입을지 고민한다. 영감보다는 감각을 통해 브랜드의 방향성을 찾고 있다.
시즈닝이란 브랜드로 헤드 포터(HEAD PORTER), 프라그먼트 디자인, 윈드 앤 시(WIND AND SEA)와 협업했는데, 이외 욕심나는 브랜드가 있는지.
시즈닝이라는 브랜드명의 특색을 따라 패션 브랜드보다는 식품 브랜드와 협업하고 싶다. 예를 들자면, 농심의 신라면이나 헤인즈(Heinz)의 토마토케첩 같은 식품 브랜드.
일본은 패션 브랜드 각각의 독자적인 문화가 길게 유지되는 것 같다. 본인이 느끼기에 한국의 패션 마켓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물론 패션 업계의 비즈니스를 따지자면 일본이 더 뛰어난 것 같은데, 개개인의 패션은 한국인이 더 스타일리시한 것 같다. 내가 스타일링을 맡았던 동방신기, 이병헌은 하나같이 멋지고 친절했다. 일본인과 다르게 서구적이랄까? 원래부터 멋진 사람이 있는 반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원래부터 멋있기에 큰 노력을 들일 필요가 없다. 일본인은 멋있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니 브랜딩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일본 남자는 같은 남자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반면에 한국 남자는 서양인처럼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멋을 부린다. 예를 들어 일본 남자 탤런트는 자신이 봤을 때 멋있는 옷을 입지만, 한국 남자 탤런트는 자신이 멋있게 보이는 옷을 선호하는 부분에서 그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다.
지금 주목하는 일본의 아티스트, 패션 브랜드가 있는가?
스니커울프(Sneakerwolf), 주변 선배들이 이 브랜드를 입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 뭔가 재미난 브랜드라고 생각하던 찰나, 우연히 소개를 받았는데, 일본 슈프림 매장에 크리스마스 기념 윈도우 아트를 했던 사람이더라. 나도 슈프림을 좋아하지만, 이제 나이가 있기에 무작정 입기에는 조금 창피한 느낌이 들던 찰나였다. 스니커울프를 입으면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특별히 아끼는 패션 아이템이 있는지.
아끼는 아이템보다는 폴라텍이나 고어텍스 같은 기능성 소재에 관심이 많다. 스노보드를 타면서 선호하게 되었는데,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나오는 소재라 좋아한다.
도쿄 내 자주 방문하는 장소가 있다면.
후지와라 히로시의 소개로 알게 된 치킨키친(Chiken Kitchen)이란 곳이다. 히로시는 이세 미에현 출신으로 미에현은 소고기가 상당히 비싼 동네라 닭고기를 소고기처럼 구워 먹는 요리가 유명하다. 치킨키친은 원래 비프키친(Beef Kitchen)의 한정 메뉴로 출시된 메뉴였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 따로 매장을 열었다고 한다. 이야기하는 지금도 먹고 싶고, 당신이 오면 한 번쯤 데려가고 싶은 곳이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트렌드에 따른 갑작스러운 성장보다는 천천히 조금씩 커지고 싶다. 유행에 따라 브랜드가 성장하면 그만큼 무너지기 쉽다고 생각한다. 소소하게 롱런하고 싶다.
SEASONING 공식 웹사이트
MASAH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
진행 / 글 │ 오욱석
사진 │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