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일에 왕도는 없다. 공유하는 시간과 고생이 늘면 나누고 싶은 말도 불어나는 법.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일과 버스 옆자리에 앉은 이와 우연히 말을 트는 일, 그 감정의 온도에는 불과 얼음만치의 거리가 있다. 지금까지 적지도 많지도 않은 이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인터뷰의 온도가 상대와 맞지 않은 경우는 부지기수. 특히 신경 쓸 것이 많은 유명인이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단순한 질의응답보다 더 깊숙한 이야기가 나누고픈 나. 어쩌면 인터뷰란 버스 옆자리의 타인과 나눈 몇 마디로 그의 신뢰를 얻는, 그런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모델, 디제이, 미즈하라 키코의 동생 미즈하라 유카와 만난 것은 올해 봄, 서울이었다. 에디터 이철빈의 집으로 아침 일찍 찾아온 그녀와 그 일행은 일본어보다 영어가 편하다고 했다. 분 단위로 짜인 유카의 스케줄에 파고들어 얻은 시간은 단 30분. 조급한 만큼, 영어가 그녀에게 모국어가 아닌 만큼 대화의 무게는 가벼웠다. 나이가 무색하게 숙달된 대화 방식, 질문에 답하는 그녀의 일관된 명랑함은 친절하지만 한편 타인과 친구를 가르는 경계 같기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 돌발 상황으로 유카는 급히 철빈의 집을 떠나야 했고 나는 얼떨결에 그들의 통역을 맡아 동행하게 되었다. 혹독했던 이날 유카의 스케줄은 주말 낮 서울의 교통 체증에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인터뷰는 이미 안중에도 없던 유카와 우리. 어쭙잖게 현학적인 주제와 출처가 없는 가십으로 떠들다 졸기도 하며 보낸 시간, 생각지도 못한 우리의 라포(Rapport)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각자의 호텔로 돌아가야 할 때 유카는 인터뷰 재개를 요청했다. 마땅한 곳이 없었기에 비집고 들어간 그녀의 좁은 호텔 방. 그녀는 영어보다 일본어가 편하다고 말했다.
녹음기를 켜고 다시 물어본 같은 질문. 대답은 거침이 없었고 10대부터 업계에서 살아온 20대 초반의 베테랑 미즈하라 유카는 그녀의 관심사, 꿈, 그리고 콤플렉스를 침대에 앉아 털어놓았다. 대화처럼 이어진 그녀와의 한 시간. 어디 가서 털어놓지 않겠다고 약속한 부분을 제외한 대화의 전문을 하단에 첨부한다. 레코드 디거(Digger)를 자청하며 음악에 빠져 사는 유카 주변에는 그녀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비방이 가득하다. 내가 경험하고 만난 미즈하라 유카는 자신의 고집과 반골 기질을 자연스레 흘리는, 레코드 매장에서 자주 만날성싶은 인물이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이지만, 글을 읽은 뒤 판단을 내려도 늦지 않을 듯싶다.
유카, 간단한 소개 부탁한다.
내 이름은 미즈하라 유카. 음악을 사랑하는 디거(Digger)다. 요즘 인생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처음 디제이로서 무대에 선 때를 기억하는가.
3년 전 토와 테이(Towa Tei)가 주최한 파티 ‘레코드(Records)’에서 처음 디제이로 음악을 틀었다. 파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레코드에 섭외된 디제이는 바이닐 음반으로만 음악을 틀어야 하기에 나도 집에서 평소에 좋아하는 음반을 들고 갔다. 그때의 나에게 믹싱은 사치였다. 곡을 하나씩 틀고 청중과 같이 듣는 게 최선이었다. 그때 나는 셀렉터가 되고 싶었던 걸까?
3년 전과 지금, 디제이로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여러 음악의 리듬을 읽게 된 것. 그것이 가장 성장한 부분이겠다. 분위기를 읽고 다양한 곡을 선곡하게 된 점도 지금 돌아보면 참 큰 변화다. 또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이제 나는 내가 음악을 트는 곳의 환경과 하나가 된다고 해야 할까?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이 이젠 자연스럽다.
본인에게 디제이, 또 디제잉이란?
코디네이터. 나의 색으로 공간을 물들이는 과정이다.
상당한 기세로 음반을 수집한다고 들었다. 음반을 수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 역시 토와 테이의 덕이다. 70, 80년대 일본 음악에 심취한 내게 그는 다양한 레코드 가게를 추천해줬다. 그중 도쿄 나카메구로에 위치한 레코드 매장 왈츠(Waltz)가 큰 역할을 했다. 왈츠의 한 곳에 쌓인 YMO(Yellow Magic Orchestra) 음반과 내가 듣도 보도 못한 이전 세기의 음악. 파고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로 디거가 되었지. 매일 음반 더미를 헤치고 사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있을까? 나중에 레코드 매장을 운영할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선호하는 장르는?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대체로 디스코, 훵크를 모은다. 보통 듣고 좋다 싶으면 바로 사는데, 요즘은 테크노 음반을 주의 깊게 보는 중이다. 물론 하우스 계통의 댄스 음악도 좋아한다.
현재 매달 NTS에서 ‘그루비 두비 두♬(Groovy Doobie Do♬)’라는 방송을 진행 중이다. 디스코, 하우스 중심의 선곡이라고. 특이한 이름인데, 그 유래와 방송 내용을 소개해 달라.
NTS가 내게 방송을 제의했을 때는 내가 런던의 어느 파티에서 YMO의 곡을 틀고 난 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의 선곡을 더 듣고 싶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토와 테이가 90년대 활동한 밴드 디 라이트(Deee-Lite)의 대표곡 “Groove is in the heart”의 이름으로 방송 이름을 정하려 했다. 하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그를 베끼는 거에 불과하더라.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단어 그루브를 포기할 수도 없고. 결국 어감이 좋은 그루비 두비 두로 낙찰했다.
방송에서는 일본의 뉴에이지, 디스코, 혹은 80, 90년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사람들이 내 방송을 듣고 “아 이 곡은 뭘까?”라고 말하게 하는 것. 그게 내 노림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그 당시 내 감정에 따라 그 내용도 많이 바뀌는데, 예를 들어 록(Rock) 음악이 듣고 싶은 날은 록으로 달리는 등 상당히 내 멋대로다.
방송의 아트워크도 본인이 직접 제작하던데.
전부 내가 그렸다. 컴퓨터로 만들 때도 있지만 순간에 감정에 따라 크레용으로 그리는 등 재료는 다양하다.
계속 언급된 토와 테이뿐만 아니라 YMO의 호소노 하루오미(Haruomi Hosono), 다카하시 유키히로(Takahashi Yukihiro) 그리고 사카모토 류이치(Ryuichi Sakamoto)와도 교류한다고.
토와 테이와 처음 알고 지내게 된 계기는 4년 전 그의 뮤직비디오에 모델로 출연하고부터다. 이전까지는 토와 테이가 누구인지 잘 몰랐지만, 촬영 전 유튜브(Youtube)로 찾아보니 그의 음악이 내 취향과 잘 맞더라. 그의 히트곡을 하나씩 들으며 감동했다. 나의 마음이 드러나서일까? 토와 테이는 흔쾌히 나에게 여러 음악을 알려줬고 내 취향을 응원해주었다.
사카모토 류이치를 만난 건 작년 내가 런던에 살 때다. 다카하시 유키히로는 토와 테이와 절친한 음악 동료이기에 그전에도 셋이 종종 모여 음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마지막으로 호소노.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친분이 생긴 위의 둘과 달리 그에게는 내가 직접 찾아갔다. 그 전부터 호소노 하루오미의 팬인 언니 키코와 함께 그의 아시아 투어 일정에 맞춰 동남아시아에 간 나는 키코의 인맥 덕분에 백 스테이지에서 호소노 하루오미를 만날 수 있었다. 귀국한 뒤, 그의 연락을 받고 같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것으로 더욱 가까워졌다.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기보다는 음악을 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소노 또한 80년대 훵크(Funk), 디스코를 좋아한다더라. 사실 지금까지 언급한 음악계의 선배들과 보낸 절대적인 시간은 많지 않다. 그렇지만 종종 “같이 뭐 해보지 않을래?”라고 친절히 연락해줘서 고마울 뿐이다.
세대 차를 느낀 적은 없는지.
음악을 들어온 세월의 차를 느낀다. 그들과 말하기 위해선 역사를 공부해야 할 정도. 차이를 메꾸기 위해 노력 중이다.
토와 테이와 별 교류가 없던 때 그가 본인을 모델로 섭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귀여운 게 좋아서? 하하. 토와 테이는 귀여운 걸 참 좋아한다. 귀여운 여자아이 마찬가지. 그래서 그의 뮤직비디오에 귀여운 여자아이가 매번 등장한다. 내 언니 키코도 전에 같이 촬영한 적 있다.
언니 키코가 2017년 런칭한 브랜드, 오피스 키코(Office Kiko)에서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이다. 오케이 키코는 어떤 브랜드인가.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영감을 받은 디자인도 돋보인다.
여자가 귀여운 옷을 입고 행복할 수 있게 하는 브랜드가 오피스 키코다. 규칙에 얽매이기 싫은 우리 자매가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시작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재미가 최고다. 90년대를 지향하는 이유도 우리 취향 때문이다. 길 가다 오피스 키코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보면 친구라도 만난 듯 반갑다.
앞서 나눈 이야기로 언니 미즈하라 키코와 확연히 다른 유카만의 세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 확실히 우리 둘은 닮았지만 활동 영역과 관심사가 다르다. 배우의 길을 걷는 키코와 달리 나는 토와 테이 같은 분의 도움으로 음악에 열정을 살려 디제이, 셀렉터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작곡가로도 활동하고 싶다. 시간을 내서라도 이루고픈 나의 목표다. 틈만 나면 토와 테이에게 좋은 신시사이저를 추천받는 등 조용히 준비 중이다. 어릴 때부터 지브리 스튜디오(Studio Ghibli) 영화의 배경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머지않은 미래에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고 싶다.
키코와 팬덤의 성격도 조금 다른 듯하다. 평소 비주류 음악을 찾는 만큼,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이들이 자신을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나의 팬 중에는 뮤직 러버가 많지 않을까? 물론 서브컬처를 좋아하는 층이 내 팬덤의 큰 부분이길 원한다. 하지만 YMO가 마니악한 음악 스타일로 지금까지 회자돼도 그 장르적 구분은 팝(Pop)이듯 나 또한 하나의 카테고리로 구분되고 싶지 않다. 팝일지언정 그 내용은 여러 비주류 음악인, 자신의 세계를 넓혀온 아티스트. 난 그렇게 인식되길 원한다.
그렇다면 미즈하라 유카가 추구하는 음악은?
듣기에 기분 좋은, 듣고 환호성을 지를 수 있는 음악. 스윙(Swing) 선율 등 직감으로 다가오는 샘플링. 무엇보다 내가 듣고 즐거워야 한다.
본인이 정의한 서브컬처란?
깊은,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 곳. 그러다 비슷한 취향의 이들을 만나 모임을 이룬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음악을 틀면 두 종류의 이들이 찾아온다. 유명 모델인 내 이미지를 보러 온 이들, 혹은 뮤직 러버. 나는 내가 트는 음악으로 이 두 팬덤이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최근 주목하는 음악가가 있다면.
코난 모카신(Connan Mockasin). 이전 도쿄에서 작은, 언더그라운드 밴드가 곧잘 모여 공연하는 베뉴에서 공연했을 때 그의 자유로움에 놀랐다.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는 노랫말과 와인 잔을 공명시킨다던가. 신선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공연이었다.
재미있게 지켜보는 일본 내 아티스트도 알고 싶다.
사카이 이부키(Ibuki Sakai). 정말 센스가 좋은 아티스트이기에 알자마자 바로 팬이 되었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의외로 록(Rock)스럽기에 또 매력적이다. 이부키의 친구 중에 도쿄 코엔지의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라우스에서 공연하는 밴드 멤버가 있어서 나도 얼떨결에 소개받아 같이 무대에 올라 노래한 적도 있다. 또 오카모토 레이지(Okamoto Reiji)도 멋지다. 주류와 비주류를 솜씨 좋게 섞을 수 있는 인물. 난 일견 어울리지 않는 것을 모아 순환시키는 이들을 동경한다. 이상한 사람들. 하하.
최근 들어 한국과 일본 음악 신의 교류가 종종 포착된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과 지역적인 이점 덕분에 영역이 비슷한 아티스트가 손쉽게 협업을 이루는 지금, 본인이 발견한 한국 음악 신의 재미난 움직임이 있다면.
유라(Youra). 사실 어제 알게 된 한국의 아티스트인데 목소리가 너무 이름답다. 그녀만의 과하지 않은 미래적인 감성도 매력 포인트라 생각했다. 아직 작업물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추후가 기대되는 멋진 여성 아티스트다.
소셜 미디어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역시 인스타그램 덕분인가? 굳이 인간관계를 맺지 않아도 서로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를 포함한 젊은 세대, 특히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다양한 가능성이 펼쳐졌다. 나도 매주 경험 중이다. 요즘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힙합(Hip-hop), 트랩(Trap) 음악을 틀지 않는 나의 파티에도 디스코, 훵크를 좋아하는 이들이 소식을 듣고 모이니.
본인은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 스타일의 유행을 선도하는 모델 중 한 명이다.
그때의 멋이 내 또래 사이로 돌아왔다. 알리야(Aaliyah)처럼 옷을 입고 싶달까? 그런 몇몇 상징적인 미국 90년대 후반 R&B 여성 가수, 밴드의 당시 사진에서 영감을 받는다. 역시 옷은 음악과 함께 돌아온다. 음악이 다시 멋지게 들리는 그 시점 그들의 스타일도 다시 멋있게 보인다. 90년대 일본 여성 패션 잡지 중 큐티(Cutie)가 많은 참고가 된다. 색깔이 넘치는 코디가 멋쟁이로 여겨지던 시절이 난 좋더라. 하지만 내 어머니는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세대라 그런지 90년대 스타일은 조금 과하다고 하더라.
의류 브랜드의 크리에이터인 만큼 이웃 나라 한국의 패션계도 살펴보는지.
살펴본다. 이전부터 묘카하라(Myokahara)를 비롯해 한국에도 90년대 스타일이 돌아온 것도 알고 있다. 특히 묘카하라의 스타일은 개인적으로도 많이 좋아한다. 내가 동경하는 분위기의 사람이다.
본인은 직업상 각종 패션계 유명인과 친분을 유지할 거라 예상한다. 나아가 앞서 이부키, 레이지, 묘카하라 등을 언급한 것으로 미뤄보아 거리문화의 움직임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듯하다. 그런 본인이 예상하는 다음 유행이 궁금하다.
정말 모르겠다. 다음 유행은 1920년대일지도. 하하. 60년대의 트위기(Twiggy) 패션이 돌아와도 괜찮지 않을까? 의외로 별이 반짝이는 우주 같은 스타일이 유행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했듯 일부 유명인이 유행을 만드는 시절은 이미 지났다는 사실이다. 이제 각자만의 아이돌을 찾는 작은 움직임들이 사방팔방에서 불어오는 시대다.
본인이 바라보는 일본 음악 신(Scene)의 현주소는?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행하는 것을 베끼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음악이 일본 주류 음악 신에 넘친다. 자신만의 어떤 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캔디타운(Kandytown)이 해외의 것을 위화감 없이 우리의 것으로 잘 만드는 것 같아 그들의 작업을 계속 체크 중이다. 물론 언더그라운드와 관계없는 이야기다.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다. 혹시 유명한 언니 덕에 지금처럼 모델, 디제이 그리고 브랜드 크리에이터의 영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질투 어린 시선을 받아오진 않았나?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언니 덕분에 오피스 키코라는 브랜드의 음악을 맡거나 각종 서포트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키코가 유명해지기 전에는 우리 둘 다 다른 영역에서 노력했다. 키코는 연기력을 중요시하는 에이전시에서, 나는 모델 활동에 더 집중하는 다른 에이전시에서. 우리는 굴하지 않고 각자의 영역에서 매일 노력 중이다. 언젠가 내가 좋은 음악을 작곡하게 된다면 언니와 둘이 밴드도 결성할 거다. 우리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사이다. 가족이니까.
짐작건대 언니에게 영향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어릴 적에도 지금처럼 친밀했나.
어릴 적 언니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어른스러웠지. 4살 터울의 언니가 모델이 되기 위해 도쿄로 떠났을 때 난 아직 바비 인형을 좋아하는 중학생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매체에서 접한 언니의 모델 모습, 바비 인형처럼 무대를 걷는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델을 꿈꾸게 됐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도쿄로 이사해 본격적으로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갓 상경하고 언니와 도쿄의 멋진 클럽, 맛있는 가게 등을 돌아본 기억이 소중하다.
올해가 가기 전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최소 3개월간 런던에서 살고 싶다. 가능하다면 올해 여름. 영국 뉴 웨이브(New Wave) 음악에 빠져보고 싶고 디제이로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도쿄보다 큰 런던에서 시험해보고 싶다. 유럽에서 더욱더 많은 청자와 만나 교감할 수 있을 거라 희망한다. 영어는 가서 배우면 되겠지?
진행 │ 이철빈 홍석민
글 │ 홍석민
사진 │ 백윤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