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따. 본명은 염현수. 84년생. 음악 프로듀서이자 래퍼. 2006년 “Where Is My Radio” 싱글 앨범으로 정식 데뷔. 2009년 무한도전 돌아이 콘테스트 우승. 2016년 2월, 정규 1집 [살아숨셔] 발매. 2017년 7월, 2집 [MINA] 발매. 2019년 1월, 3집 [살아숨셔 2] 발매.
염따는 오랜 기간 뮤지션으로 활동했지만 사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3집을 내놓은 뒤부터 뭔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약 10년간 그저 그런 활동을 이어오던 그가 어느새 국내 힙합 신(Scene) 최고의 블루칩으로 거듭난 것이다. 독립적인 한 명의 뮤지션으로 온전히 인정받는 데까지 걸린 시간 무려 13년, 염따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요즘 대세다. 기분이 어떤가?
기분이 어떠냐고… 하하. 글쎄. 지금 왔을 때 시발 조져야겠다, 뭐 그런 기분이다. 좋기야 좋지. 근데 사실 나는 잘 안 됐을 때도 존나 불행한 건 아니었다. 내 음악 만들면서 살았지. 여기저기 다니며 내 예상보다 더 큰 반응을 체감하니 ‘아, 이게 뭔가 되고 있긴 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가장 큰 이슈가 된 래퍼라고 한다면 언에듀케이티드 키드(Uneducated Kid)와 염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래퍼의 공통점이라면 아무래도 강력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
캐릭터가 중요하다. 음악은 물론 그냥 들어도 좋아야 하지만, 뮤지션의 음악에 깊게 빠져들게 하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음악에서 뮤지션의 이야기가 나오고, 그 이야기를 실제 무대에서 뮤지션이 말하는 것. 캐릭터와 음악은 서로 뗄 수가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지금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고, 표출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주목받는 걸 좋아해서 어떻게 해야 주목받는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1, 2집 때는 염따의 캐릭터가 특별히 부각되지 않았던 것 같다.
1집 내고 반응이 좀 괜찮아서 바로 2집을 냈는데, 그때 너무 힘들어서 무조건 쉬고만 싶었다. 뮤직비디오도 빠그라지다 보니 프로모션이고 뭐고 다 하기 싫어졌다. 지금 내가 하는 프로모션은 그때 아예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싱글을 간간이 내다가 언에듀케이티드 키드가 인스타그램에서 붐업이 되는 걸 보며 ‘아, 이거구나’ 싶었다. 이건 내가 잘하는 거니까 3집을 준비하면서 소셜 미디어도 공격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이 항상 말하는 내 특이한 행동을 아예 모든 사람이 알게 조져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 이번 3집을 낼 때는 뭔가 삶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앨범 낼 당시, 이번 앨범이 망하면 은퇴하겠다며 삭발한 인스타그램 영상이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아 맞네. 진짜 얼마 안 됐지.
실제로 은퇴할 생각이 있는지?
아니지. 내가 왜 은퇴해. 그리고 진짜 이번 앨범은 망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살아숨셔 2]는 성공해야겠다고 작정하고 만든 앨범이다. 2집 [MINA] 때는 그렇지 않았다.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통째로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성공이라는 게 꼭 의도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지 않나?
어떤 점에서 앨범이 잘될 거라고 확신했는지 궁금하다. 우선 하고 싶은 것뿐만 아니라 잘 팔리는 음악의 요소들을 집어넣었다. 앨범 커버 역시 상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음악, 내용, 스토리, 스타일 하나하나 고려해서 앨범을 만들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할 수 있겠다고 느낀 거지.
이전까지 한 명의 래퍼였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총체적인 프로듀서의 면모를 드러낸 것 같다.
그렇다. 프로듀서이자 제작자였지. 이전에도 제작자였지만 실제 그 역할을 못했다. 이번에는 프로듀서, 제작자, 래퍼까지 힘들었지만 다 해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 어떤 요소를 고려했는지 듣고 싶다.
내 음악부터 해외 사례까지 모두 분석했다. 각각의 트랙에 ‘좋아요’가 몇 개 달렸는지, 노래의 길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몇 곡을 한 앨범에 넣을지, 외국에서 어떤 트랙이 인기를 얻었는지 찾아보고 비교한 거지. 계속해서 그런 걸 보다 보니 자연스레 이번 앨범에 성공한 음악의 공식이 묻어났다. 단순히 뮤지션이 아니라 제작자 측면에서 음악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마케팅으로 성공한 사례도 찾아보면서 음악 외적으로 어떻게 풀지도 고려했고.
염따의 음악은 젊은 창작자를 포함한 다양한 뮤지션과 부지런히 교류하는 데서 또 다른 힘이 나오는 것 같다.
원체 몸으로 부대끼면서 경험하는 걸 좋아한다. 남에게 부탁하는 것보다도 직접 가서 발로 뛰어야 안정되고 뭔가 했다는 느낌이 든다. 18살 때부터 홍대 클럽 디디(DD)에 다니면서 래퍼와 디제이, 신의 흥망성쇠를 보고 자연스레 체득한 것 같다.
적어도 국내에서는 한참 어린 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열정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존나 성공하고 싶어서 그 안에 들어간 거다. 직접 가서 어울리고, 시간을 보내고, 진심으로 대한다. 그리고 동생들의 음악이 멋지면 진심으로 멋지다고 표현한다. 나이를 떠나서 이게 기본이고 모든 일의 시작이다.
[살아숨셔 2]의 피처링 구성도 다 계산한 건가.
피처링은 오히려 계산하지 않는다. 퓨처리스틱 스웨버 (Futuristic Swaver)가 “비행”에 참여한 게 좀 전의 답과 비슷한 이야기다. 그가 속한 스타렉스(Starex) 크루를 내가 좋아하는데, 일본에 공연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나서 그냥 따라갔다. 내 공연도 없이 그들의 숙소에서 먹고 자고 다닌 시간이 행복했고, 그걸 노래로 만든 게 “비행” 이다. 언에듀와 함께한 곡 역시 언에듀와 노래를 만들어야겠다고 의도하고 만든 게 아니다. 당시 그와 성공에 관한 대화를 많이 나누던 차에 마침 곡의 가사도 일맥상통한 것 같아 피처링을 제안했다. 피처링은 유명세나 실력에 기준을 맞춰봤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 곡에 정말 잘 어울리는 이가 하는 게 맞다.
자신의 음악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 존나 열심히.
음악을 어떤 플랫폼으로 얼마나 듣는가?
나는 보통 아이튠즈로 듣는다. 내가 찾아서 듣는 음악도 많고, 주변 친구들이 추천해준 음악도 빼놓지 않고 듣는다.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음악도 하나하나 찾아가며 듣는다. 얼마나 좋으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나 이런 음악 들어”라고 하겠는가? 좋은 음악을 찾았을 때 기쁨을 느끼던 고등학생처럼 지금도 즐겁게 음악을 찾아서 듣고 있다. 내게는 이게 일이 아니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음악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고 언급했다. 음악이 싫어진 적은 없나?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최근 바빠지다 보니 음악을 듣는 시간이 줄어서 빡친다. 일주일에 녹음을 한 번도 안 했을 때 또 열 받는다. 난 그걸 제일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 감각을 계속해서 날카롭게 갈기 위해 존나 노력해야 한다.
바쁘면 바쁠수록 음악에 집중할 시간이 더욱더 부족해질 것이다. 매니지먼트나 회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지금도 여전히 인디펜던트를 고집하는 이유라면.
하찮은 일이라도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게 너무 싫다. 그리고 딱히 돈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든 적도 없어서 괜찮다. 아직은 바빠서 음악을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다. 사실 회사에 들어갈 생각 없냐고 질문도 많이 받고, 제안도 들어오지만 그들도 알 것이다. 지금 그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일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걸.
오랜 시간 독립적인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따라오는 고충은 없었는지.
물론 있다. 하지만 난 징징대는 걸 싫어한다. 한 달에 2~30만 원 벌 때도 있었지. 그렇다고 굶어 죽지는 않잖아? 어쨌든 어렸을 때부터 일하고 돈을 벌었으니 거지는 아니었다. 뭐 한 달에 100만 원쯤 벌었나. 오히려 무한도전에 나갈 때 다 때려치우고 친구들과 돈이 될 만한 가요 만들자고 했을 때 가장 거지 같고 힘들었다. 그때는 월세 30짜리 반지하에서 둘이 살았다. 몇 달간 수익도 아예 없었다.
상업적인 성공을 꿈꿨을 때 가장 수익이 적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나는 커다란 산에 오르기보다는 내가 쌓은 작은 산 정상에 있고 싶다. 톱스타가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내가 한 걸 인정받고 싶을 뿐이다. 티셔츠가 많이 팔려서 좋긴 하지만 그 정도면 됐지, 계속해서 팔고 싶지는 않다. 만약 회사가 있었다면 미친 듯이 티셔츠를 찍었겠지. 나는 지금 딱 끊고 다시 음악 만들고 있다. 내가 인디펜던트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지금 나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10여년간의 커리어를 지나오면서 랩 스타일도 계속해서 바꾼 것 같은데.
나는 랩을 할 때 아무 생각도 안 한다. 마음에 든다 싶으면 가사도 안 쓰고 바로 한다. 내 랩에 변화가 있다고 느낀다면 그건 자연스레 지금 시대에 맞는 내가 나온 거다. 나는 새로운 이들에게서 영감을 받으니까. 그렇게 리듬을 타고 음악을 만든다. 아무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음악이 잘 나 온다는 걸 1집을 만들 때 깨달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노래는?
“The world is mine”. 여담이지만 갑자기 애착이 생긴 노래는 “없던 것처럼”이다. 얼마 전에 예전 여자친구 미나를 만나서 대화하다가 그 트랙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노래해도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노래할 때마다 마음이 찢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갑자기 그 노래가 떠오른다.
유행어 ‘빠끄’의 시작을 알려 달라. 이제는 염따를 모르는 이들도 이 말을 쓰고 있더라.
내가 주로 ‘시바꺼’라는 말을 자주 써서 시작하다가…처음 어디서 썼더라…
힙합플레이야 “UV Cypher” 영상에서 처음 한 게 아닌가?
아, 그게 맞다. 그 영상 전에는 “빠끄”라고 말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때부터 애들이 따라 했다. 내가 뭘 하면 애들이 댓글로 조지면 또 그걸 다시 내가 따라 한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고 노는 식이다.
확실히 이번 앨범을 기점으로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덕을 톡톡히 봤다. 다만 개그성 캐릭터에 음악이 가린다고 느낀 적은 없나?
전혀 없다. 나는 원래 쌈마이다. 그런 건 다 배부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내 음악 전혀 몰라도 영상 콘텐츠를 통해 단 5%라도 내 음악을 듣는다면 성공이다. 나를 그저 개그맨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음악적인 피드백을 기대하지 않으니 서로 실망할 필요도 없는 거지. 그리고 사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신경 쓰는 시기는 지났다.
유튜브 수익도 기대하는가?
아직 정산 받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돈보다도 유튜브 댓글에 관심이 많다. 그게 내 활동에 도움이 된다. 유튜브 제목을 고민하다가 댓글을 보고 ‘올해는 시바꺼’라고 쓴 것처럼.
자신을 단지 래퍼가 아닌 엔터테이너로 규정하는가?
래퍼가 엔터테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더 재밌는 포인트인 것 같다.
유튜브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내가 내놓은 결과물을 존나 많이 보고 반응했으면 좋겠다. 나는 소셜 미디어 지랄하는 거, 공연하는 거 다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금 시대에 가장 붐업이 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택한 것뿐이다.
음악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내 기획사다. 나는 그 안에서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인거고.
티셔츠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갑자기 왜 티셔츠를 제작한 건가?
내가 봐온 래퍼들이 모두 티셔츠를 만들었다. 티셔츠는 요즘 시대에 CD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 팬들이 CD를 사는 건 단지 팬심 때문이다. 쓸모도 없고 쓰는 사람도 없지. CD를 만든 나조차 안 쓴다. 결국, 나 같은 뮤지션들은 음반 판매로는 수입이 부족하니 굿즈를 만들어낸다. 어쨌든 내 앨범이 담긴 티셔츠 아닌가. 그래서 티를 사면 디지털 앨범을 준다. 나는 앨범을 팔았다고 말하고 싶다.
티셔츠가 이 정도로 이슈가 될 거라 예상했는지?
쇼케이스에서 처음 팔았는데, 너무 많이 남아버렸다. 집에 길단(Gildan) 티셔츠 박스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어서 좆같았지. 누굴 줄 수도 없고 처리하기에도 어렵고. 하지만 힘든 인디펜던트 뮤지션의 진심이 통한 걸까? 딱히 누가 개입한 일도 아니고, 그저 그게 전부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시작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마무리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이라면.
직접 본 친구들은 모두 기억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제주도에서 만난 친구다. 길에서 제주도 소주, 한라산을 건네받았다. 내가 직접 간다니까 급하게 뭐라도 들고나온 느낌이었다. 지나가던 그의 어머니를 뵙게 됐는데, 갑자기 한라봉을 막 싸주시더라. 그리고 음악이나 예술하 는 친구들이 많았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처지니까 직접 만나면 좋은 이야기 많이 해주려고 한다. 한번은 병원에 입원한 팬이 내 앨범을 들으면서 힘내고 있다고 DM을 보내서 내가 “그래, 힘내라 시바꺼”라고 답한 적 있다. 그런데 며칠 전, 지하철에 탔는데 누가 나를 부르더라. 돌아봤더니 병원에서 내 음악을 들었다는 그 친구였다. 내 앨범을 들으면서 힘을 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기운이 내게 좋은 영감이 됐다. 좋은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금을 들여 구매한 차량,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최근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영상 콘텐츠에서 자주 보인다. 왜 그 차를 골랐는지?
어릴 때 보던 힙합 뮤직비디오에 항상 이 차가 나왔다. 힙합 뮤직비디오 간지의 표본이지. 멋진 래퍼가 되면 무조건 이 차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돈이 없으니 그저 바라만 보던 차였는데 이번에 티셔츠로 수익이 생겼다. 4일 만에 벌어서 하루에 다 썼다. 중고차 중 이게 시세가 제일 높았다. 직접 보러 갔는데 역시 존나 멋있더라고. 시승도 안 하고 그냥 샀다. 딩고 프리스타일과 한 것도 한몫했다 ─ 염따는 하루에 4천만 원을 쓰는 원데이 FLEX 영상 콘텐츠를 딩고 프리스타일과 함께 진행했다 ─ . 나를 모르는 구독자층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투자한다는 기분으로 질렀다. 돈이야 또 벌면 되니까.
막상 사니까 기분이 어땠나.
그 차를 타면 기분이 존나 좋다. 차가 일단 크고, 높고… 딱 봐도 비싼 것 같잖아. 운전하기에도 너무 편하다. 다른 차가 알아서 피한다. 차를 사고 나서 이틀 정도 혼자 운전하면서 존나 웃었다. 언에듀케이티드 키드의 가사 중에 “명품이 나의 가치를 매겨?”라는 말이 있는데 명품이 내 가치를 존나 매긴다. 막상 돈을 너무 많이 썼네, 이런 생각은 좆도 안 든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롤 폐인에서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는 절대 쉽지 않다는 메시지가 담긴 곡, “yaya freestyle”의 가사가 인상적이었다.
1집을 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원체 별다른 것에 관심이 없는 성격인데, 롤을 하던 때는 정말 게임만 존나게 했다. 그냥 멍하게 자아성찰도 멈춘 채로. 그러다가 1집을 내고 피드백이나 인정을 받으면서 삶의 목표가 생겼다. ‘우리 아빠만큼 존경받는 사람이 돼야겠다’, ‘내가 받은 즐거움을 나눠야겠다’ 등등. 1집을 낸 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스스로를 양아치라고 부르며 음악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 그때를 회상한다면?
TV에 한 번 나가고 나서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살았지. 얼굴 팔리는 게 좋아서 시작했는데 팔리면 팔릴수록 뭔가 가치를 계산하는 나 자신을 느꼈다. 촬영할 때는 텐션 존나 올려서 하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 좆같이 있고, 돈도 얼마 못 벌고, 이걸 왜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때의 경험이 지금 활동에 도움이 되는가.
당연하지. 그 시절이 있었으니 지금 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거다. 즐기려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알았지. 이런 거 한 번 못하면 역풍이 부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보는 그 염따의 방에서 앨범을 완성한다고 들었다. 홈 레코딩 방식을 고수 중인가?
내 방에서 한다. 내가 멋지다고 여기는 뮤지션 모두 그렇 게 한다. 칸예 웨스트(Kanye West)도 호텔에서 50만 원짜리 오디오 인터페이스 꺼내서 녹음하는데, 누가 마이크 얼마짜리 쓴다더라, 컨트롤러 얼마짜리 쓴다더라, 이런 얘기 들으면 하찮다. 뭔 좆도 아닌 얘길 하고 앉아있는지. 홈 레코딩한 걸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업물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아티스트 역량이다. 1000만 원짜리 장비를 쓰는 뮤지션과 50만 원짜리 장비를 쓰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950만 원의 차이를 리스너가 느낄 수 있냔 말이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음악의 가치와 모니터 환경은 한정적이다. 나는 집에서 녹음한 지 오래됐다. 그냥 음악 만들려면 컴퓨터와 마이크 하나만 있으면 된다.
어떤 구성을 갖춰놓았나?
오디오 인터페이스 포르테(Forte), 소프트웨어는 큐베이스(Cubase), 마이크는 아마도 블루버드(Bluebird)로 기억하는데 대학교 동기한테 20만 원에 샀다.
돈도 더 벌었는데, 장비에 투자할 생각은 없나?
없다. 새로 깔고 설치하는 과정이 좆같다. 컴퓨터 하나 사 놓은 게 있는데 심지어 그걸 아직도 방구석에 처박아두고 여전히 산 지 5년이 넘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프로그램 깔기가 귀찮아서. 내 귀에 만약 부족한 게 있다면 바꾸겠지. 근데 아직 부족한 게 없다.
마스터링도 혼자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굳이 남에게 마스터링을 맡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작곡, 편곡, 믹싱, 마스터링 이렇게 분류하는 게 오히려 옛날 작업 방식처럼 느껴진다. 음악을 만들 때 처음부터 믹싱과 마스터링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내 음악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곡을 이것저것 만진다? 그게 좆같은 거지. 이젠 컴퓨터 하나로 다 할 수 있는데, 왜 곡을 맡겨. 혼자 하는 게 실력이지. 마스터링하는 사람은 내 음악을 많이 들었을까? 그것도 아닐 거 아냐. 결국 내 음악은 내가 해야 하는 거고.
[살아숨셔 2] 이후 음악적인 행보에 관해 묻고 싶다.
나는 벌써 [살아숨셔 2] 이후 싱글 3개를 냈다. 일단 올해는 히트 싱글을 계속해서 만들 계획이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듀서를 만나서 하루를 함께 보내고 마지막 30분간 작업하는 방식으로 트랙을 만들고 있다. “돈 Call Me”도 그렇게 나왔다. 그 가사에 나오는 내용 일부가 그날 실제 벌어진 일이다. 칼하트에서 옷 사고 뭐 이런 거. 이안 퍼프 (Ian Purp), 엘라이크(L-like), 콕재즈(Cokejazz), 주럼퍼그(Zoorumpug) 등 다양한 뮤지션과 이미 5곡 정도 완성했다. 앨범 단위의 프로젝트를 이미 진행 중이다. 앨범을 준비하는 사이사이 싱글도 내야지.
현재 지켜보는 새로운 플레이어는?
폴 블랑코(Paul Blanco), 언에듀케이티드 키드, 퓨쳐리스틱 스웨버, 스카이 민혁 등이 있겠다.
래퍼로서 염따의 골(Goal)은?
음 글쎄… 뭐 없는 거 같은데. 나는 바라는 게 별로 없다. 하루하루 쌓는 거지. 일주일이나 한 달까지는 내다보고 산다. ‘뭘 사고 싶다’, ‘놀고 싶다’ 정도는 고민하는데 어떤 사람이 돼야겠다고 목표를 정해두진 않는다. 난 할 수 있는 데까지 랩을 할 거고 그 뒤에는 목수 일을 할 거다.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올드한 게 구린 게 아니라 구린 게 구리다”라고 밝힌 적 있다. 오랜 기간 활동한 뮤지션에게 귀감이 될 만한 코멘트였던 것 같은데, 그들에게 한마디 남기자면.
개소리하지 말고 음악이나 많이 들어라.
진행 / 글 │ 최장민
사진 │ 유민우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Paper 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VISLA Paper는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