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노숙자를 담은 프로젝트, ‘Slavik’s Fashion’

‘옷 잘 입는’ 사람의 조건을 꼽자면 각자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다채로운 스타일의 변주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모든 패셔니스타의 필승 조건. 소위 쿨해 보이는 이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둘러보면 알 수 있듯, 그들은 결코 같은 옷으로 피드를 도배하지 않는다. 하기야 사진을 찍기 위해 옷을 사고 곧이어 중고시장에 되파는 일까지 만연해진 시대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이 없다며 징징대는 우리들의 고민은 귀여운 축에 속할 정도 아닌가. 진성 멋쟁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장바구니를 채우는, 이 악의 굴레를 언제쯤 벗어던질 수 있을까.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높은 확률로 매 시즌 쇼핑의 늪에서 허덕이는 작자가 분명할테니 우리에게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작품을 이 자리를 빌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사진작가 유리코 댜치쉰(Yurko Dyachyshyn)이 세상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노숙자를 조명한 프로젝트, ‘슬라빅의 패션(Slavik’s Fashion)’. 그 면면을 함께 탐구해 보며 소비주의에 찌든 우리의 행태를 되돌아 보도록 하자 . 

우크라이나 사진작가 유르코 댜치쉰이 르비브(Lviv)에 머물 당시, 유독 그의 눈길을 끄는 거리의 남자가 있더랬다. 꼬질한 옷차림과 혼자서 중얼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 그리고 가끔 손에 들려 있던 술과 담배까지. 여기까지 듣자면 영락없는 노숙자 행태지만 이 남자, 슬라빅(Slavik)은 어딘가 빛나는 구석이 있다. 뱅상카셀(Vincent Cassel)을 닮은 잘생긴 외모와 항상 깔끔하게 손질된 머리와 수염(심지어는 겨드랑이 털까지…)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매일 같이 바뀌는 그의 화려한 옷차림이었다. 여름에는 자유로이 벗어던지는 옷가지에서, 겨울에는 겹겹이 알차게 레이어드한 옷가지에서 그의 패션 센스가 확연히 드러나는데, 이는 결코 그가 닥치는 대로 주워 입은 것이 아닌, 확실한 ‘코디’였음을 증명한다. 색 조합이며 스타일이며 어디 한 군데 어색하지 않은 그의 리얼 스트리트 패션. 길에서 잠을 청하는 그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는 ‘비밀 장소’가 있다는 말만을 남겼다. 슬라빅 비밀스러운 스트리트 런웨이를 눈여겨 본 유르코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간 100여 장이 넘는 그의 스타일을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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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폴란드에서의 성공적인 전시를 마친 ’슬라빅의 패션’은 이듬해부터 소셜 미디어 바이럴을 통해 엄청난 인기를 끌며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화려함으로 치장한 하이엔드 패션계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은 비단 패션 팬뿐만 아니라 많은 럭셔리 브랜드를 매혹하기에 충분했고, 마침내 2016년 베트멍(Vetements)을 이끌던 뎀나 바살리아(Demna Gvasalia)는 슬라빅의 착장을 오마주한 제품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하지만 슬라빅을 모델로 삼고 싶어 했을만큼 뎀나의 직접적인 피드백이 있었던 2016년과 달리, 유르코는 뎀나가 그의 동생 구람 바잘리아(Guram Gvasalia)와 설립한 브랜드 VTMNTS가 22SS 컬렉션과 23SS 컬렉션을 통해 ’슬라빅의 패션’ 속 스타일을 어떠한 언급없이 도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프로젝트의 성공을 시기하는 이들이 슬라빅이 진짜 노숙자 아닌 모델이라거나 그의 옷을 유르코가 제공한다거나 하는 의혹을 제기해 왔지만, 뎀나의 발렌시아가(Balenciaga) 쓰레기 백이 증명하듯 슬라빅이 하이엔드 패션계에 불어닥친 ‘거렁뱅이 스타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슬라빅의 거리 패션쇼는 2013년에 멈춰있다. 많게는 몇 개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도 언제나처럼 다시 돌아와 “Hey, Buddy! Where have you been?”하고 유르코를 부르던 슬라빅이 갑작스레 종적을 감춘 것. ‘슬라빅의 패션’이 주목을 받으며 온 세계가 그를 찾기 위해 나섰지만 어디서도 그의 흔적을 발견할 순 없었다. 유르코가 기억하는 슬라빅의 마지막은 어디론가 향하는 그의 뒷모습뿐이었다.

슬라빅을 보고 있자면 종종 그가 집시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가끔 돈 몇 푼을 구걸하기는 하지만 쓰레기를 뒤지지도, 거대한 짐가방을 끌지도, 다른 노숙자들과 말을 섞지도 않는 모습이 노숙자라기보단 자유인에 가까워 보인달까. 특히 그가 카메라 앞에서 천진한 미소와 함께 만세를 부르거나, 주먹을 불끈 쥐거나 심지어는 꽃을 들고 포즈를 취할 때면 그가 얼마나 이 행위를 즐기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데, 이게 꽤 낭만적이다. 슬라빅은 결코 그가 거리를 배회하는 것에 불평하지도, 연민을 바라지도 았는다. 오히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제일 쉬운 일인 양 매일 같이 유르코를 놀라게 했을 뿐.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가 옷을 좋아했다면 딱 슬라빅 같지 않았을까. 혹 아직도 당신의 스타일이 구린 사실을 옷이 부족하다는 핑계는 대충 때울 생각이라면, 우선 의류 수거함으로 향하는 친구를 붙잡아 보는 건 어떨까. 

Slavik’s Fashion 인스타그램 계정
Yurko Dyachyshyn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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