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ktor & Rolf가 런웨이로 불러낸 인터넷 시대의 여성들

 

 

현지 시각 23일, 빅터앤롤프(Viktor & Rolf)의 2019년 S/S 시즌 오트쿠뛰르(Haute Couture) 쇼가 끝나자마자 인터넷 세상은 또 한 번 뒤집어졌다. 이미 수차례 충격적인 룩을 선보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빅터앤롤프지만, 이번 쇼가 특히 더 주목을 받은 이유는 그들의 작품이 인터넷 세대의 소통방식에 완전히 부합했기 때문이다. 이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채널들은 순식간에 그들의 쇼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 찼다.

이번 시즌 빅터앤롤프가 선보인 의상은 맥시멀한 드레스. 밝은 컬러의 툴레가 모델들의 몸을 겹겹이 둘러쌌고, 한껏 부풀어 오른 실루엣이 로맨틱한 무드를 극대화시키는 듯했다. 하지만 첫 모델이 등장하자마자 쇼장의 관객들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첫 모델의 드레스 위로 “NO PHOTOS PLEASE”라는 글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 그 뒤를 잇는 드레스들 역시 “Leave Me Alone”, “I’m Not Shy I Just Don’t Like You”, “Give a Damn”, “Trust Me I’m a Liar” 등의 재치 있는 문구를 달고 나와 당장 밈(Meme)으로 사용해도 손색없는 장면을 연출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문구들이 그저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환하게 웃는 해의 프린트 주위로 적힌 희망적인 슬로건 “I Want A Better World”나 트럼프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특히 더 큰 의미를 지니는 “Freedom” 등의 문구들도 등장했기 때문. 하지만 그들 중 하이라이트는 어떤 정치적인 슬로건이 아닌,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유명한 “I am my own muse” 문구였다. 개개인의 자주성을 주장하는 이 문구를 통해 빅터앤롤프의 드레스들은 단순한 밈을 넘어 하나의 외침이 되었다.

 

컬러풀한 드레스들과 상반되는 이 문구의 조합은 1월 3일에 국내 개봉한 “주먹왕 랄프 2: 인터넷 속으로”를 떠올리게 한다. 엘사(Elsa), 포카혼타스(Pocahontas), 백설 공주(Snow White) 등 디즈니 공주 14명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공주들은 전통적으로 강요되었던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강인하고 주체적인 존재들로 거듭난다. 매번 남성의 도움으로 위기를 타파했던 그녀들이 힘을 합쳐 크고 힘센 남자 캐릭터를 구해내는 장면은 디즈니 영화사의 혁신적인 순간으로 평가받기도. 영화 속에서 공주들이 주인공 바넬로피(Vanellope)의 의상에 감명받아 스웨트 셔츠 등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신데렐라의 상의에 적힌 “G2G”-가야 해요(Got to Go)의 줄임말-이나 엘사의 옷에 적힌 “Just Let it Go” 등의 문구들은 각 캐릭터의 상징을 위트 있게 반영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전통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캐릭터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이런 디테일한 요소들까지 유사한 걸 보아서 빅터앤롤프가 “주먹왕 랄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모든 여성이 공주가 되어야 하거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빅터앤롤프의 여성들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도 마음속 솔직한 말들을 가감 없이 내뱉는다. 빅터앤롤프와 디즈니가 새롭게 제시하는 여성의 모습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모시킬지 기대하며, 그들의 쇼를 한 번 천천히 감상해보자.

Viktor & Rolf 오트쿠튀르 웹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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