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entino와 Undercover, 파리 패션위크에서 합을 맞추다

지난 16일 (현지 시각)부터 파리에서 시작된 2019 가을/겨울 패션위크가 연일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디자이너들이 번뜩이는 영감을 선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때, 메종 발렌티노(Maison Valentino)의 피에르파올로 피치올리(Pierpaolo Piccioli)와 언더커버(Undercover)의 준 타카하시(Jun Takahashi)가 흥미로운 협업을 세상에 공개했다.

이번 시즌 발렌티노와 언더커버의 공통된 주제는 “시간 여행”이다. 발렌티노가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전통적인 세계관에서 언더커버와의 협업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겠지만, 작년 말 Pre-Fall 2019 컬렉션을 위해 일본을 찾은 피치올리가 준 타카하시를 직접 만나게 되면서 두 브랜드 사이의 벽은 허물어졌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발렌티노의 정제된 테일러링과 언더커버의 스트릿 무드가 서로 어우러지게 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 이를 위해 준 타카하시는 일련의 그래픽 시리즈를 디자인했는데, 시간여행, 베토벤, UFO 등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그래픽은 다양한 방식으로 두 브랜드의 융합에 기여했다.

 

두 브랜드 모두 패션위크의 둘째 날에 쇼를 진행했지만, 먼저 시작한 것은 발렌티노의 쇼였다. 작품을 통해 미래 사건들을 예언해 시간 여행자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던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에서 영감을 받은 이 날의 쇼에서 피치올리는 이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젊어진 남성복을 선보였다- 모노톤의 롱 코트, 셔츠, 블레이저로 이루어진 룩 위에 언더커버와 버켄스탁(Birkenstock)의 재치있는 요소들을 끼얹은 것. 준 타카하시가 디자인한 그래픽들이 섬세한 자수, 프린트, 자카드, 인타르시아로 구현되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쇼에 초현대적인 무드를 더했고, 가죽 밑창으로 만들어진 레드 컬러의 샌들과 VLTN 로고가 가미된 블랙 컬러의 애리조나 샌들이 착장을 완성했다. 스트릿웨어로의 영역 확장을 시도했던 피치올리의 이번 도전은 큰 호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발렌티노의 쇼에 등장한 UFO, 우주선 등의 이미지는 시간 여행자라는 콘셉트에 충분히 부합하지만, 관객들을 갸우뚱하게 했던 것은 베토벤의 모습을 담은 그래픽이었다. 하지만 이 궁금증은 2시간 후 언더커버의 쇼에서 해소되었으니, 이번 시즌 언더커버가 전면에 내세운 영감의 원천이 다름 아닌 스텐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였기 때문. 영화 속 알렉스(Alex)의 교화 과정에서 사용되었던 음악이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Symphony No.9 op. 125 ‘Choral’) “이라는 점에서 베토벤 그래픽은 두 브랜드의 세계관을 잇는 가교로써 기능했다.

시간여행이라는 콘셉트에 “시계태엽 오렌지”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더한 언더커버의 이번 컬렉션은 ‘THE DROOGS(갱단의 멤버)’이라는 이름으로 한 편의 연극 같은 쇼를 연출했다. 영화의 주인공 알렉스의 모습이 큼지막하게 프린트된 의상들이 관중들의 눈을 사로잡았으며, 발렌티노의 쇼에서 이미 공개되었던 그래픽들이 언더커버만의 음침한 느낌으로 재해석되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각 잡힌 니트캡, 벨벳 소재의 트러커 수트, 다양한 디자인의 니트웨어들이 쇼를 채웠고, 닥터마틴(Dr. Martens)과 나이키(Nike), 이스트팩(Eastpak)의 제품들이 룩의 완성에 힘을 보탰다. 특히 2019년 스니커헤드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에어 맥스 720(Air Max 720s)의 등장은 또 하나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준 타카하시는 기존의 에어 맥스 720 위에 실내 축구화를 연상케 하는 어퍼를 부착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번 VU 협업은 “시계태엽 오렌지”의 가장 상징적인 트랙 중 하나인 “Singing in the Rain”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간 여행자 가설에서 영감을 받은 피치올리와 준 타카하시는 협업을 통해 두 브랜드의 세계관을 자유로히 여행하며 시간과 공간, 전통과 현대를 공유했다. 한계를 모르는 이들의 상상력이 앞으로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 수 있을지. 그들의 행보를 응원하며, 계속해서 이어질 파리 패션위크를 즐겨보자.

Maison Valentino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Undercover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