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밸런타인 데이, 유명 패션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Lotta Volkova)가 다소 충격적인 3D 애니메이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게시했다. 분명 형형색색 물들인 머리와 앳된 얼굴은 달콤한 밸런타인 데이를 즐기고 두 소녀의 형상이 맞건만 무언가 이상하다! 그렇다, 소름 끼치도록 길게 내 뺀 혀가 그들이 인간이 아님을 증명한다. 아직 놀라긴 이르다. 두 소녀가 탐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음식’에 주목해 보자. 파란 머리의 엠마(Emma)가 집어 든 케이크에는 벌거벗은 인간이 마치 토핑이라도 된 마냥 올라가 있고, 옆에 앉은 분홍 머리 미미(Mimi)는 아예 인간만 쏙 집어 입안으로 넣고 있다.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악마인가? 아니면 지구 침공을 노리는 외계인? 하지만 안심하시라, 이 모든 게 *킹크(Kink) 문화를 사랑하는 3D 아티스트, 사프트커(Saftkeur)의 판타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킹크(Kink): 기이한 성격이나 행동, 특히 성적 취향에서.
사프트커가 구축한 파에라토파(Paeratopa)는 기본적으로 ‘페티시(Fetish)’라는 다소 발칙한 관념을 세계관으로 뒀다. 다만, 그 페티시가 우리가 접해오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를 뿐. 먹거나 먹히는 행동에 흥분하는 ‘보레어필리아(Vorarephilia)’와 자신보다 훨씬 큰 남성 혹은 여성에게 참을 수 없는 성욕을 느끼는 ‘마크로필리아(Macrophilia)’를 필두로, 일평생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페티시들이 파에라토파에서는 판을 친다.
사프트커는 ‘파에란(Paeran)’이라 불리는 이 소녀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정해 두었다. 캐릭터 설명란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나이는 열여덟 혹은 그 이상, 그들은 ‘인간 삼키기’ 같은 께름칙한 취미와 인간과 파에란을 넘나드는 친구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들이 단순 접촉 만으로 인간을 개미만큼 작아지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마음만 먹으면 축소된 인간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도 있지만, 인간을 삼키는 게 취미인 이들이 쉽게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지는 의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파에란에게 삼켜진 인간은 며칠이 지나면 다시 소생한다는 사실. 그러나 놀랍게도 파에라토파 속 인간들 중에는 파에란의 괴롭힘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하니, 과연 페티시 판타지 세계라는 말이 딱 맞다.
2022년, 우리는 누가 뭐래도 ‘취향’이라는 시대의 기류를 맞이하고 있다. 취향이 곧 돈이요, 권력이고 계급인 사회. 가장 독특하고 쿨(Cool)한 취향을 가진 자만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는다. 아니 어쩌면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이가 택한 취향이 쿨함으로 정의되는 것이었던가. 선후관계야 어찌 됐건 사프트커도 파에라토파 건설에 성공했으니, 우리 모두 저 깊은 곳에 숨겨왔던 비밀스러운 취향 그리고 페티시를 조심스레 불러봐도 되지 않을까? 또 어떤 미친 세상이 탄생할지 모르니 말이다. 이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이 적어도 조금은 합당한 것 같지 않나?
이미지 출처 | Saftke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