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you from?’. 당신은 어디 출신입니까? 이 질문이 연고주의와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그럼 다시 묻겠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잘 알고 있으며 어느 정도의 애정을 품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 같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축물은 그 지역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학교에서 ‘건축은 사회적 실천이며 건축가는 사회적 중재자’라 배운다. 과연 정말 그런가? 여기 어떤 건축가가 보여준 뚝심 깃든 헌신과 고찰의 승리는 건축이 지닌 사회적 실천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이번 2022 프리츠커의 영예는 간도(Gando)와 베를린(Berlin)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건축가 디베도 프란시스 케레(Diebedo Francis Kéré)에게 돌아갔다. 1979년 프리츠커상이 제정된 이후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수상자이자 최초의 흑인 수상자가 된 프란시스 카레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의 간도 태생으로 베를린 공대(Technische Universität Berlin)에서 수학한 뒤 베를린과 간도를 오가며 설계뿐만 아니라 교육, 사회 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도시 랜드마크가 아닌 지역 학교와 병원 같은 공공건축을 주로 작업해온 프란시스 케레. 그에게 ‘로컬’이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이자 그의 첫 작품이 있는 부르키나파소의 간도는 전기와 수도부터 교육과 의료 시스템까지 열악한 곳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지역의 재료와 구성을 취하고, 설계와 시공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와 적극 소통하고 그들을 참여시켰다. 특히 재료의 선택과 사용이 인상적. 그가 주로 사용한 재료는 진흙과 목재. 진흙의 경우 지역 재료이지만 주민들은 처음에는 건축 재료로서 진흙을 불신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기간 프란시스 케레가 직접 보여주고 수정하고 실험하며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더불어 그는 평면을 땅에 직접 그리며 주민들의 이해를 높였다고 한다. 심사위원의 평처럼 그의 건축은 목적과 과정에 집중하며 지역 공동체를 위해 적극 기능하고 있다. 그가 행한 건축으로 주민들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학교를 다니는 학생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자연광을 적극 받아들여 조명을 대체한다든지, 재료와 개구부를 통해 자연 환기를 하는 등 패시브 건축을 수용하여 지역 환경 조건들을 최적으로 대응하였다. 그럼 디자인의 관점에서는 어떠냐고? 이것 역시 탁월하다. 재료 본연의 색과 질감을 유지하며 투박하고 토속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주변 경관을 해치는 바 없이 주변 환경과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한된 조건일수록 고도로 추상화된 표상을 사용하기 마련인데, 프란시스 케레의 경우 아프리카 고유 패턴이나 조형 언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며 디자인적으로도 지역성과 전통성을 탁월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안과 밖의 경계가 벽으로 명확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경계가 모호하게 만들어 버리는 재료들의 하모니는 무척이나 인상적. 이러한 면에서 고향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민, 그리고 그에 대한 뚝심 하나로 여러 제약 속에서 최적의 디자인과 환경물리를 지역 공동체와 함께 일궈낸 그의 작품들은 단순히 건축물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컴퓨터보다 종이에, 종이보다 땅에 도면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그의 이번 수상을 비판적 지역주의의 승리로 치부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편 그래왔듯 프리츠커 시즌이 되니 건축계 안팎에서는 한국 건축을 향한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분명 이런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공건축에 대한 연구와 관심도 깊어졌으며 로컬 건축가의 수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도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는지, 다양한 도시문제를 둘러싼 담론이 공론화되고 수렴되었는지, 나아가 건축가의 공헌이 지역 공동체와 구성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수반했는지 냉정하게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온전히 제도만의 문제는 아닐 터.
많은 이들이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의 철거를 근대 건축의 끝으로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능주의와 합리성으로 대변되는 모더니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 어쩌면 이번 프란시스 케레의 수상이 100년 동안 지배적이었던 모더니즘에서 온전히 벗어난 일대의 사건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또는 ‘로컬’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고찰을 위한 담론의 시발점이지 않을까? 마침 250의 [뽕]도 발표됐겠다, 케레의 작품들과 250의 작품을 번갈아 감상하며 ‘우리 지역의 것’에 대해 나아가 ‘우리 것’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떤가. 이에 대한 각자의 답을 만들었다면 그에 의거하여 색다른 시야로 자신의 출근길과 등굣길을 다양하게 즐겨보자.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공식 웹사이트
이미지 출처 | 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