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의 반열에 오른 건축가들의 초기 걸작들은 대개 가족을 위한 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훈훈하고 감동적인 건축가들의 마음만큼 그 작품이 따뜻하고 포근할 것 같은가? 아쉽게도 대부분 자신의 건축 언어를 구축하기 위한 실험의 장이 되곤 한다. 다시 말해, 건축주와 자본의 눈을 피해 건축으로 행할 수 있는 온갖 실험들을 눅진하게 녹인 걸작이 된다. 평범한 것을 추구한다면 억장이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 이 이야기는 어느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건축가에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 캐나다 출신의 건축가는 지역 사회의 새 보금자리를 지으며 자신의 패기 넘치던 시절 속 자신을 되돌아봤다는 소식이다.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가 로스앤젤레스 남부 왓츠(Watts)에 위치한 ‘Children’s Institute’(이하 CII)의 새 캠퍼스를 완공했다. 116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CII는 정치적-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어린이와 그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단체로, 각종 재활 및 교육 서비스를 지역 사회에 제공하고 있다. 프로 보노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는 150명의 직원을 수용할 수 있는 사무공간과 LAPD와 연계한 지역사회 안전 파트너십을 위한 공간을 비롯해 전시 공간 등 여러 프로그램이 담겨 단순 커뮤니티 센터를 넘어 지역 공동체의 안식처로 도약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비정형의 조형 의지가 범람하던 자의적인 형태가 아닌 초기 작품의 경향이 아주 짙고 정갈하게 묻어난다는 것이다. 단순한 정방형의 메스들이 중첩되어 있는 구성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치고는 얌전해 보일 수 있는 구성이긴 하나, 아트리움으로부터 파생된 내부 공간의 볼륨과 프로그램에 따른 공간 위상 현현함은 충분히 해체주의적이다. 이러한 면은 그의 초기작인 ‘Gehry Residence’(1978)를 연상하게 하는데, 공간을 붙이고 때는 소조의 방식을 통해 비정형성을 내부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은 물론 파형 강판과 같은 공산된 산업 재료를 입면 재료로 적극 채택한 점이 그러하다. 물론 클리어스토리(Cleresory)를 통해 적극적인 자연광 수용은 덤이다.
뿐만 아니라 본래 건축물의 목적과 그 기능이 지역 공동체 내부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그간 해체주의 건축을 향한 도시 맥락과의 불통이란 비판 또한 극복한 모습마저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최근 공개된 몇 개의 마천루 작품들이 매서운 혹평을 받았지만, 과거 공개 석상에서 중지를 날리던 93세의 거장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프랭크 게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 모든 것이 담긴 새로운 형태의 보금자리를 선보임으로써 확실해졌다. ‘Gehry Residence’가 해체주의를 태동했듯, 사회의 집이 될 이번 작품이 위기의 현대 건축에 어떤 사건으로 남을지 그 귀추를 계속 지켜보도록 하자.
이미지 출처 | Oltm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