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가였던 故 앨버트 B. 로버츠(Albert B. Roberts)는 2002년 뉴욕 킨더훅의 농장 헛간에서 우연히 한 그림을 발견한다. 세로 95㎝, 가로 59.5㎝ 캔버스에 하얀 수염을 가슴께까지 늘어뜨린 노인의 나신이 담긴 회화.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이 그림은 군데군데 새똥까지 묻어 있는 더러운 상태였지만, 앨버트는 유별난 감식안으로 해당 작품의 남다른 가치를 알아보았고, 약 600달러(약 73만 원)에 그림을 구매하기로 한다. 당시 앨버트는 이렇게 방치된 작품들을 수집하는 데 열정을 갖고 있었는데, 자신의 컬렉션을 두고 ‘길 잃은 그림들을 위한 고아원’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후 미술사학자 수전 J. 반스(Susan J. Barnes)가 해당 작품을 감정하게 되는데, 이때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해당 작품이 바로 17세기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성 히에로니무스(Saint Jerome)’를 위한 습작이라는 것. 반 다이크는 바로크 시대 최고의 초상화가 중 한 명으로 루벤스에 버금가는 플랑드르파(派)의 대가이다.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궁정에서 일했으며, 왕족과 귀족의 우아하고 기품 있는 초상화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의 초상화 양식은 이후 영국 초상화의 발전에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림은 반 다이크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조수로 있던 1615년에서 1618년 사이 벨기에에서 그린 습작 가운데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반 다이크가 실제 모델을 바탕으로 제작한 대형 실물 습작은 현재 이 작품을 포함해 전 세계 단 2점뿐이라고. 해당 작품이 어떤 경로로 유럽에서 미국 킨더훅의 헛간에 닿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킨더훅에 네덜란드 이민자 후손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에 이를 통해 모종의 경로를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화제가 되었던 위 습작은 마침내 지난 1월 26일 소더비 경매에 모습을 드러냈고 300만 달러(약 38억 원)에 낙찰되기에 이르렀다. 이 경매액은 예술가와 자선단체를 후원하고 있는 앨버트 B. 로버츠 재단으로 향하게 되었다고. 이번 경매는 한 영역에 평생을 헌신한 컬렉터의 열정이 의외의 드라마틱한 결실을 거둔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New York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