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피라미드나 판테온 신전 같은 건축물을 두고 ‘100년도 못 살면서 1,000년 살 것처럼 욕심 부리구나’며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모습 종종 봤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이 만든 건축물은 천년을 넘는 시간을 이겨내고 있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하다는 점에서 절로 인생무상이라는 표현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모든 건축물이 이처럼 영생을 누리며 인류사를 관통하고 있지는 않다. 특히 근대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의 경우, 그것이 아무리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수명을 다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적잖이 늘어나는 추세. 그리고 일본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어느 건축가의 작품 또한 시간의 늪에 빠져 과거형으로 남을 위기에 놓였다.
일본 다카미츠시는 가가와 체육관(Kagawa Prefectural Gymnasium)이 철거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근대 건축을 이끌었던 건축가 단게 겐조(Kenzo Tange)가 1961년부터 3년간 설계한 위 작품은 일본 건축계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로 일본 전통 목선(木船)의 형태를 연상하는 거대한 곡면 지붕과 이를 지탱하기 위해 4개의 구조체,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낸 포물선적 내부 공간이 특징. 독특한 조형미의 콘크리트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서스펜션 와이어의 노후로 인한 누수가 2014년 발견된 이래, 철거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던 차에 입찰자 유치에 실패했거니와 독특한 디자인 탓에 보수가 어렵다는 진단으로 이번 철거가 결정되었다고.
같은 이름의 패션 브랜드가 익숙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 단게 겐조. 일본 근대 건축의 거장임과 동시에 메타볼리즘(Metabolism) 건축을 이끌며 프리츠커상을 받은 그. 그는 마에카와 쿠니오(Kunio Maekawa)의 제자로, 마에카와 쿠니오가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혔다는 이력은 자연스레 단게 겐조가 ‘르코르뷔지에’식 모더니즘의 계보를 잇는 계기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그를 두고 서양의 모더니즘 건축 담론을 지역성에 맞게 계승한 건축가란 수식어가 붙는데, 그의 대표작인 가가와현 청사(Kagawa Prefectural Office)에서도 볼 수 있듯 일본 전통 건축의 목구조와 공간 구성, 조경을 적극 도입하며 이를 재해석했다. 구체적으로 콘크리트를 사용했음에도 목가구 구성을 통해 최소한의 요소로 구조를 이루며 당대 모더니즘 담론을 공유함과 동시에 일본의 지역성을 수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쿠로카와 키쇼(Kisho Kurokawa)의 나카킨 캡슐타워(Nakagin Capsule Tower)의 철거에 이은 이번 가가와 체육관의 철거 소식. 이제는 인간의 기대 수명보다 짧아진 건축물들의 수명을 보면서, 이제는 건축물이 되려 우리 인간을 두고 무상함을 토로해야만 할 것만 같다. 메타볼리즘이란 스타일을 넘어 근대란 시대가 소멸하고 있는 현재, 무엇이 남았고 얼마나 변할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사라진 서울 근현대 건축물의 터를 방문하며 현재와 과거를 비교해보는 것은 어떨지. 이번 근대 건축물의 철거 소식을 곱씹어 보면서 지금 바로 밖으로 나가보자.
이미지 출처 | Tange Associa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