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개봉한 일본영화 “야쿠자와 가족”. 기존 야쿠자 느와르를 대표하는 “의리없는 전쟁”이나 “아웃레이지”가 야쿠자의 폭력과 범죄를 다뤘다면, “야쿠자와 가족”은 일본 정부가 시행한 폭력단 대책법과 폭력단 배제조례로 인해 쇠락해 가는 야쿠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화제를 모았다.
야쿠자가 가장 부흥했던 1960년대 중반과 90년대 전후, 10만 명에 달했던 폭력단원 수는 지금에 이르러 2만 명이 채 되지 않으며, 인구 고령화 현상까지 엮여 50대 이상 중, 노년 조직원의 비율이 전체 조직원의 40%를 넘어섰다고 한다. 2013년 일본 최대 규모의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가 자체 발간하는 야쿠자 전용 잡지 ‘야마구치구미 신보’에는 “시대가 어려워지고 있다. 더 이상 명성에만 의지할 수는 없다”라는 내용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야쿠자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 테오 코틀(Theo Cottle)은 패션 브랜드의 화보 촬영을 위해 일본에 방문했다. 도쿄에 온 김에 2주간 머물며 휴가를 즐기기로 한 테오는 현지에서 사귄 한 친구의 소개로 야쿠자와 연결되었고, 몇 차례의 소통 끝에 그들을 촬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었다.
테오는 야쿠자 조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빠르게 쇠퇴하고 있는 그들의 현실에 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다. 이에 일반적인 매체가 묘사하는 폭력단의 거칠고 호기로운 모습이 아닌,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을 잃은 야쿠자의 내면을 담기로 했고, 이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배경으로 목욕탕을 골랐다.
가부키초의 한 목욕탕에서 단 며칠에 걸쳐 진행한 본 프로젝트는 모델이 된 야쿠자는 물론, 사진작가인 테오 또한 모두 알몸으로 촬영에 임했으며, 그런 특수한 상황 덕분에 서로 간 더욱 내밀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집 중간중간 파충류와 양서류가 등장하는데, 이는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우리에 갖힌 지금의 야쿠자를 은유하는 것이라고. 테오는 그렇게 얻어진 수십 장의 결과물을 ‘893 Yakuza: The Setting Sun’이라는 제목의 사진집으로 엮었다.
정설은 아니지만, 야쿠자라는 단어가 화투의 쓸모없는 패 ‘8, 9, 3’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저무는 야쿠자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노쇠한 조직원을 주제로 한 사진에 썩 걸맞은 제목이다. 천천히 감상해 보자.
이미지 출처 | Theo Cot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