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데카라바(Roy DeCarava)는 뉴욕 할렘 태생의 포토그래퍼다. 본래 회화와 판화를 공부한 그는 흑인의 삶을 다룬 미술작품을 그려왔지만, 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반 사이 사진예술에 매료되어 전향한다. 이후 육십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할렘의 일상을 작품화했고, 특히 60년대 흑인이 주도한 인권운동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이름을 알렸다. 데카라바는 당시 사회에 만연한 정치성 짙은 다큐멘터리 사진을 탈피해 개인의 창조적 표현과 주관적 통찰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동일한 피사체라 할지라도 감상자에 따라 개별의 작품은 상이하게 비친다. 그는 인상주의 화풍을 염두에 두기라도 한 듯 자연광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이 곧 창작으로 이어진다 믿었다. 초점이 나간 듯한 역동적인 모습의 피사체, 강렬한 빛으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사진이 그 증거. 당시 판을 쥐고 있던 대다수의 백인 사진작가 무리는 데카라바의 작품을 보고 억압받은 흑인의 거창한 자기표출 행위라고 비아냥거렸다. 사회 운동을 선동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사회상을 그려낸 그의 태도를 헐뜯은 것이다. 그러나 데카라바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주류층의 억압과 폭력을 예술로 정당하게 저항했다.
50년대 중반과 60년대 초반까지 할렘의 모습과 그 주변에 살던 평범한 중하층민의 하루를 엿볼 수 있는 ‘The Sound I Saw’는 그의 걸작이다. 상처받은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려고 부단히도 애썼던 그의 시선은 순수하게 느껴진다. 아낙네와 아이들, 그들이 사는 아파트. 창문을 통해 보이는 도시의 풍경과 행인. 발췌한 사진 일부를 하단에서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