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한국 건물 앞 필수인 아무 조형물들이 갑자기 서로 배틀을 하는걸. 사람들은 처음에 놀랐다가 왜 싸우는지 모르지만 일단 자기네 회사 조형물들 응원하는.
최근 트위터에서 조형물 배틀이 뜨겁다. 국내의 한 트위터리언이 해당 내용을 트윗하며 불을 지폈는데, 이에 유저들이 반응해 여기저기 흉물 취급받던 지역 사회의 조형물들을 출전시킨 것이다. 현생에서 늘 싸우는 존재들 말고, 각각의 조형물이 보유하고 있을 스탯을 마음껏 상상하며 누가(?) 더 강할지 예측하는 재미, 은연중에 구면인 작품을 응원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카르마(일명 인간 지네)’와 정부세종청사 앞의 ‘흥겨운 우리 가락(일명 저승사자)’은 배틀에 참가하는 조형물 중 단연 최종 보스로 꼽히는 중. 상암 MBC와 DDP의 거대 인간 조형물은 체급이 같아 더욱 주목받고 있으며, 이외에도 제주 난타 호텔 앞에 놓인 ‘난타 돌하르방(일명 슉슈슉 돌하르방)’, 한국 디자인진흥원 ‘신인류신디자인(일명 인면 지렁이)’, 그리고 마곡 코오롱 미래기술원의 ‘코끼리(일명 코쉬업 코끼리)’까지 전국 팔도 랜드마크가 총집합했다.
호기롭게 배틀 라인업에 호명된 것, 자랑스럽다고 해야 할까?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르면 연면적 1만㎡ 이상의 건물을 지으려면 건축비의 약 1%가 미술품 설치에 쓰여야 한다. 이 때문에 맥락 없이 설치되어 주민들로부터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가 다반사. 작가의 의도, 작품이 내포하는 메시지가 세간에 인식되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최종 보스이자 서도호 작가의 작품 ‘카르마’는 서로 연결된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미래가 원인과 결과의 산물임을 일깨우려는 의도가 담겨있지만 흉물 취급 받을 뿐이며, 한국무용의 한 장면을 형상화한 ‘흥겨운 우리 가락’은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민원이 빗발쳐 결국 설치 4년 만에 철거되기도 했다.
그러니 마냥 웃으며 즐길 수만은 없다. 그간 제목도 작가도 모른 채 무심히 지나쳤던 공공미술이지 않은가. 이번 배틀을 계기 삼아 일차적으로 한바탕 웃은 뒤, 그다음으로는 조형물의 존재 가치를 반추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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