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철권(Tekken) 유저들에게 ‘성지’로 통했던 대림동 그린게임랜드가 지난 10월 9일 폐업 소식을 전했다.임대료 상승 및 매출 저조가 빚은 경영난과 주인 내외의 고령이 원인으로 꼽혔다. 그저 오래된 동네 오락실의 폐업 소식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린게임랜드가 국내 아케이드 게임 문화에 가지는 상징성은 동네 오락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1997년 개업 이후, 그린게임랜드는 21년간 철권 전문 매장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지켜왔다. ‘성지’라고 칭해진 것은 ‘무릎’ 배재민 선수와 ‘샤넬’ 강성호 선수를 비롯한 최정상급 철권 선수 및 게임 인력을 배출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저들의 기량과 편의를 우선한 업장의 운영 방침 때문. 유저들을 위한 냉커피 서비스뿐만 아니라 쾌적한 게임을 위한 기기 개조, 대형 이벤트 개최 등 그린게임랜드가 국내 철권 문화에 기여한 바는 지대하다. 여건이 어려운 선수들의 해외대회 원정을 사비로 지원한 사연과 오랜 연구 끝에 ‘그린 레버’로 알려진 새로운 철권 전용 레버를 손수 개발한 이야기는 그린게임랜드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수많은 일화 중 일부에 불과하다. 장인 정신에 비견할만한 사장님의 서비스 정신과 그에 상응하는 유저들의 열정은 그린게임랜드를 해외 고수들도 원정 오는 ‘성지’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변해가는 세월에 장사 없다고 했던가. 피시방과 코인노래방의 약진, 철권의 콘솔 및 PC 발매, 아케이드 업데이트 지연 등의 악재가 겹치며 그린게임랜드는 대형 프렌차이즈와 VR / 체감형 기기 위주로 개편되어가는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폐업의 수순을 밟았다. 안타까운 것은 ‘바다 이야기’ 사태 이후 까다로워진 규제와 아케이드에 불리한 방향으로 변모하는 현 게임 시장은 이미 수많은 ‘성지’를 문 닫게 했고, 남아있는 곳들에 여전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점. 그린게임랜드처럼 특정 게임에 의존하는 오락실이 생존하기 더욱 힘든 것은 당연하다.
머리 아픈 이야기는 차치하고서라도, 한 문화를 순수하게 사랑했던 이들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안타깝기 마련이다. 철거 작업 중에 선수들이 감사를 표하고자 매장에 전시해놓은 대회 트로피들을 무단 처분한 주인의 행동 또한 빈축을 사며 마지막 가는 길을 더욱 씁쓸하게 했다. 젊은 땀 냄새와 철없는 열정, 그리고 무림의 기운으로 가득 찼던 성지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