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기간 동안 “만국 공통어”는 영어를 뜻하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세상에는 만국 공통어의 자리를 위협하는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이 있으니, 이는 바로 이모지(Emoji)다. “그림 문자”를 뜻하는 일본어 Emoji(絵文字, 그림 문자)에서 유래한 이 소통 방식은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밀레니엄 세대의 손가락을 타고 인터넷 세상을 점령하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모든 나라의 언어를 통일하며 새로운 “만국 공통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우리는 매일 다양한 이모지를 사용해 자신을 표현하지만, 정작 우리는 이모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2019 트리베카 필름 페스티벌(Tribeca Film Festival)에서 4월 28일부터 5월 5일까지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픽처 캐릭터(Picture Character)”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모지의 탄생 비화와 이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픽처 캐릭터”의 감독 이안 체니(Ian Cheney)와 마사 셰인(Martha Shane)은 12×12픽셀로 이루어진 이 귀여운 심볼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한다. 이모지의 역사는 1997년 일본의 NTT 도코모 사에서 일하던 구리타 시게타카(栗田 穣崇)의 손에서 시작된다. 초기에는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이미지들에 불과했던 이모지는 애플(Apple)과 지메일(Gmail)에 도입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으며, 현재 이모지는 단순한 소통 방식을 넘어 개개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이모지를 개발한 세 명의 인물들을 조명한다. 이모지 개발 당시 15살이었던 라유프 알후메디(Rayouf Alhumedhi)는 전 세계 무슬림 여성들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히잡 여성 이모지을 만들었으며, 아르헨티나 출신의 개발자 듀오는 자국의 문화를 나타내는 마테 음료 이모지를 개발했다. 또한 여자아이들의 인권을 위한 영국 자선 단체인 플랜 인터내셔널 UK(Plan International UK)는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에 맞서 싸워 생리를 상징하는 붉은 핏방울 이모지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들이 단지 몇 개의 이미지를 핸드폰에 추가했을 뿐이라고 평가할지 모르지만,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이들의 업적을 통해 인터넷 세계에서 자신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픽처 캐릭터”는 이모지의 추가, 수정 및 삭제 업무를 총괄하는 비영리 기관 유니코드 컨소시엄(Unicode Consortium)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터넷 세계의 소통 방식을 관장하고 있는 이 단체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직원 중 상당수가 백인 남성들로 이루어진 이 단체가 이모지의 관리를 전담한다는 것은 인터넷 문화가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아무리 단순한 이모지일지라도 우리의 소통 방식과 사고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픽처 캐릭터”의 문제 제기는 설득력을 갖는다.
아쉽게도 “픽처 캐릭터”의 국내 개봉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좋은 다큐멘터리는 어떤 경로로든 봐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 트리베카 필름 페스티벌에 직접 방문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부디 넷플릭스(Netflix)가 힘내주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