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언어를 막 배우기 시작하면 장황한 미사여구라 불리는 장식에 잠식되어 되려 이해하기 힘든 비문을 구사하는 비운을 일상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하지만 언어가 체화되고 표현이 농익으면 우리는 문법의 왜곡 없이 응축된 단문의 형태로 발화하게 된다. 그렇다. 진정한 ‘고수’들은 둘러 말하지도 길게 말하지도 않는 법. 그리고 어느 고수들이 최근 서울의 테크노 신(Scene) 최전선에서 제시함은 텍토닉(Tectonic)함이었다. 은폐와 기만 없이.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언더그라운드 전자음악 채널 ‘텍스쳐스(textures.)’가 다섯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t2x9t4r8s]을 발표했다. 본래 2020년 발매 예정되었던 이번 앨범은 고대 마야 문명이 예견한 실질적 종말의 날인 2020년을 부표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10년 간 인류가 직면할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텍스쳐스 멤버들 외에도 코리아 타운 에시드(Korea Town Acid)를 비롯한 4명의 프로듀서가 참여한 이번 앨범은 정형적인 문법에 엄히 입각하며 처음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정갈한 테크노의 청각적 쾌감을 그대로 선사해주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프랑스 퓨리즘(Purism)이 연상되는 아트웍은 더욱 앨범의 심연을 더해주고 있다.
최근 고기 없는 갈비찜 같은 테크노 싱글들이 범람하고 있고, 이로 인한 정형적인 구조 속 전형적인 언어의 테크노를 향한 갈증은 텍스쳐스에 의해 해소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비싼 갈비찜을 시켜놓고 국물만 나오는 요즘 영 석연치 않은 상황을 그들은 정확한 대척점에서 파죽지세로 타파하고 있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문이랑의 “HAAB”이나 아무(amu)의 “Lyrica”와 같은 트랙이 그러한데, 역시 고수들은 오류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처럼 묵묵히 한길을 파온 ‘고수’ 텍스쳐스가 이번에 우리에게 선보인 12개의 트랙은 어떠한 양념 없이 재료와 손맛에만 충실하며 우리가 처음 테크노란 장르에 매료된 이유를 상기시켜준다.
유례없던 팽창을 경험 중인 서울 테크노 신. 그리고 이를 방증하는 클럽 앞 길게 즐비한 인파. 이들의 춤사위를 더욱 격렬하게 만들 이번 텍스쳐스의 앨범을 지금 바로 확인해보자.
이미지 출처 | tex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