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슈게이저(Piano Shoegazer)가 앨범 [Sisyphus Happy]를 발매했다.
피아노 슈게이저는 다양한 루트로 자신만의 사운드를 개척해 온 아티스트다. 과거엔 ‘pur’라는 이름으로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하며 작품을 선보였다. 피아노 커버곡과 더불어 자작 트랙 “Ghostly Love”가 유튜브 등지에서 인기를 끌며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이후 밴드 살갗, 보이어(Voyeur)를 통해 유의미한 흔적을 남겼고, 다양한 뮤지션의 건반 세션 연주자로 활동해 왔다. 최근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OST에 참여했으며, 장명선 2집 [천사의 몫]의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다.
이번 [Sisyphus Happy]는 피아노 슈게이저가 현재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선보이는 첫 번째 정규 앨범이다. 예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건반 연주를 기반으로 하는 슈게이징 작품. 기능적인 측면에서의 슈게이징 (록)보다는, 그 개념을 적극 차용한 모양새다. 앨범의 전반부에선 DAW를 활용한 전자음악을 중심으로 각종 노이즈를 무자비하게 난립시켜 청각적 카타르시스를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브레이크비트, 앰비언트, 메탈, 인더스트리얼 등 장르 간 전환 및 혼합은 물론, 단일 트랙 안에서 테마가 찢어지고 나뒹구는 모습이 처연하게 아름답다. 그 정수가 담긴 트랙은 단연 “꿈결(Dreamsick)”.
‘파편화된 기억과 노스탤지어를 은유적 사운드로 표현한다’고 스스로를 설명하는 피아노 슈게이저. [Sisyphus Happy]의 초반이 ‘파편화’에 집중했다면, 7번 트랙 “Out of Joint”로 대표되는 후반은 비교적 ‘노스탤지어’에 더 가까운 듯하다. 날카로운 노이즈를 자극적으로 풀어낸 전반부의 반대쪽 극단에서, 후반부의 아련한 질감과 그 위를 덧칠하는 비릿한 노이즈는 묘하게도 케어테이커(Caretaker)의 은연한 [An Empty Bliss Beyond This World]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인지하고 나면, 거대한 돌을 활용한 두 앨범의 커버아트가 묘하게도 서로를 연결해 주는 느낌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앨범의 가장 큰 차이는 그 노스탤지어의 끝에 있다. 머릿속 각인이 증발되는 알츠하이머를 묘사한 케어테이커의 무기력한 노스탤지어와 달리, 피아노 슈게이저의 노스탤지어는 무너지고 세워지길 반복하며 뮤지션으로서의 지난했던 과거를 그린다. 뼈까지 얼어붙는 혼란스러운 기계음 사이로 따스하게 스며든 피아노 연주는, 무기력과는 거리가 먼 그의 투쟁 과정을 은유한다. 그렇게 ‘돌과 화해한 시지프스’라는 이 꿋꿋한 앨범의 주제에 마침표가 찍힌다.
이미지 출처 | Piano Shoegaz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