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전자 음악 장르이자 밈인 ‘힛엠(Hit em)’을 테마로 한 컴필레이션 앨범 [Thank You, Dream Girl]이 지난 11월 15일,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통해 발매되었다.
비요크(Björk)의 [Vespertine]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진 전자 음악 듀오 매트모스(Matmos)의 멤버 드류 대니얼(Drew Daniel)은 지난 7월 29일 이런 트윗을 남겼다. “레이브 파티에서 한 여자애랑 얘기하는 꿈을 꿨는데, 그녀가 ‘힛엠’이라는 장르에 대해 이야기해 줬어. 그건 212BPM에 5/4박자고, 엄청나게 부서진 소리를 낸대. 고마워, 꿈속의 소녀.”
대니얼의 트윗은 곧바로 장르 이름처럼 ‘히트’를 쳤다. 수천 명의 계정이 그의 트윗을 공유하고, 꿈속 내용에 따라 장르를 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와 기묘한 박자, 그리고 ‘부서진 소리’라는 특징을 한 번에 가진 장르라는 점에서, 힛엠은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인터넷 뮤지션들의 창작욕을 불태우기에 충분했다. 힛엠의 규칙을 따라 작곡된 일 분가량의 클립 수백 개가 트위터에 공유되었고, 대니얼은 그들에게 하나하나 감사 피드백을 보냈다.
한창 신예 프로듀서 발굴에 힘을 쏟고 있는 머신드럼(Machinedrum)도 힛엠의 인기에 불을 지폈다. 8월 2일 트위터를 통해 ‘대니얼과 함께 힛엠 컴필레이션을 만들고 있으니 곡을 보내달라’고 발표한 것. 8월 9일에는 신생 레이블 수터블리 비자르(Suitably Bizarre)에서 첫 힛엠 컴필레이션 앨범 [Disposable Heroes of Hit Em]이 발매되기도 했다. 힛엠에서 파생된 여러 담론의 장도 열렸다. ‘106BPM으로 들리는 음악도 힛엠인가?’, ‘좀 덜 부서진 소리도 힛엠이 될 수 있는가?’, ‘나는 ‘허그엠(Hug em)’이라는 장르를 꿈꾸는데, 그건 3/4박자, 53BPM, 아주 부드럽고 상냥한 소리이다’ 같은 농담과도 같은 이야기들이 진지하게 오갔다.
대니얼의 첫 트윗이 올라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힛엠은 무시할 수 없는 어엿한 장르이자 문화가 되었다. NPR, 가디언(The Guardian), RA, 피치포크(Pitchfork) 등 수많은 웹진이 이 현상을 조명했다. 그들의 주장을 종합하자면 힛엠은 여러 이유로 정체되어 있던 전자 음악 커뮤니티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은 사건이었다. 힛엠으로 인해 우리는 댄스 음악 신(scene), 나아가 어떤 문화에 비친 한 줄기 미래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힛엠이 발생한 지 세 달 뒤, 마침내 대니얼과 머신드럼이 기획한 컴필레이션 [Thank You, Dream Girl]이 세상에 나왔다. 투고된 백 개 가까이 되는 출품작 중 스물일곱 트랙을 추려냈다. 이프롬(EPROM)이 작곡한 앨범의 첫 트랙 “The Search”을 힛엠의 얼굴이라 해도 좋을 테다. 데이브 브루벡의 “Take Five”가 연상되는 5/4박자의 재즈로 시작되다가, 빠른 브레이크코어 드럼과 애시드 샘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이후 템포를 낮춰 끈적한 하프 타임 비트로 곡이 마무리된다.
이후에는 갈렌 팁튼(galen tipton)의 “electric wasp nest mix” 같은 개버, Dj Cheesepizza의 “I Want You To Hit Em (feat. Yung Skrrt)” 같은 저지 클럽, 켈빈(Kelbin)의 “Driver” 같은 드릴 앤 베이스, 워크(WERK)의 “Payment” 같은 주크 등 수많은 장르가 힛엠의 빠르고 복잡한 박자와 부서진 소리를 표방한다.
참신한 해석으로 힛엠의 폭을 더 넓혀 주는 트랙들도 있다. 먼로(munro)의 “Heavyheart”는 퓨처 개러지를 연상시키고, 클리어캐스트(Clearcast)의 “Weightless Hit ‘Em”은 비트 없이도 청자를 고양시킨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pRòmethius의 “hiddem”은 제이 딜라(J Dilla)가 떠오르는 재즈 힙합이다.
앨범의 기획자인 대니얼과 머신드럼도 곡을 투고했다. 머신드럼은 대니얼과 함께 그의 스타일을 진하게 녹인 디앤비 트랙 “Oneironaut”을 작곡했고 대니얼은 그의 그룹 매트모스의 또 다른 멤버 M. C. 슈미트(M. C. Schmidt)와 함께 글리치 트랙 “A Grave Covered In Slime”를 작곡했다. 놀랍게도 한국인 프로듀서 기나이직(Guinneissik) 또한 앨범에 참여했다. 그의 “London Hammer”는 한국어 스크리밍이 인상적인 하드코어 테크노 트랙이다.
언급한 트랙들이 아니더라도, 각자 반짝이는 트랙들에서 하이퍼팝, 그라임, 덥스텝 등 셀 수 없이 많은 소스들이 힛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Thank You, Dream Girl]을 비롯하여 수백수천 해석이 아직도 새로운 움직임을 향한 열망을 하나로 모으는 중이다. 한 음악가의 꿈에 머물다 간 소녀는 이제 모두의 눈앞에서 새로운 박자에 맞춰 춤춘다. 힛엠은 5/4박자로, 212BPM으로, 아주 부서지는 소리로 새로운 문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당분간 지켜볼 필요가 있다.
Tabula Rasa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Thank You, Dream Girl] 밴드캠프
이미지 출처 │ The Tabula Rasa Record Comp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