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ady is cute, Milady is punk rock, Milady logged on and won forever”
지난 18일 도쿄 하라주쿠의 스트리트 패션을 대변하던 매거진 후르츠(FRUiTS)가 아방가르드 넷 아트 콜렉티브, 레밀리아 코퍼레이션(Remilia Corporation)과 함께한 캡슐 컬렉션을 발매했다. 시부야 시에서 주최하는 아트 페스티벌 ‘DIG SHIBUYA 2024’ 중 디지털 아티스트가 참여하는 ‘Proof of X‘의 일환으로 두 로고를 가슴팍에 새긴 후드와 토트백을 비롯해 큰 눈망울과 앙증맞은 귀를 머리에 단 캡과 스티커가 컬렉션을 채웠다. 하라주쿠 특유의 키치한 스타일로 사랑받아 온 후르츠기에 모든 굿즈가 시선을 사로잡지만, 넷 아트(Net-Art)에 중점을 둔 레밀리아 코퍼레이션이 함께한 만큼, 함께 출시된 ‘FRUiTS MiLADY 3D NFT’ 역시 놓칠 수 없다.
차라(Chara)의 음악을 좋아하는 다소 반항적인 노리코(Noriko)를 시작으로(그녀가 전하는 스타일링 팁이 ‘What the hell’인 걸로 미루어 보아), 크레페 카페 직원 히로미온(Hiromyon)과 젠틀한 컬러를 즐겨 입는 고등학생 카오리(Kaori)를 비롯해 마도카(Madoka) 그리고 써니(Sunny)까지. 과거 후르츠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쇼이치 아오키(Shoichi Aoki)가 담은 실제 길거리 모델을 바탕으로 제작된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가상 세계에 빠져들 유저를 맞이한다. 캐릭터 옆에는 모델이 된 실제 모델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묘한 현실감을 더했다. 이에 더해 레밀리아 고등학교의 디저트 방과후 수업을 듣는 8명의 픽셀 캐릭터라는 콘셉트의 ‘Kagami Academy’가 NFT 컬렉션을 완성했다. 캡슐 컬렉션의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들려오는 핑크빛 만화 같은 배경음악과 캐릭터들의 귀여운 몸짓에 시선을 뺏기는 것도 잠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도대체 ‘밀라디(MiLADY)’가 뭐란 말인가.
밀라디를 알고자 한다면 우선 레밀리아 코퍼레이션이 어떤 그룹인지 알아야 한다. 2017년 쇼이치 아오키는 돌연 후르츠의 스트리트 사진을 중단하는데, 이유인즉슨 사진 찍을 멋진 아이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고. 레밀리아는 이와는 반대로 그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온라인 세상에 있을 뿐이라 밝혔다. 이처럼 레밀리아는 후르츠가 구축했던 하라주쿠 거리의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구현하고자 뭉친 팀이다. 아티스트 샬로 팽(Charlotte Fang)을 주축으로, 모델, 작가, 무직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모여 후르츠가 도쿄의 개성 넘치는 스타일을 아카이빙했던 것처럼 디지털 환경 속에서 예술, 스타일을 남기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면 임무.
그리고 마침내 2021년 8월, 레밀리아가 후르츠가 형성했던 도쿄 스트리트 스타일에 영감을 받은 PFP(Profile Picture) NFT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밀라디가 세상에 공개된다. 밀라디는 일본의 Y2K 스타일을 구성하는 5 요소, 즉 갸루, 로리타, 하라주쿠 스타일, 하입비스트, 프레피를 기반으로 생성된 NFT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본래 ‘온라인상에서 착한 남자’를 뜻하는 단어 “m’lady”에서 기반한 만큼 중성적면서도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 레밀리아는 해당 NFT 밀라디의 프로필 사진 10,000개를 한데 모은 ‘MiLADY Makers’를 출시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 만화의 큰 특징 중 하나인 거대한 눈망울과 ‘치비(귀여운 가분수)’ 스타일로 대표되는 앙증맞은 캐릭터와는 달리, 레밀리아는 밀라디에 총을 쥐어주거나 피를 튀기며 께름칙한 공포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사이키델릭한 디지털 이미지와 더불어 그들이 제작한 피지컬 굿즈 역시 상당한 인기를 끌었는데, 밀라디의 큰 눈망울을 프린트한 히키코모리 후디 혹은 비흡연자라도 소장욕구를 일게 만드는 담배 케이스 등을 판매했다. 특히 파슨스, CSM의 여학생들에게 4개월 간의 설문조사한 결과 해당 담배 케이스에는 에세(Esse’s) 혹은 럭키(Luckies)의 담배가 어울릴 것이라는 제품 설명은 레밀리아 코퍼레이션의 재치 넘치는 아이디어를 여실히 증명하는 예다.
이와 동시에 도쿄, 뉴욕을 오가며 여러 차례 레이브를 펼친 그들인데, 장르는 역시 그들의 디지털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는 사이키델릭한 전자 음악. 지난해 2월에는 K-팝을 바탕으로한 카세트 테이프를 발매한 바 있으며, 레밀리아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서는 이들의 여지껏 만들어 온 믹스셋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독자적인 색을 탄탄히 다지며 순탄히 성장하는 듯했지만, 돌연 여러 논란에 휩싸이며 레밀리아 코퍼레이션은 위기를 맞는다. 그들이 디지털로 공개한 BITCH 티셔츠의 T에 적힌 단어 ‘Treblinka’가 문제가 된 것인데, 트레블링카는 과거 유대인 처형장으로 사용된 곳이기에 많은 이들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 레밀리아는 해당 이미지가 디지털 소스 속에서 무작위로 사용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계속해서 이어져, 팽이 온라인 상에서 인종차별, 섭식 장애 및 자살 조장 등의 계정을 운영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팽의 적극적 해명에도 불구하고 급격히 하락하는 NFT 가격에 결국 팽은 프로젝트 리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허나 팀원들의 요청에 다시 일주일 뒤 복귀, NFT 가격 역시 회복세에 올랐다). 밀라디 메이커스는 사건에 대한 해명을 속속들이 하며 논란은 수그러들었다(논란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팟캐스트 인터뷰를 참고하길).
인생사 새옹지마, 우여곡절을 겪은 레밀리아에게 한 차례 호재가 찾아왔다. 바로 세계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밀라디의 밈을 트위터에 언급한 것. 그의 언급과 동시에 NFT 가격은 57%가 상승했으며, 레밀리아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밀라디 컬렉션을 기반으로 하는 밈 코인 LADYS는 무려 5,250% 이상 급등했다. 이는 분명 NFT 혹은 코인의 영역을 넘어 보다 다면적인 부분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고, 레밀리아는 그렇게 그들의 뿌리라 할 수 있는 후르츠와의 협업까지 이뤄내게 된다.
생산하는 이미지만큼이나 다소 시끄럽고 정신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레밀리아 코퍼레이션. 그들의 발칙한 행보가 과연 어떤 끝에 다다르게 될지, 후르츠와의 캡슐 컬렉션을 즐기며 이들의 행보를 지켜봐도 좋겠다.
이미지 출처 | Remilia Corpor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