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chno-prayer로 뜯어보는 Bjork의 90년대 패션 아카이브

자국 아이슬란드가 그의 이름을 딴 섬을 선물했다는 루머가 생길 정도로 존재 자체로 전설이 된 뮤지션이자 영화배우, 그리고 천생 아티스트 비요크(Bjork). 재즈, 하우스, 트립합 등 다양한 장르의 결합을 시도했던 그녀지만, 파격적인 콘셉트의 무대의상과 퍼포먼스로 ‘비요크’란 이름을 떠올리는 이들도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수놓은 90년대 초기작들처럼, 그 독보적인 패션 스타일 역시 현재까지 무수히 회자되며 다양한 아카이브를 양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90년대 그녀의 패션 스타일을 빠짐없이 긁어모으고 있는 1.4만 팔로워의 인스타그램 계정 @techno-prayer 역시 그중 하나. 해당 계정의 피드 속 이미지를 기반해 주요 아이템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변화무쌍한 스타일을 선보이며 현재까지 9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비요크의 스타일을 함께 파헤쳐보자. 이 글이 끝나갈 때쯤이면 평소 해보지 않았던 다소 모험적인 패션적 시도를 하게 될지도.


Bjork in Pink

@techno-prayer의 아카이브 속 가장 눈에 띄는 컬러는 바로 핑크. 때로는 한없이 가녀린 혹은 한없이 귀여운 단순한 색이지만, 비요크는 소재와 디테일, 스타일링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 만들어내며 그만의 방식으로 다채롭게 소화해 냈다.

첫 번째 사진 속 비요크가 입은 원피스는 조 베이츠(Joe Bates)의 커스텀 메이드 제품으로, 얇은 소재에 그런지한 무드의 스티치가 들어간 것이 포인트. 목 가운데 별 모양 장식은 화려함과 동시에 키치함을, 장미꽃으로 묶은 꽁지머리는 귀여운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 이 피스는 비요크가 그랬던 것처럼 원피스로도, 타이트한 탑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터키 출신 디자이너 리펫 오즈백(Rifat Ozbek)의 벨벳 핑크색 탑을 입은 비요크. 곳곳의 스탬프 프린팅과 주황색 스트링이 돋보이는 W&LT의 팬츠와 94년 출시되어 최고급 농구화 기술의 사용과 퓨처리스틱한 디자인, 독특한 색의 조화로 이목을 끌었던 리복의 상징과도 같은 인스타 펌프 퓨리와 함께 매치했다. 타이트한 상의와 배기핏 팬츠의 대비감으로 장난스럽고 활발한 소녀의 감성을 한껏 끌어올린 룩이라 할 수 있다.

독특하게 말아 올린 짧은 머리와 동양풍 벽지가 신비로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비요크가 멜로디카를 불고 있다. 여기서 그의 드레스는 “지금까지 가장 로맨틱한 꼼데가르송이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의 1995년 가을 컬렉션 제품이다. 연꽃 모양의 프릴과 백리스 디자인은 비요크 안의 소녀 그리고 어엿한 여성의 모습을 동시에 끄집어낸다. 얼핏 파자마 같기도 한 드레스지만 비요크의 깊은 눈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Husseion Chalayan

런던 출신 디자이너 후세인 샬라얀(Husseion Chalayan)은 90년대 비요크의 패션 아카이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비요크는 공식 석상 및 라이브 퍼포먼스에서 여러 차례 그의 옷을 착용했으며, 미래지향적이고 철학적인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 점은 비요크의 실험적인 음악성과 분명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2집 앨범 [Post] 작업 당시, 뮤직비디오 감독인 스테판 세드나위(Stéphane Sednaoui)는 일본이나 중국의 박람회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기모노나 중국풍 드레스를 권했지만, 비요크는 후세인 샬라얀의 드레스를 선택했다. 비요크는 1집 앨범의 성공 이후 런던에서 앨범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때 가족,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편뿐이었기에, 후세인의 입체적인 패션 철학이 묻어난 원피스 ‘Airmail Dress’는 이러한 그녀의 고독한 마음을 대변해 주기에 완벽한 선택이었다. 마치 비요크의 내면적 혼란을 우편 봉투에 담아 대중들에 음악으로서 선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 [Post]의 음악적 성공만큼이나 앨범 커버 속 비요크의 모습도 오늘날까지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각인되고 있다.

국제 우편 봉투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이 드레스는 종이와 유사한 타이벡(tyvek) 소재로 제작됐기에, 실제 접어 편지봉투로 만들 수 있었다. 드레스를 제작한 후세인 역시 어린 시절 영국에서 터키로 어머니에게 편지를 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전했다.

비요크의 애착 아이템 중 하나인 ‘핑크색’ 슈트 역시 후세인 샬라얀의 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Post] 커버 속 재킷과 동일한 타이벡 소재로 제작되었으며 그녀가 슈트를 소화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캐주얼한 티셔츠와 노란색 미니백을 함께 조합하거나, 과감하게 상의를 드러낸 채 입기도 하며, 또 다른 단골 아이템인 리복 스니커즈를 신어 슈트의 무게감을 덜어내기도 한다.

한편 보기만 해도 몸이 붕 뜰 거 같은 스커트는 후세인의 상상력만큼이나 풍성하다. 티셔츠와 스니커즈를 활용하여 언밸런스하게 연출한 핑크색 스커트와는 달리, 후세인의 재킷까지 착용한 두 번째 코디에서는 과감하고도 동양적인 무드가 가득하다. 94년도에 제작된 후세인의 재킷은 오묘한 민트색 위로 짓이겨진 플로럴 프린팅이 돋보이는 제품으로, 이 역시 타이벡을 소재로 해 불규칙하고 자연스러운 구김이 드러나 더욱 유니크하다.


Graphic T-Shirts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예술가의 아우라에서 벗어나, 일상적이고 개구쟁이 소녀 같은 모습을 꾸준히 보여온 비요크. 화려한 컬렉션 피스만큼이나 편안한 티셔츠 한 장은 섬세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그의 음색처럼, 독특한 프린팅의 그래픽 티셔츠는 그 톡톡 튀는 매력을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개중에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레드 컬러의 카고 팬츠와 여기에 눈알이 튀어나오는 다소 기괴한 애니메이션 프린팅의 티셔츠의 조합. 짧은 기장의 티셔츠와 함께 넉넉한 핏의 활동성 있는 팬츠, 실용성을 겸비한 리복 스니커즈의 조합으로 비요크만의 말괄량이룩 완성.

이번에는 그래픽 티셔츠와 함께 색조합을 열렬히 활용했다. 소년의 얼굴이 큼직하게 프린팅된 티셔츠와 스니커즈의 색을 레드로 통일시켰다. 이 컬러의 조합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것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화이트컬러의 팬츠. 단조로운 원색의 사용으로 인해 왠지 모를 시각적 안정감을 전달한다. 무려 신발 밑창과 팬츠, 헤어와 티셔츠 프린팅, 티셔츠와 신발까지 삼위일체를 이룬 컬러 조합의 끝판왕 되시겠다.

93년 첫 EP [Debut] 발매 후 선보인 라이브 무대에서 ‘아톰(Astro Boy)’이 큼지막하게 프린트 된 티셔츠로 등장한 비요크의 모습이다. 해당 스타일이 상징적인 이유는 바로 비요크의 싱글인 “Army Of Me”의 앨범 커버 속 캐릭터가 아톰과 비요크의 조합인 ‘아스트로-비요크(Astro-Björk)’이기 때문. 비요크는 다양한 음악성을 가진 만큼, 무대에서 자신이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퍼포먼스에 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90년대를 지나며 그녀의 음악적 캐릭터성을 점점 확장되어 갔고, ‘아스트로-비요크’가 이러한 그녀의 세계관의 시발점인 셈. 비록 티셔츠는 빈티지 제품으로 누가 디자인 했는지 밝혀진 바는 없지만, 아톰 티셔츠를 입고 무대에 선 90년대의 비요크는 마치 익명의 슈퍼히어로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이번에는 단정한 올블랙 착장에 외계 생명체가 반항적으로 등장했다. 검은색으로 통일된 아웃핏 덕에 자연스레 티셔츠로 시선이 간다. 여기에 90년대 마르지엘라의 제품으로 추정되는 랩스커트와 투박하고 두꺼운 쉐입의 부츠를 매치했다.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긴 기장의 스커트와 올블랙 아웃핏에 두 외계인과 눈을 맞추게 만드는 발칙하고도 단정한 룩.


Black Dress

블랙 드레스는 보통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주기 마련이나 비요크는 이 클리셰를 단번에 깨트리고 그녀만의 방식으로 소화했다. 홀터넥의 퍼 원피스 그리고 레더 암워머를 함께 착용해 소재의 대비를 통한 부드럽고도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동시에 스모키한 메이크업으로 시크하면서도 차가운 이미지를 한껏 드러낸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이번에는 고딕풍이 물씬 풍기는 로브 드레스를 주목해 보자. 풍성한 손목 프릴과 발목을 덮는 긴 기장으로 우아함을 가득 뽐내고 있지만, 꽤나 부스스한 머리는 블랙 드레스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비요크의 아이코닉한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마치 중세 시대 마녀를 재현한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블랙으로 무장한 모습이 퍽 잘 어울린다.

다시 한번 후세인 샬라얀의 등장. 95년 가을 컬렉션의 드레스와 함께 나이키의 에어 리프트를 착용했다. 깊게 파인 넥라인과 커팅된 어깨선,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얇은 소재의 원피스를 정적이면서도 페미닌하게 소화한 모습.


Exotic Bjork

비요크는 아이슬란드 태생이지만, 어릴 적 스스로를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만큼 동양적인 외모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동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 런던에 머물 당시에는 발리우드 음악에 빠져 인도 전통악기를 사용한 “Venus As A Boy”와 같은 명곡이 낳기도 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녀의 패션에는 국경을 넘나 든다. @techno-prayer의 계정을 탐색하다 보면 이국적인 풍의 옷을 입은 비요크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함께 살펴보자.

94년도, 비요크가 데뷔 이래 MTV 뮤직 어워드에 처음 등장한 순간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중국풍 실크 숄을 걸치고, 사방으로 돌돌 말아 올린 머리와, 종이 재질의 순백색의 맥시 드레스, 갈색 하이킹화, 이국적인 미를 끌어올리는 올리브색 렌즈와 독특한 컨투어링까지. 그만이 소화할 수 있는 완벽한 믹스매치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긴다. 소재와 컬러, 분위기와 용도 모든 반면에서의 본질을 깨트리고 말이다. 이날 비요크는 베스트 비디오 부문에서 여러 차례 노미네이트되며 괴물 신인으로서의 파급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단조로운 원색의 과감한 사용이 돋보이는 드레스는 97년도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의 제품. 중국 전통 신발과 함께 착용해 주었다. 목과 발끝까지 온몸을 감싸는 기장의 드레스이지만, 캐주얼하게 떨어진 어깨선과 비요크의 타투는 자유분방한 그녀의 분위기를 상기시켜 주며 균형감을 만들어준다. 내추럴한 90년대 스타일 메이크업과 사선으로 뻗은 앞머리의 또한 전체적인 착장과 색다르게 어우러진다.

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의 민속성이 담긴 의상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풀어낸 에스닉 스타일로 주목받았던 90년도의 장 폴 고티에. 그는 94년도에 티베트 전통 의상을 연상시키는 ‘르 그란드 보야지(Le Grand Voyage)’를 선보였는데 당시 첫 앨범 [Debut]를 발매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비요크가 장 폴 고티에의 런웨이에 올랐고, 이날 비요크가 입은 아우터는 ‘비요크 코트’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는 현재 한화로 약 9천4백만 원에 판매될 정도로 높은 가치를 가졌다. 90년대 비요크가 패션쇼 모델로 선 몇 안 되는 희귀한 영상도 함께 감상해 보자.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의 97 FW 제품을 착용한 비요크. 일본 패션계의 거장이라고 일컫는 이세이 미야케의 아방가르드함이 드러난 랩 드레스다. 90년대 이전부터 일본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 유도복 등에서 영감을 받아 이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해 온 그인 만큼 이 드레스에서도 일본적인 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연을 닮은 색들이 직선 형태로 조화를 이루며, 발 끝까지 사선으로 트인 밑단이 돋보인다. 사진 속 비요크도 일본의 전통 신발과 버선인 게다와 타비 양말을 착용하여 머리부터 발끝까지 일본풍으로 꾸몄다.


하나부터 열까지 가지각색, 지구 어디에서 발견되어도 자연스러울 것 같은 그녀의 공간 초월적인 그녀의 패션 아카이브를 살펴보았다. 90년대 사진들임에도 불구하고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패션이라는 확신 또한 든다. 또한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함이 느껴지는 그녀의 아웃핏은 다양한 아이템들을 재치 있게 조합해 많은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서랍 속 손때 묻은 옷들이 넘쳐나도 항상 입을 옷이 없다 투덜대는 우리. 내일 아침 일어나 옷장 앞에 섰을 때는 항상 손이 가던 옷 대신, 사진 속 비요크처럼 조금 비범한 시도를 하는 건 어떨까? 오늘 필자가 소개한 룩들은 이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니, 더 많은 비요크의 패션이 궁금하다면 @techno-prayer를 통해 확인해 보자.


이미지 출처 |techno_prayer, Vouge, bjork.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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