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레이션 게임 제작사 ‘Artdink’의 괴짜 게임과 감미로운 사운드트랙에 관하여

사용자를 가상의 세계로 이끌고, 독특한 경험을 선사하는 비디오 게임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성장했다. 단순한 취미나 오락의 한 형태를 넘어서, 대중들의 일상과 여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한 게임을 더욱 풍부하고 감동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가 음악이다. ‘타이토(Taito)’가 1978년 게임 “Space Invaders”에 간단한 베이스 루프음을 삽입한 이후부터 오늘까지, 수없는 명(名) 게임 배경음이 탄생하였고, 이는 플레이어가 더욱 흥미진진한 모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중 몇몇 게임 음악은 플레이어의 귓가를 맴돌며 ‘배경 음악’이 아닌 온전한 ‘음악’으로 인식되고 소비된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게임사 아트딩크(Artdink). 유튜브로나마 확인할 수 있을 그들의 게임 배경 음악은 오로지 음악으로 인식하여 즐겨 감상하기에도 적절하더라. 비록 이들의 게임을 플레이한 적이 없어 배경 음악으로 탁월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게임사 아트딩크의 90년대 사운드의 주축은 스즈키 야스유키(Yasuyuki Suzuki)였다. 스즈키는 1990년 게임사 ‘자레코(Jaleco LTD.)’에서 게임 음악가로 첫 발자국을 내디뎠고, 1995년에 ‘아트딩크’로 이직했다. 그가 아트딩크에서 활동할 당시는 3D 게임 여명기. 그때 스즈키가 제작한 게임 음악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플레이리스트에 적용하여도 무던히 잘 어울린다. 이러한 특징 덕분일까. 최근에는 그가 작곡으로 참여한 게임 OST가 바이닐 레코드로 제작되어 판매되기에 이르렀다. 음악이 ‘레코드’에 담긴다는 것의 의미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셈이다. 또한 게임 음악은 배경음의 역할을 넘어 청각적, 촉각적 경험을 선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의미기도 하다.

20세기 말 전 세계 게임 스튜디오들이 5세대 콘솔(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세턴, 닌텐도 64)을 두고 각축을 벌이던 당시, 스즈키가 음악으로 참여한 아트딩크 게임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꽤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하에 아트딩크의 기발한 게임 몇 가지와 음악을 함께 소개한다. 확인하고 마음이 동한다면 여러분의 플레이리스트로 옮겨두길 권한다.


태양의 꼬리(Tail of the Sun)

원시인 시뮬레이션 “태양의 꼬리”는 1996년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용으로 출시되었다. 지적 호기심 탐구를 추구한다는 게임사 아트딩크. 철도 경영, 신대륙 발견, 레저 스포츠 등 평범한 시뮬레이션 게임부터 똥냄새 그득한 게임까지, 아트딩크의 톡 쏘는 게임 이력은 업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편. 90년대 중반, 게임계에서도 괴짜로 유명한 이이다 카즈토시(Kazutoshi Iida)가 아트딩크에서 활약하였는데, 그때 이이다가 개발한 게임 중 하나가 바로 “태양의 꼬리”다.

Kazutoshi Iida

이이다 카츠토시는 탐구와 발견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것을 목적으로 게임을 제작하는 디자이너였다. 미술계의 관습을 뒤엎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에 영감을 얻어 게임을 예술적 표현의 수단으로 여긴 것. 따라서 플레이어의 자유도가 상당히 높으며 비선형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게 이이다 게임의 특징. 최근 발전된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큰 인기를 얻는 장르인 오픈 월드, 심리스, 샌드박스 형에 속하는 여러 힐링 게임들이 어찌 보면 이이다의 괴짜스러운 게임 철학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태양의 꼬리 실제 플레이 영상

“태양의 꼬리”는 제목 그대로, 매머드를 잡고 상아로 높은 탑으로 쌓아 태양의 꼬리를 잡는 게 클리어의 조건이다. 드넓은 자연을 거닐다 기면증 증상과 흡사하게 급작스레 잠에 빠져드는 캐릭터를 공략하는 것 또한 나름의 플레이 포인트. 오늘날의 게임 “젤다 : 야생의 숨결”처럼 당시 야생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원초적 본능을 일깨워 주기에 충분했지만, 열악한 컴퓨터 기술적 한계와 맞닥뜨린 폴리곤 3D 그래픽은 조악했고, 불친절한 인터페이스가 더해지며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박한 평가를 받아 흥행에 참패했다고. 지금 보면 그래픽이 아주 귀여운 수준이다.

적막한 야생의 인게임 속에서 아주 가끔 재생되어, 음악의 역할이 게임에서 주요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8박자의 반복적 댄스 음악을 골자로 제작된 배경음악은 원시적 분위기와 유쾌한 게임의 정체성을 잘 대변했다. 작곡가는 앞서 설명한 스즈키 야스유키, 그리고 스가누마 에미코(Emiko Suganuma).

오프닝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게임의 메인 테마. 퍼커션과 오르내리는 베이스, 신명나는 추임세가 반복을 이뤄 중독적이다. 댄스 플로어 친화적으로 민첩한 트라이벌 하우스 장르와 근접한 BGM.

매우 드라마틱한 전개를 지닌 곡이다. 1분 28초부터 1분 50초까지의 애시딕한 짧은 파트는 동시대의 The Future Sound of London의 음악을 연상할 수 있다.

D&B가 서쪽의 섬나라 영국의 레이브 신(scene)을 뒤흔들고 있을 때, 동쪽의 섬나라 일본 또한 자신들의 문화에 D&B를 접목하기 시작했다. “태양의 꼬리” BGM “Junguu Kibao”도 그 예시다.

게임의 엔딩 테마. 게임을 끝내고 서서히 차오르는 벅찬 감동과 여운을 의식한, 느긋하고 아름다운 멜로디의 BGM. (필자의 애청곡 1)


아쿠아노트의 휴일(Aquanaut’s Holiday)

해저 탐험 시뮬레이션 게임 “아쿠아노트”는 앞서 소개한 이이다 카츠토시가 아트딩크에서 첫 번째로 제작했던 게임이다. 그의 게임 철학에 걸맞게 탐구와 발견의 즐거움이 주안점인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큰 목적 없이 해양을 탐사한다. 1995년에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출시되었고 2008년에 “아쿠아노트의 휴일: 숨겨진 기록”이라는 리메이크 타이틀이 플레이스테이션3용으로 출시되기도 하였다. 본 문단 하단의 영상이 실제 게임 플레이 영상.

Aquanaut’s Holiday PS1
Aquanaut’s Holiday: Hidden Memories PS3

원작의 바다는 심해에 가까운 짙은 남색이었다. 마치 공포 게임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는데, 리메이크에서는 보다 옅어져 바다의 푸른 상층부를 훌륭히 재현한다. 또한 각진 지형지물 및 바다 생명체들은 더 완곡하게 다듬어지고 풍부하게 등장해 플레이어는 실제 바다를 탐사하는 듯한 경험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1995년 출시된 초기작의 음악은 크게 인상 깊은 음악이 없지만 혹시 흥미 있을 독자를 위해 하단에 임베드했다. 오히려 음악은 2008년의 리메이크작의 몇몇이 더 인상 깊다. 그중 트랙 “Into the Profound World”, “Sea of Tranquility”은 마치 맑고 투명한 바다속을 유영하는 것처럼 노스텔직한 멜로디와 물방울처럼 귀여운 아르페지오가 살랑이는데, 이는 지금 ‘프루티거 에어로’ 미학을 좇는 이들에게 특히나 흥미로울 것 같다. 아쉽게도 유튜브 및 음원 플랫폼에서는 확인할 수 없고 ‘이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바람의 노텀(Notam of Wind)

“바람의 노텀”은 1997년 출시된 열기구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역시나 플랫폼은 ‘플레이스테이션’. 나가이 히로시(Hiroshi Nagai)의 익숙한 일러스트가 시티팝 레코드를 연상시키는데, 이는 놀랍게도 게임의 메인 비주얼로 적용됐다.

바람에 의존하여 비행이 다소 제한적인 열기구의 특성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게임. 물론 요즘의 전투기 조종 시뮬레이션에 비하면 답답하긴 매한가지겠지만, 평화롭고 모험심을 자극하는 음악들이 열기구를 조종하는 동안 적절히 재생되어 플레이어의 유유자적한 비행을 도왔다는 게 플레이어들의 공통된 평가.

본 게임의 OST는 스즈키 야스유키가 제작한 게임 음악 중에서도 역작으로 꼽힌다. “바람의 노텀”의 음악이 재발굴된 때는 2010년대. ‘베이퍼웨이브(vaporwave)’가 인터넷 유저들 사이에서 한창 열띠게 논의되던 시기에 장르 팬들 사이에서 간간히 입방아에 올랐던 음악이다. 베이퍼웨이브’는 80, 90년대의 훵크와 디스코, 뉴에이지 음악 등을 재편집하여 인터넷 여명기 무드를 재현하였지만, “바람의 노텀” OST는 재편집이라는 수고가 수반되지 않았다. 오리지널 그 자체로도 베이퍼웨이브 장르 팬들이 원하던 무드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기구가 떠오르기 직전의 상황을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이 음악은 그러한 여행자들의 붕뜬 설렘을 대변하는 곡이다.

“Tranquility”의 노스텔직한 멜로디는 플레이어의 유유한 열기구를 조종을 물심양면으로 도왔을 것이다. 여행이 끝난 후 노을 진 지평선을 바라보며 감상에 젖을 때 재생하기 적절한 음악.

앞선 두 곡은 플레이어가 열기구를 조종할 때 감상할 수 있었던 음악이었지만, “Customize”는 열기구의 외형을 커스텀마이즈 할 때 등장한다(필자의 애청곡 2).

“Customize”는 “Tranquility”와 마찬가지로 노스텔직한 멜로디가 깊은 여운을 안겨주는 곡. 게임의 스태프 롤 페이지에서도 같은 멜로디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좀 더 느리고 영롱하게 편곡되어 더욱 큰 여운을 심는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아름답고 영롱하다. 이는 하단에 임베드했다.


서문에서 언급했듯, 스즈키 야스유키가 참여한 두 작품인 “태양의 꼬리”, “바람의 노텀”은 바이닐로 제작되었다. “바람의 노텀”은 2022년에 바이닐이 제작, 현재 인터넷 중고 음반 숍에서 약간의 웃돈을 주어야 만나볼 수 있고, “태양의 꼬리”는 프리오더 중으로 ‘라이트 인 더 에틱(Light in the Attic)’을 비롯하여 게임 음악을 취급하는 해외 레코드 숍을 통해 주문 가능하다. 공식 출시일은 8월 21일.

“태양의 꼬리” 바이닐 프리오더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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