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의 교차점에 절묘히 자리한 나라 조지아는 그 이름만으로 지극히 이국적인 향기를 풍긴다.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한 중세 시대 배경의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카즈베기의 산맥이 조지아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듯싶지만, 오랜 시간 동서양의 문화가 교차하며 실로 다채로운 문화를 배양한 오늘날의 조지아, 그리고 그 수도 트빌리시는 패션과 음악 신(scene)을 아우르는 새로운 문화의 발상지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쿠라강을 사이에 두고 밀집한 다수의 저명한 테크노 클럽들은 물론, 패션 신에서는 칼 같이 정교한 핏과 청량한 컬러감을 자랑하는 시추에이셔니스트(Situationist), 조지 케부리아(George Keburia)로 대표되는 신진 다지이너 브랜드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날카로운 뿔을 가진 언더독, 교니(Kyoni)가 그 맹렬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판을 뒤엎을 준비를 마쳤다. 교니는 한국인의 피를 가진 동명의 디자이너가 2020년 트빌리시에 설립한 브랜드로, 조지아의 역사처럼 다양한 사건이 그에게 흘러들어간 결과로써 탄생했다.
조지아 국기의 십자가를 연상케 하는 문양을 앞면에 큼지막하게 새긴 후디와 재킷부터, 십자군을 떠올리게 하는 철가면과 각종 금속 장신구들까지. 진한 회색빛 원단에 실버 액세서리를 더하며 마치 갑옷과도 같은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교니의 주요 테마는 언제든지 반전을 일으킬 준비가 된 ‘언더독(underdog)’이다. 교니의 로고는 바로 이 언더독의 뿔을 상징하는데, 자신의 컬렉션을 지켜보는 이들에게까지 이러한 언더독의 감정이 전이되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러한 브랜드 기조는 철저히 디자이너 교니의 성장 배경을 따른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로 이주한 교니와 그의 가족은 교니가 어릴 적부터 다양한 계층의 문화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도시와 국가를 전전하는 대다수의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이 시기의 혼란 역시 교니를 비껴가지 않았고, 그를 주눅 들게 하는 많은 상황들이 교니의 유년기를 채웠다. ‘교니’ 역시 그가 어렸을 때 붙은 별명.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자신만의 뿔을 갈며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더욱 구체화하는 데 성공한 교니는 2020년, 마침내 날카로운 무기를 드러내듯 첫 컬렉션을 완성했다. 첫 컬렉션 출시 이후 유럽과 미국 신에서의 반응을 얻은 교니는 서서히 패션 신의 판도를 뒤엎을 준비를 마쳤고, 이제는 그 날카로운 뿔의 끝은 교니의 정체성이 가장 정교하게 구현된 아머 컬렉션(Armor Collection)과 함께 그의 뿌리가 뻗어 있는 아시아 시장으로 향한다.
교니가 가장 최근 공개한 아머 컬렉션은 마치 한 편의 게임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웹사이트에 접속하자마자 마주하는 인벤토리 같은 슬롯은 물론, 최근 컬트적 인기를 구가하는 ‘디고리 기념비(Didgori Monument)’에서 촬영된 룩북만 봐도 그 분위기가 십분 전해진다. 드넓은 동산에 거대한 검이 거대한 묘석처럼 꽂혀 있는 모습은 마치 중세 시대 배경의 RPG 게임 캐릭터 같은 교니의 컬렉션에 더욱 힘을 더한다.
여러 겹의 패널로 구성된 과거의 갑옷을 재현한 듯한 아머 봄버 재킷과 아머 데님 팬츠로 구성된 셋업에 화룡정점을 찍는 건 역시나 그들의 손에 쥐어진 무기다. 기사에게 적을 벨 무기가 없다면 그것만큼 허전하고 처량한 모양새도 없을 것. 흡사 투구게 혹은 울버린 손톱이라 할만한 해당 아이템은 도시 환경 안에서의 기능성을 생각하여 디자인됐는데, 사실 이는 피해를 입히기 위한 용도가 아닌 모든 사람이 가진 강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첨예한 칼 끝을 손에 쥐고 단단한 갑옷을 둘렀지만 치열한 전투보다는 누구를 포용하며 그들이 진정 원하는 바를 찾기를 바라는 브랜드 교니. 마침 그가 이듬해 한국 진출을 밝힌 만큼, 뿌리를 찾아온 조지아의 디자이너가 한국과의 어떤 조화로운 결과물을 탄생시킬지 기대해 봐도 좋겠다.
이미지 출처 | Ky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