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and Zine #8 격동한국 50년

1964년, 한 일본 청년이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취재를 위해 처음 한국에 발을 딛은 그의 나이는 27살. 이후 그는 50년간 백여 차례 한국을 드나들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10만여 장의 사진으로 남겼다. 반세기의 파노라마를 기록한 주인공은 일본의 포토 저널리스트 구와바라 시세이(Kuwabara Shisei). 오늘 꺼낸 책은 근대화와 민주주의에 돌입한 대한민국을 집중적으로 촬영한 그의 다큐멘터리 사진집 ‘격동한국 50년 KOREA : 50 Years of Turbulence’이다.

‘격동한국 50년’은 책등 두께 3.5cm, 무게 약 0.8kg으로 베고 자도 될 정도로 두껍고, 무거운 책이다. 총 464페이지에 달하는 이 사진집에는 1965년 한일회담 반대 데모를 시작으로 베트남 파병, 팀스피릿 한미 연합 군사훈련, 주한미군 기지촌, 5.18 민주화 운동, 허름한 청계천의 판잣집과 경제발전으로 우뚝 선 63빌딩, 수차례의 대통령 선거, 북한 및 이산가족의 모습 등 2015년까지의 대한민국 변혁이 담겨있다.

문득 궁금해지지 않나?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이, 짧은 기간도 아닌 일생의 반이라 할 수 있는 50년 동안 한국을 소재 삼은 이유가 무엇인지. 작가는 당시의 한국은 포토 저널리스트로서 취재욕을 불 지르는 소재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전했다. 분단국가라는 독특한 상황, 그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역사와 문화, 대륙적 풍토마저 자신을 매료시키는 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격동의 시대, 그 안에서 흘러넘치는 생동감에 중독된 듯 구와바라 시세이는 한국과 관련된 곳이라면 베트남이든, 러시아든, 북한이든 아랑곳하지 않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국경을 넘었다.

단순 보도 사진이라 하기엔,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에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늦은 밤 아이를 껴안고 쪽잠을 자는 부부, 전쟁터에서도 장난스러운 춤을 추는 파병 군인, 총을 든 채 졸고 있는 소녀, 좁디좁은 공간에 몸을 부대끼는 청년들, 갓난아이를 무심히 쳐다보는 북한 여성. 번뜩이는, 졸음에 겨운, 내일을 모르는 눈과 마주쳤을 찰나마다 그가 얼마나 많은 한국인의 애환을 들었을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가련한 이들을 향한 카메라. 구와바라 시세이의 사진이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한국은 여전히 민주주의 역사 한가운데 있다.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로는 더욱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역사는 잊지 않기 위해 기록되며, 이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존재 이유와 같다. 한 외국인의 찍고자 하는 열망, 호기심 덕에 같은 땅을 딛고 살아간 이들의 방대한 시간을 현재에도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곧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의 구와바라 시세이. 그가 반평생 촬영한 사진은 일본 츠와노에 있는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미술관’ 상설 전시를 통해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눈빛

RECOMMENDED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