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는 분명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다. 그라피티와 예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어디선가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있을 정도로 일반 대중에게 폭넓게 인지되고 있다. 셰퍼드 페어리는 미국 찰스턴에서 태어나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The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다. 대학 재학 중 셰퍼드는 예술과 도시 경관에 대한 대중의 시각을 변화시키는 이미지를 시작으로 오베이 자이언트(OBEY GAINT) 캠페인의 전신, ‘Andre the Giant has a Posse’라는 스티커를 만든다. 스미소니언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소장 중인 버락 오바마의 초상화 ‘HOPE(2008)’를 포함, 그의 작업은 거리의 그라피티에서 모두에게 칭송받는 예술적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2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온 셰퍼드의 업적은 1989년 스티커 캠페인으로부터 시작됐다. 셰퍼드는 게릴라적인 스트리트 아트와 더불어, 세계 곳곳 50개 이상의 대규모 공공 벽화 작업을 실행해오고 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뉴욕현대미술관, 빅토리아 알버트 박물관, 스미소니언 국립 초상화 박물관, 보스턴 현대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 등지에서 영구 컬렉션으로 소장되어 있다.
4월 30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는 ‘위대한 낙서 셰퍼드 페어리 전 : 평화와 정의’는 다방면에 강한 영향력을 끼낀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을 총 5개 섹션으로 구분, 그가 제작한 수많은 작품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약 200여 점에 달하는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을 아직 감상하지 못한 이들이나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느낀 이들 모두 이번 전시를 주관한 미노아 아트 에셋의 큐레이터, 전민선의 글을 확인한다면 더 진득하게 작품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오베이 자이언트 캠페인
1989년,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스쿨 재학시절 셰퍼드 페어리의 프로젝트 중, 그를 널리 알린 최초의 프로젝트인 ‘Andre the Giant Has a Posse’ 캠페인이 탄생한다. 신문 지면에 게재한 거인 레슬러 ‘앙드레 더 자이언트’의 얼굴 사진을 복사한 뒤 흑백 스텐실 기법을 이용하여 ‘ANDRE THE GIANT HAS A POSSE 7’ 4”, 520lb520 lb’ 텍스트를 결합한 흑백 이미지는 종이와 스티커, 포스터로 만들어져 다양한 경로로 퍼지게 된다. 처음 이 이미지는 스케이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비밀리에 열광적으로 전파되다가, 곧 로드 아일랜드 지역을 넘어 미국 동부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마치 서브컬처의 비밀스러운 의식처럼 빠르게 번졌는데, 셰퍼드는 이런 현상에 대해 “스티커보다는 이것이 퍼져나가는 과정이 특별한 것”이라고 말한다. 셰퍼드는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를 기억할만한 장소에 놓는 일에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화와 정의
셰퍼드 페어리는 오랫동안 전쟁, 평화, 정치 그리고 환경에 관해서 관심을 불러올 수 있는 예술 작품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그는 공적 영역 안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해 강력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창작해오고 있는데, 그중 특히 반전 운동에 관한 입장과 평화를 위한 헌신에 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평화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의 공통되는 기반을 찾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으로 시각적으로 강력하고, 영감을 주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작품 세계를 펼치고 있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들이 자신이 사는 이 사회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둘 수 있는 계기를 만들게 되길 희망한다.
아티스트 콜라보레이션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 세계에서도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셰퍼드는 자신만의 오베이 레코드 라벨을 만들었으며 협업을 통해 수많은 밴드를 위한 앨범 커버도 제작한다. 그는 자신을 펑크와 힙합을 사랑하는 스케이터라고 밝혔다. 앨범 아트와 밴드 전단이 그가 예술을 시작하게 된 가장 중요한 영향 중 하나였다. 셰퍼드는 클래쉬(The Clash), 시드 비셔스(SID Vicious)와 같이 그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밴드와 함께 협업하기도 했는데, 청중이 그 음악을 듣는 동안 음악과 시각예술을 연관 짓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본인의 업적에 혜택을 얻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셰퍼드는 본인이 직접 DJ를 할 정도로 음악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에게 DJ라는 행위는 마치 오디오 그래픽 디자인과 같고, 펑크와 힙합은 물론 재즈와 메탈, 록 음악과 같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영감의 원친이 된다.
셰퍼드는 뮤지션 이외에도 영감을 받고 존경하는 아티스트를 주제로 끊임없이 작업한다.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가운데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앤디 워홀(Andy Warhol)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를 비롯해 아이 웨이웨이(Ai Weiwei)와 같은 동시대 아티스트를 주제로 한 작업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장 미셸 바스키아를 주제로 한 작품은 태깅과 함께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시작한 이후 ‘검은 피카소’라고 불리며 지하철과 거리의 낙서를 예술로 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라피티 아트의 선구자 바스키아를 향한 오마주로 작업한 작품이다. 팝아트의 대명사 앤디 워홀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은 그가 유년시절 자연스럽게 그래픽 아트와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등으로 대표하는 팝아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의무
셰퍼드 페어리가 생각하는 최고의 예술은 세상을 조금 덜 두렵게 느낄 수 있고,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예술이다. 인간이 미술을 통해 머리가 마음을 따르는 직감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그의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는 특정 주제와 관련해 관람자가 스스로 그 의미를 재고해볼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작품을 만든다. 따라서 그에게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변화와 차이를 가져다줄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점에서 공공장소에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대규모 벽화 작업이든, 포스터든, 또는 벽에 새긴 스텐실 작업이든, 행인이 우연히 접하는 영향은 곧 저항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 혹은 아주 커다란 야심 속에서 발생한 실천적 실행에서 나오는 에너지다. 셰퍼드는 인터넷이나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경험과는 다른 방법으로 관람자를 새롭게 전이시킨다. 그는 ‘모든 행동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명제에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공예술은 때로 사람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주고, 적대적인 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셰퍼드는 혹여 그의 작업이 적대적인 반응을 일으키더라도,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그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지구의 위기
셰퍼드는 설치 작품, 벽화, 순수 예술 및 프린트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우리가 현재 지구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사람들을 사로잡는 수단이다. 예술은 다른 매체가 실패한 대화를 끌어낼 수 있다. 만약 관람자가 나의 벽화와 설치 작품, 예술 작품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고심해보게 될 것이다. 본 시리즈의 작품들은 지구 환경보호를 테마로 한 나의 총체적 역사를 반영하고 이를 토대로 세워졌다. 나는 이 작품들이 미래의 후손을 위한 지구 보호에 대해 시각적으로 흥미를 끌고, 우리에게 필요한 대화를 촉발하기 바란다”.
그가 염려하는 건 즉각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무지와 문제를 자각하지 못하고 부인하는 것이다. 셰퍼드는 지구를 보호하려는 자신의 태도는, 미래 세대를 위해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는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진실의 추구가 아닌 탐욕으로 보며, 지구의 위기를 자각하는 일이 가장 우선순위라는 걸 작품으로 전달한다.
글ㅣ 미노아 아트 에셋 큐레이터 전민선
사진ㅣ 미노아 아트 에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