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미국 뉴욕 할렘(Harlem). 한 일본인 청년이 길거리에 앉아 MPC1000을 두드린다. 그가 만드는 박자에 춤과 랩으로 답하는 행인들. 그 광경이 기록된 유튜브(Youtube) 영상은 입소문을 타며 조용한 반항을 일으켰다. 그리고 2016년 봄, 그 청년은 자신의 첫 정규 앨범 [Pushin’]을 발매하기 이른다. 그에 수록된 “夜を使いはたして feat. PUNPEE”의 대중적인 성공으로 신(Scene)에 각인된 그의 이름은 스터츠(STUTS). MPC 연주가인 그가 올해 9월, 두 번째 정규 앨범 [Eutopia]를 발매했다. 어쿠스틱 음향을 대거 차용해 이전과 사뭇 다른 신보에 관해 장본인과 대담을 나눴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스터츠는 흔쾌히 [Eutopia]의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이전까지의 작품은 제각기 담은 내용이 달랐으나, 최근 작업한 곡들은 최종적으로 하나의 앨범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Masterd’에서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앨범의 주제를 처음부터 유토피아로 넓게 잡고 나아간 건지.
처음엔 정말 아무런 영감이 없어서 어떤 걸 만들까 계속 고민했다. 하지만 실제 작업에 착수하니 테마와 같은 일관된 무언가의 필요성이 느껴지더라. 그래서 알프레드 비치 샌들(Alfred Beach Sandal, ABS)과 함께 내놓은 EP [ABS + STUTS]가 완성된 후에는 계속 앨범을 제작할 요량으로 곡을 뽑았다. 그러던 작년 10월, 어느 트랙의 뼈대를 만들 즈음 왠지 음향에서 내가 그린 이상향이 보였다. 그 곡이 이번 앨범의 타이틀 곡 “Eutopia”였고 거기서부터 주제를 굳혀갔다.
앨범 전체적으로 이상향을 그린 분위기가 느껴진다. 또 바로 이전의 EP [ABS + STUTS]의 뮤직비디오를 LA에서 촬영했으니, 그 지역의 바이브도 품었을 거고.
그것도 있네. 이번에 품 비푸리트(Phum Viphurit)가 참여한 “Dream Away”가 원래 LA에서 만든 비트거든. 알프레드 비치 샌들과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LA에서 일본 음악을 들으면 일본에서 듣는 것보다 빠르게 들리는 곡이 많다. LA의 느낌과 맞지 않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루브(Groove)감이나 곡의 템포가 빠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런지 역시 LA에서 만든 트랙은 일본에서 만든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느긋하다고나 할까.
가장 처음 완성한 트랙은 무엇인가.
“Interlude”. 2013년인가 2014년경에 나온 거다. 길이가 있는 곡 중엔 2015년 즈음 제작한 트랙을 기초로 완성한 “Pursuit”가 가장 먼저 제작됐다. 앨범에 얹기 전, 피아노와 키보드 그리고 베이스를 생으로 녹음해서 넣고, 드럼도 MPC로 다시 연주했지. 그다음이 “Eternity” 그리고 “Dream Away”다.
어쿠스틱 음향과 조화를 이룬 점이 인상 깊다. 어쿠스틱 악기를 제대로 활용하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은 언제부터인가.
악기를 연주하는 뮤지션과 함께하게 되면서부터다. 처음으로 어쿠스틱 연주를 본격적으로 적용한 곡은 알프레드 비치 샌들과 가장 처음 협업한 “Soulfood”다. 이번 앨범에도 작업에 참여한 이와미 케이고(岩見継吾)가 알프레드 비치 샌들의 기타와 내 비트에 맞춰서 연주해주었지. 그중에서 좋은 부분을 샘플링하고 잘라 붙여서 “Soulfood”를 완성했다. 그 경험을 통해 어쿠스틱 악기를 샘플링하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밴드 멤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전 밴드와 함께 작곡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밴드 구성으로 곡을 제작한 경험이 없었지. 그래서 헤드 어레인지(Head Arrange)라는 작업 방법을 활용했다. 스튜디오 작업 이전 데모 비트를 만들고 그걸 간단한 코드 악보로 만들어서 모두에게 공유해 놓는다. 그리고 스튜디오 녹음 당일, 내가 원하는 작업의 분위기를 다시 구두로 전달하고 함께 녹음했다. 밴드 사이에 껴서 나도 비트와 신시사이저를 쳤지. 또 비트를 반복 재생하며 20분 정도 즉흥 잼(Jam)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나온 좋은 소리를 샘플링해서 곡을 만들었다.
요즘 칸예 웨스트(Kanye West)나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도 스튜디오에 프로듀서를 여럿 불러서 작업하는 것 같더라. 하지만 지휘자가 모두를 이끌기에는 힘든 점도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 멤버를 모아서 스튜디오에 들어갔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첫날은 콘트라베이스의 이와미, 건반의 타카하시 유우세이(高橋佑成, Setagaya Trio), 기타의 오기 요시히코(仰木亮彦)까지 4명이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거기서 기존 재즈 활동으로 밴드 작업에 익숙한 이와미가 어느 정도 이끌어 준 덕분에 잘 통제된다고 느꼈다. “Never Been”은 앨범의 곡 중에서 가장 어쿠스틱감이 강한 곡이라 구성을 어떻게 짜야 할지, 또 어디서 어떤 솔로가 들어가야 할지를 특히 더 고민했다. 그때 이와미가 베이스의 소리도 집어넣자고 조언을 주었는데, 이를 받아들여서 둘째 날은 나카얀(nakayaan, 녹음 스튜디오)에서 세션을 진행했다. 다행히 첫째 날의 경험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녹음할 수 있었다.
이전엔 MPC 플레이어로서의 스터츠였다면, 이번 작품은 뮤지션 스터츠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악기 연주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나.
이번 앨범에는 MPC뿐만 아니라 신시사이저도 연주했는데, 전 앨범 작업 때보다 멜로디를 더 잘 짠 것 같다. 스튜디오 녹음 중에도 내가 찍은 비트 위에 신시사이저 연주를 더하며 그걸 중심으로 진행하려 했다. 그리고 녹음물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굉장히 세심한 추후 편집을 거쳤다. 예를 들어, 라이브로 MPC를 두드리며 다른 악기 연주를 즉흥으로 더한 곡 “Ride”의 경우, 세세하게 수정하는 작업이 참 힘들더라.
꽤 세밀한 작업을 수반했을 것 같다. 믹싱, 마스터링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다.
믹스는 정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절반은 내가 하고, 남은 반은 D.O.I.와 일리시트 츠보이(Illicit Tsuboi)에게 부탁했지. 믹스의 보컬 조정도 나카무라 마사루씨(中村督, POTATO STUDIO)와 이마모토 오사무(今本修)에게 도움을 받았다. 내가 직접 믹스하면 정말 미로 속을 헤매는 느낌이랄까. 어떤 게 정답인지 스스로 판단하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여러 가지 환경과 장소에서 듣고 고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D.O.I와 츠보이에게 부탁한 믹스도 평균 4~5번 정도는 다시 수정을 요청했다.
내가 이상으로 삼은 소리가 있었다. 여기에 도달하는 방법이 자신의 힘일지, 아니면 남에게 부탁하는 것일지 고민했다. 마스터링은 처음에 데이브 쿠치(Dave Kutch)에게 부탁한 뒤, 일본 스튜디오에서 세세한 조정 과정을 거친 뒤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스튜디오 작업을 끝내고 집에 와서 들어보니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 하지만 다시 음원을 돌려보내 작업을 부탁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따라서 직접 마스터링 소프트웨어를 구매해 집에서 최종 작업에 돌입했다. 처음인지라 모르는 것이 많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쳤지. 같은 CD를 30번은 구운 것 같다. 많은 공부가 되었다. 세세하게 조정하느라 앨범을 납품할 때까지 아슬아슬했지만, 어떻게든 기한에 맞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상적인 소리란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울리는 개인적인 것인지.
그렇다. 개인적인 영역이지만 처음부터 머릿속에서 전부 구상한 것이 아니라, 실제 소리를 듣는 과정에서 떠오른 발상의 집합이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 건 “Fantasia”였다. 트랙 그 자체보다는 보컬과의 균형 때문에 고생했지. 히토미토이(一十三十一)의 노래가 굉장히 멋있어서 그걸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했다. 처음엔 내가 보컬까지 믹스했으나, 완성도를 높이자는 히토미토이의 의견에 따라 그의 이전 앨범을 믹스해준 분에게 부탁했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 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D.O.I와 일리시트 츠보이에게 부탁한 곡 중에도 본래 스스로 어느 정도 믹스를 해보자 마음먹은 부분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건네기 전 단계의 믹스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어떤 곡이 누구의 믹스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통일감이 있다.
고맙다. D.O.I도 “여러 엔지니어가 참여했으니 마스터링이 큰일이네”라고 말하기에 걱정했지만 잘 풀렸다. 데이브 쿠치가 통일감을 만들어준 덕분이기도 하다.
데이브 쿠치에겐 무엇을 요청했나.
대략 이렇게 해달라는 식이었지. 너무 구체적이지 않도록 조심했다. 데이브 쿠치의 작업 중 마음에 들었던 건 솔란지(Solange)의 앨범 [A Seat at the Table]로, 내 앨범의 느낌과는 다르지만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의 [Blonde]처럼 좌우의 입체감이나 저음부 특유의 부드러움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방금 말한 작품들을 참고삼아 요청 사항을 보냈다. 깔끔한 느낌이라던가, 좀 더 확실하게 음압이나 질감을 갖추었으면 좋겠다든지, 뭐 그런 거.
물론 세심하게 만졌다고 단번에 느낌이 온 곡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이번 앨범을 들었을 땐 이렇게까지 오랜 수정 과정을 거친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역시 본인이 개방적인 음악을 이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가?
나의 최종 판단이 들어간 앨범, 내 마음에 든 작품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나아가 세세하게 조정한다고 하더라도 퀀타이즈(Quantize, 박자의 흔들림이나 연주할 때 타이밍을 간단하게 바로잡는 기능)를 깔끔하게 하는 건 아니다. 단순하게 내가 들어서 기분이 좋냐 아니냐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결과물이 기계적이지 않고 생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계적으로 정리하지 않기에 고집하게 되는 부분도 있겠다.
그렇다. 처음부터 퀀타이즈로 제대로 짜놓으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샘플링한 걸 생으로 넣는 것은 나의 중요한 개성이니 고집하게 된다.
이번 작품을 라이브 공연에서 어떻게 풀어낼지도 매우 흥미롭다.
지금 고민 중이다. 4번째 “Pursuit”라는 곡은 내가 드럼을 친 곡이기에 지금까지의 방법대로 공연할 수 있지만, “Never Been”이나 “Paradise” 등의 인스트루멘탈 곡은 드럼보다는 신시사이저가 메인인 곡이라서 어떻게 할지 고민이다. 단순하게 MPC를 두드리는 사람으로 알려지고 싶진 않다. 아마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라이브 할 경우가 있지 않을까.
타 아티스트와의 협업은 이미 트랙이 만들 때부터 정해놓았나?
그렇다. 트랙의 원형이 나오면 인스트루멘탈 혹은 보컬 트랙으로 갈지 대충 보이니까. 그 단계에서 함께할 아티스트를 정했다. 참가 아티스트에게는 곡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대화를 나눠서 테마와 방향성을 결정한다. 곡의 이미지와 함께 앨범 전체의 테마도 전하는데, 그 덕분에 가사의 내용도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낼 수 있었다.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 ‘유토피아(Eutopia)’는 기존의 의미보다 조금 포괄적이다. 이상적인 장소보다는 상태에 가깝다. 물론 해석은 청자의 몫. 하지만 나에게 유토피아는 ‘이상으로 삼은 최고의 상태를 추구한다’에 가깝다.
실제 작품도 청자가 최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스터츠가 말하는 최고의 상태란 무엇일까.
좋은 음악을 듣고 있을 때나 인정할만한 곡을 만들거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고 있을 때지. 이외에도 맛있는 걸 먹을 때를 비롯한 여러 순간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녕 최고의 상태란, 그런 순간적인 것보다는 그것이 훨씬 오래 지속되면 좋은 것이라는 느낌이다. 행복한 순간이 계속됐으면 좋겠다.
최근 들었던 음악 중에 그런 기분이 들게 한 게 있었다면.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세상을 떠나고 그녀의 앨범을 다시 진득하게 들어봤다. 엄청 맑고 습한 날씨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 걸으면서 들어본 “Young, Gifted and Black”. 행복했다.
이번 앨범 작업을 통해 차기작에 관한 힌트를 얻었다든지.
이 앨범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부분이 해결되었다고 할까. 계속 머릿속에만 있던 밴드 세션 샘플링을 이번에 어느 정도 실현했다. 밴드 세션을 활용해 좀 더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작곡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 곡도 있어서, 다음엔 이런 접근을 더 취해보지 않을까. 최종적으론 나도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해보고 싶다.
스튜디오의 베이스와 기타는 이번 작품을 위해 장만한 건가?
그건 아니고 예전부터 빌려 쓰던 거다. 기분이 내킬 때마다 연습한다. 전혀 못 치지만, 내가 친 것을 편집해서 곡에 넣기도 한다.
뮤지션으로서 지향점이라면.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내 음악을 그저 많은 사람이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일본에서 유행하는 음악에 힙합이나 블랙 뮤직(Black Music)의 정수가 들어간 멋진 곡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내가 곡을 계속 만드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
STUTS 공식 웹사이트
원문 STUTS | 『Eutopia』を目指して 보러가기
진행 / 글 │Tetsurou WADA(FNMNL)
서문 │홍석민
번역 / 편집 │홍석민, 김나영
*해당 기사는 지난 10월, 일본 도쿄발 웹진 FNMNLTV에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2018년 12월부터 FNMNLTV의 번역 기사를 VISLA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