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힙합 크루 서리(30)가 컴필레이션 앨범 [THE FROST ON YOUR KIDS]를 발표했다. 이는 서리의 지난 컴필레이션 앨범 [THE FROST ON YOUR HEAD (2019)]의 후속작이다.
본작의 모티브는 아주 명확하다. 첫 트랙에서부터 ‘가정교사 Hit Man’이라는 손심바의 가사로 앨범의 아이디어를 천명한 이들은 이후 아주 충실하게 본인들의 랩에 집중하며, 이따금 그들이 신(Scene)의 ‘선생님’의 자격으로 랩하고 있음을 꾸준히 어필한다. 4명의 래퍼가 모두 프로듀서 진의 비트에 최적화된 톤, 숨점을 조절해 교묘하게 레이백을 두거나 하는 등 다른 플로우로 접근해 “Rhyme 들을 맛”이라는 힙합 음악의 순수한 요소를 오랜만에 돋보이게 한다. 마치 커리어 초창기의 쿤디판다가 새미얌(samiyam)의 비트에 랩을 하던 바이브처럼, 브레인피더(Brainfeeder) 스타일로 독특한 소스와 미니멀한 붐뱁 기반 비트에 치중한 것도 ‘랩’이라는 작법 자체에 집중한 티가 난다.
손심바는 조금 더 서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표현하는 ‘우린 역사의 낯짝에 컬러로 태투(Hugo)’ 등의 가사를 위주로 크루를 대변하고, 디젤과 쿤디판다는 ‘예술은 예술, 알겠는데 백수짓 하기 위한 테크 같은데(凸)’, ‘오디오만 작업하면 되는 네 시간과는 이미 달라(291)’ 등 그 스타일답게 청자의 폐부를 찌르는 냉소적 가사들을 다음절 라임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본작의 신스틸러 오하이오래빗은 ‘난 토끼라서 끝내주지, 3분도 아냐, 40초(凸)’, ‘교무실을 고문실로 발음할 때까지 참교육하지(땡땡이)’, ‘전설보단 Legend, 죽음의 Death, uh(Midnight smash bros)’ 등의 트랙에서 나머지 세 래퍼에 뒤지지 않은 센스를 보여 그의 존재감을 더욱 높였다. 특히 작품 내에서 그가 꾸준히 외치는 [물질보다 정신] 속 와비사비룸의 에이뤠와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눈여겨볼만한 점이다.
독특하게도 음원사이트에 등록한 가사에 괄호를 쳐가며 설명할 정도로 본작의 가사는 세세한 밈으로 점철되어있으며 한국 힙합 가사의 직간접적 오마주도 가득해 마치 게임의 ‘이스터 에그’를 찾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인스트루멘탈의 스타일이 매우 일관된 터라, 호불호가 있을 수도 있지만, 본작 [THE FROST ON YOUR KIDS]는 쿤디판다가 표방한 대로 오래 전 한국 힙합의 ‘언더그라운드’에 가까운, 잊혀졌던 방법론을 보여주는 앨범이 될 듯하다. 악에 받친 ‘참교육’을 하면서도 힙합이라는 장르 고유의 재미와 유머를 잃지 않은 [THE FROST ON YOUR KIDS]를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