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성과 기믹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 같지만, 힙합 문화에서 이 둘은 실제 래퍼의 캐릭터를 견고히 하고 그것을 잘 팔리는 브랜딩의 영역에 안착시킨다는 점에서, 음악가의 스타일이나 표현적인 특징에 앞선 정신적인 토대를 조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한 역할을 수행한다. 친(Chin)과 CK 그리고 루이(Louie)까지 세 명의 래퍼가 뭉친 그룹 호미들은 게토(Ghetto)라는 힙합 장르의 클리셰를 실제 자신들이 처한 현실과 이를 바탕으로 한 한국적인 게토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혼합함으로써 강력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2020년, [Ghetto Kids]를 중심으로 한 인상적인 행보로 리스너와 평단에게 새로운 시대를 각인한 세 명의 호미들을 만났다.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자수성가한 래퍼라는 힙합 장르의 클리셰를 한국적인 정서로 충실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호미들은 큰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요즘은 기분이 어떤가? 셋이 함께 겪은 ‘한국의 게토’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삶은 처음 겪는 형태의 달콤함일 것 같은데.
친: 아직 성공했다는 느낌은 잘 안 온다. 물론 돈이야 벌고 있고, 금전적으로 힘든 건 없는데 어쨌든 이 바닥에서 레전드가 되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 이제 지칠 일은 없다.
한국 힙합 어워즈 2021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소감은?
CK: 당연히 좋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 ‘우리가 잘 가고 있네’ 정도의 기분이다.
루이: 지금은 돈도 꾸준히 들어오고 상도 탔지만, 만족하진 않는다. 퀘스트를 깰 때마다 얻는 보상일 뿐, 대단한 무언가를 이뤄낸 감동은 아니다.
친: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미국 래퍼들의 클리셰를 따라한 게 아니었으니까. 콘셉트가 아니라 진짜 그렇게 살았고, 그때는 돈이 너무나도 중요했다. 당장 먹을 게 없고, 옷도 없고, 멋있게 보일 수도 없었다. 이제 돈을 벌었으니 뭘 해야 하나? 최고가 돼야지.
CK: 그렇지. 다음 스텝은 언제나 또 생기는 거니까. 난 ‘Bottom to the Top’이 힙합이라는 장르에서 매우 큰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경계하는 것이 있다면? 구구절절한 가사가 더는 몸에 맞지 않는다든지.
친: 아직 이사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확실히 간절할 때 튀어나오는 가사가 있다. 물론 배부르고 나서 배고픈 음악을 하려고 하면 잘 나오지도 않겠지. 하지만 또 다른 게 고프니까.
CK: 당장 급한 게 아니라 이제는 정말 큰 것들이 고프다. 얘기할 건 언제나 넘쳐날 거 같은데.
루이: 이제 시작이니까.
돈과 성공이 아닌 뮤지션으로서 그리는 미래 또한 궁금하다.
친: 우리는 음악에 욕심 없다. 애초에 힙합은 우리를 드러낼 수 있는 도구였던 거지. 음악은 그때그때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걸 시도할 생각이다.
CK: 우리는 힙합을 단순히 예술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돈을 버는 수단이나 일적인 의미도 강하다.
실제 자라온 환경에 관해 듣고 싶다. 세 명이 어떤 계기로 호미들이 되었나?
CK: 친과 내가 중학교 친구, 루이와 내가 고등학교 친구여서 자연스레 알았다. 각자 힘든 사정도 털어놓고 음악도 함께 들으면서 친해졌다.
친: 같이 놀던 동네 친구다. 모두 그때 힘든 사정이 있었고, 힙합을 좋아하는 교집합이 있었다.
CK: 그러다가 같이 음악 한번 해보자고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했다. 영등포에 거지 같은 단칸방 하나 구해서 셋이 살았다. 알바 뛰고 돈 벌면서 음악 했다. 지금은 강북구 미아동의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고 있다.
친: 뮤직비디오를 찍는 블러퍼(Bluffer)와 비트를 만드는 키드스톤(Kidstone)까지 합류하고 나서 영등포 단칸방에서 방 세 개짜리 미아동으로 이사했다.
호미들이 지금 주목을 받기까지 여러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하나는 가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게토의 내러티브를 구석구석 잘 묘사한 것처럼 들리는데 이것이 100퍼센트 본인의 경험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들다. 어느 정도까지 작가적인 상상력을 가미하는 건가?
친: 곡마다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인 곡도 있고, 물론 MSG를 뿌리는 라인도 있다.
CK: 그 MSG도 경험에서 비롯되어 살을 불려 나가는 형태다. 더 재밌게 들려주기 위해서.
친: 까딱 잘못했으면 이렇게 됐겠구나 싶은 선택이 인생에서 너무 많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사를 쓸 때 상상력이 더 자유로워지는 거 같다.
가사를 쓰는 과정에 관해 듣고 싶다. 셋이 논의하는 과정도 필요할 듯한데, 어떤 방식으로 의견을 나누는지 궁금하다.
친: 가사든 음악이든 셋이서 정말 대화를 많이 한다. 가장 고민했던 건 ‘가사, 문화적인 배경, 정서까지 모두 한국적인 것을 가져다 쓰면서 멋있어질 순 없을까?’였다. ‘백반 청국장이 과연 멋있게 들릴 수 있을까?’라는 고민. 이걸 위해 계속해서 피드백을 나눴다. 우린 정말 가사 오래 쓴다.
CK: 회의를 달고 산다. 뭘 해도 공유하고, 생각도.
힘든 현실을 가사로 옮길 때 희열을 느꼈던 적 있나? 그 고통이 오히려 영감이 되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친: 그래서 평소에 힙합에 고맙다고 말한다. 힙합이 우리를 살렸고, 우리 같은 새끼들도 받아들였다. 이걸로 돈도 벌게 해 줬다.
루이: 이런 이야기는 힙합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어떤 장르에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CK: 가장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음악이니까.
다수의 곡에서 훅이 지닌 힘과 중독성이 느껴지는데, 보통 이 부분은 누가 리드하는가? 훅을 만드는 과정에 관해서도 듣고 싶다.
CK: 회의를 거치는데, 보통 친이 라인을 짜면 그걸 가지고 같이 이야기하는 편이다.
친: 외계어로 떠들다가 라임이 대충 맞아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가사가 들어온다. 특별히 주제를 정해놓진 않는다. 오히려 여러 단어를 내뱉다가 상하차, 진인사대천명처럼 하나의 단어에 꽂혀서 그게 전체 이야기로 살이 붙는 방식이다. 음악에 관한 고민은 많은데, 정작 개별적인 곡은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나오는 편이다.
대부분의 곡에 타입 비트(Type Beat)를 사용했다. 특별히 선호하는 이유가 있다면?
루이: 찾아보기도 쉽고. 일단 가격도 싸고.
친: 무엇이든 탓하기 싫었다. 비트메이커가 없다고 해서 음악을 못 만드는 게 아니니까. 타입 비트 쓰는 게 어때서? 랩만 잘하면 분명 느낄 수 있을 만한 퀄리티의 비트가 많은데 왜 이걸 부끄러워하지? 일단 받아서 하자,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반대로 비트메이커와 협업하는 경우는 어떤가?
친: 사실 비트메이커와 작업하는 지금이 훨씬 더 편하다. 아이디어 하나 던져서 서로 일사천리로 곡을 만들고 있다.
인하우스 프로덕션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적 있다. 호미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인하우스의 형태는 어떤 그림인가?
친: 앨범을 하나 만드는 데 필요한 걸 모든 걸 우리의 손으로 완성하는 것.
루이: 믹싱, 마스터링, 비트, 뮤직비디오까지.
CK: 돈 한 푼 안 들이고도 우리끼리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내는 환경이다.
친: 내 친구들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여서 같이 올라가는 데 의의가 있다. 어차피 힙합이라는 건 재능보다 노력이 더 중요한 거 같다. 비트? 열심히 하면 돼. 랩? 열심히 하면 된다.
CK: 재능은 초반에 잠깐 반짝이는 것이고, 결국에 끝까지 올라가려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앞서 말한 것처럼 힙합은 곧 일이고, 수단처럼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일처럼 존나 해야 하는 거니까.
친: 결국에는 허슬.
호미들의 곡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배경에는 멤버 셋의 절묘한 균형이 자리하는 듯하다. 각자 보이스 톤이나 랩 스타일에 피드백을 주면서 교정해나가는 편인가?
CK: 엄청 오래 맞췄다.
루이: 그 과정에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친: 처음에는 셋 다 톤이 안 잡혀서 비슷비슷했다. 내가 먼저 톤을 잡고, CK가 찾고 나서 그다음 루이가 조금 방황했는데, 깡으로 밀어붙이다가 하나 밀어붙일 만한 톤을 찾아냈다. 루이가 방에 틀어박혀서 혼자 연구하다가 나온 게 지금의 스타일이다. 우리는 각자 이미 또렷한 색을 가진 래퍼가 모여서 시너지를 낸 케이스가 아니다. 이미 친구들로 뭉쳐있었고, 거기서부터 맞춰나간 거지.
“사이렌”이 ‘POLO G’의 ‘Through the Storm”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관한 코멘트를 들려줄 수 있을까?
친: 내가 POLO G를 존나 좋아한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셋이 다 좋아하고 즐겨 들었는데, 자연스레 그 영향이 묻어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CK: 그런데 그걸 떠나서 이 곡은 표절이 아니다. 당연히 인풋이 있어야 나오는 게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연구해야 하는 건데.
친: 그런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러면 너도 그 노래 듣고 한번 “사이렌” 만들어봐.
최근 래퍼들의 단체곡, “격리해제”에서 CK의 벌스가 힙합 커뮤니티 내 잠시 논란이 되었다. 상당히 적나라했는데, 지금과 같은 이슈가 생길 줄 예상하지 않았나? 의견을 듣고 싶다.
CK: 예상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런 사람들까지 챙겨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가사에 내가 사과해야 하는 건가?
친: 우리가 멋있다고 생각한 걸 해야지, 남들의 기준에 맞춰서 음악을 하진 않는다.
이전 세대 또는 동시대의 뮤지션, 예술가들에게서 받은 영향이 있다면 알려 달라.
CK: 일리네어 레코즈(1LLIONAIRE Records) 아닐까. 우리가 힙합에 빠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들을 보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 힙찔이었을 때 일리네어가 준 영향이 컸다. 물론 ‘FUTURE’, ‘Lil Uzi Vert’, ‘Playboy Carti’ 등의 영향도 받았다. 그냥 멋진 사람들이면 다 좋아한다. 난 성공한 사업가도 좋아한다. 똑똑한 모습 보면 멋있고 존경심이 든다.
루이: 이제는 힙합을 공부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미친 듯이 찾아 듣는다. 일단 인풋이 많아야 아웃풋도 다양해지니까.
CK: 왜 팔리는지 연구해야 한다. 힙합이라는 장르는 트렌드도 굉장히 빨리 바뀌니까 최대한 많이, 다양한 걸 흡수하려고 한다.
커리어나 앨범의 완성도를 떠나 도저히 닮을 수 없는 유형의 뮤지션이 있다면.
친: 재미있는 질문이다. 지금 바로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누군가를 멋지다고 느낄 때 뮤지션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우릴고트(Ourealgoat)나 릴 김치(Lil Gimchi) 같은 사람들. 그들은 일단 마인드부터 멋지다.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 음악은 열심히 하다 보면 자연스레 좋아지니까. 우린 처음에 존나 못했거든.
리스너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이제 정규 앨범의 부담감이 좀 생겼을 것 같은데, 간단하게 계획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친: 아직은 정규 앨범 계획은 없다. EP, 싱글, 정규 앨범 같은 말에 갇히고 싶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고리타분한 방식 같다. 물론 그 개념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최대한 그 방식을 잘 활용하고 싶다.
호미들이 즐겨 모이던 아지트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친: 따로 없다. 집이 아지트다.
CK: 같이 산다는 점이 곧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실시간으로 아이디어를 나눌 수도 있고.
아쉽게도 한참 주목을 받을 시점에 코로나19가 유행했다. 팬데믹이 가라앉은 뒤 어떤 방식으로 첫 공연을 장식하고 싶은지 들려줄 수 있을까?
CK: 공연 경험이 거의 없어서 일단 무조건 해보고 싶다. 떼창도 들어보고 싶고.
이 자리에 없는 키드스톤과 블러퍼를 향한 샤웃아웃(Shout-Out) 한번 부탁한다.
친: 블러퍼와 키드스톤은 각각 영상과 비트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그런데 진짜 무서울 정도로 실력이 늘고 있고, 당연히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 24시간 동안 자기 일만 생각하는 친구들이다. 그 노력이 점점 더 좋은 결과물로 나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야망도 엄청나게 큰 친구들이다.
루이: 어떻게 보면 우리 셋보다 더 지독할 정도로 일하고 있다.
지금 가장 몰두하는 일은 무엇인가.
CK: 음악이다. 우린 음악 하는 사람들이다.
친: 지금 일도 잘 풀리고 있고, 돈도 벌고 있으니 그냥 재밌다. 다른 일에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만 하면서 돈을 번다는 일 자체가 정말 흔하지 않은 것 같은데. 행운이다. 신에게 고맙다.
에디터│최장민
인터뷰어│권혁인
어시스턴트│강재욱
포토그래퍼│LESS
스타일리스트│Recyde
헤어/메이크업│한유진
*해당 인터뷰는 지난 VISLA 매거진 15호에 실렸습니다. VISLA 매거진은 VISLA 스토어에서 구매하거나 지정 배포처에서 무료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