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일 찾은 제1회 군산북페어는 모처럼 서울을 벗어난 곳에서 열린 대형 책 이벤트라는 타이틀을 넘어 쟁쟁한 로컬 부스와 함께 일본과 대만의 독립 서점이 조화를 이루는 자리였다. 빼곡히 들어선 부스가 저마다의 개성을 방출하는 와중, 유독 대만의 아트북 서점 뭄 북숍(Moom Bookshop)의 테이블 위에 놓인 몇몇 사진집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겉보기에서부터 강한 존재감을 내뿜는 다양한 사진집들, 개중에도 다소 삼삼한 커버를 가진 한 권. 이름하여, ‘INTERNET CAFE! PANDA’. 인터넷 카페… PC방도 아닌 ‘인터넷 카페’라는 구수한 단어와 귀여움의 대명사 ‘판다’의 생경한 조합.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실수였을지 모른다.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진하게 풍겨오는 듯한 담배 쩐내가 찐득하게 몸에 배는 듯하게 느껴졌기 때문. ‘INTERNET CAFE! PANDA’는 대만의 사진작가 치센 첸(Chih-Hsien Chen)의 개인 프로젝트로, 타이중에 위치한 위생상태 최악의 한 인터넷 카페를 찾는 고객들을 1년이라는 시간에 걸쳐 담아낸 결과물이다.
마치 본인의 집인양 사방팔방에 물을 튀기며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는 중년 남성과 포르노를 틀어두고 잠에 든 또 다른 남성 그리고 성노동자들. 형용할 수 없는 위생상태와 충격적일 만큼 본능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헤드폰의 위생 문제를 걱정하며 헤드폰에 휴지를 둘러싸는 등 그 안에서 각자만의 질서를 찾는 모습이 퍽 흥미롭다. 2018년 출간된 사진집이지만 그 내막이 궁금해져 곧바로 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래는 그와의 대화.
책 이름에 ‘PANDA’라는 단어가 눈에 띄는데 인터넷 카페(Internet Cafe),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PC방의 이름인가? 이 인터넷 카페에 대한 소개도 부탁한다.
찍어둔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사진 속 사람들이 마치 판다처럼 크게 내려온 다크서클을 한 채 피곤한 표정으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사진집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혹여나 인터넷 카페에 피해가 갈 수 있기에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실제 해당 인터넷 카페의 스태프로 일하며 방문 고객들을 찍은 사진을 사진집으로 엮은 것 같은데, 이들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다면?
인터넷 카페로 출근하던 첫날, 음식을 서빙하던 중에 테이블 위에 담배를 70cm 간격을 두고 일렬로 늘어놓는 손님을 발견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투명한 우비를 입고 자리에 앉은 모습까지 모든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몰래 카메라를 들고 출근했다.
인터넷 카페에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했나, 당시 스태프로서의 하루 일과는 무엇이었나.
1년간 해당 인터넷 카페에서 근무했다. 업무는 보통 오전교대, 저녁교대, 야간교대로 구분되어 있는데, 각 교대근무자는 한 명뿐이다. 보통은 컴퓨터와 테이블 청소, 음식 준비 그리고 매장 전체를 관리하는 일을 한다.
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진집 마지막에 적었듯이 인터넷 카페의 환경이 그닥 좋지 못했다. 특히 2층 화장실이 너무 낡고 초라해서 무서울 지경이었는데 내가 결벽증이 있어 하루는 화장실을 청소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표백제와 염산을 챙겨 올라갔다. 둘을 섞어 막 부었는데 뭔가 이상한 화학 냄새와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냄새까지 나자, 일부 손님들은 기침을 하기 시작했지만, 가스가 빠져나갈 수 있게 창문을 열 때까지 아무도 무슨 일인지 묻지 않더라. “Damn these customers…”
사진집 속 모델들이 카메라에 거부감은 없었나? 좋지 않은 위생 상태가 드러나는 걸 꺼려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진 속 고객들 중 일부는 단골손님이다. 나는 이들이 매우 흥미로워 컴퓨터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물었다. 대게는 거절하지 않았지만 간혹 이유를 묻기도 하더라. 잠자는 사람의 경우는 방법이 없기도 하다. 먼저 물어보고 소통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사진을 찍을 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초상권을 두고 싸우는 게 두렵긴 했다. 뭄 북숍에서 책이 출간됐을 때 아니나 다를까 그런 댓글들이 쏟아졌다. 촬영엔 동의가 필요하다. 창작의 자유와 윤리 사이에는 결코 균형이 없다. 렌즈 속 사람들을 소비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사진만 찍고 싶을 뿐이다.
모델들과는 어떻게 유대 관계를 쌓아 갔나.
무료 음식 제공은 그들을 행복하게 한다.
1년간 고객들을 포착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알려달라.
인터넷 카페 손님 중에는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그곳에 사는 노숙인도 있었고 단지 돈을 쓰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나는 거기에 조금 더 머물면서 이 사람들을 관찰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정상적인 생활 체계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이었으니까. 후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의 형편에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인터넷 카페를 ‘PC방’이라 부르고, 요즘에는 마치 식당처럼 음식을 시켜 먹을 수도 있고 24시간 운영되는 곳도 많다. 대만의 PC방 문화는 어떤가.
내가 근무했던 인터넷 카페가 열악했을 뿐 대만의 PC방 문화도 한국과 비슷하다. 대만 역시 대부분의 PC방이 고급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매우 깨끗하다. 만화책을 대여할 수도 있는 곳도 있고.
당시 촬영한 인터넷 카페의 근황을 알고 있나?
주인도 바뀌고 리모델링 거쳐 아직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근무하며 찍었던 손님들은 모두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최근에는 다큐멘터리 사진보다 패션 산업에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추구하는 사진은 어떤 사진인가.
실험적이고 해체적인 사진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끔은 콜라주를 활용한 비주얼 작업도 한다. 최근에는 밀가루를 사용해 베이커리 조각품을 만들고 있으며, 종이접기를 활용한 조각품 프로젝트도 진행해 보고 싶다.
뭄 북숍의 스태프가 당신이 다양한 모양의 귀여운 빵을 취미로 만든다고 이야기해 줬다. 사진 말고 베이킹에도 취미가 있는 건가?
고등학교 때 요리를 공부하다 보니 제빵이 익숙하다. 어릴 땐 요리사가 되고 싶었거든.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사진은 취미로 삼고,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줄 다른 직업을 찾고 싶다.
‘INTERNET CAFE! PANDA’는 뭄 북숍 공식 웹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Chih-Hsien C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