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자(Leevisa)는 불현듯 캐나다로 떠나, 그곳에서 첫 정규 앨범 [Metro Blue]를 발표했다. 이번 앨범은 과거 이태원의 클럽 ‘케잌숍’에서 붉은 조명 아래 관객을 열광시키던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캐나다의 한적한 환경에서 2년이 그녀의 음악에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지난 10월, 서울에서 다시 만난 리비자는 한층 차분해진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강렬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다채로움은 리비자의 유연한 정체성과 예측 불가능한 예술 탐구를 대변하는 듯하다.
간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얼마 만에 방문한 것인지, 또 서울에서는 무엇을 했는가?
2년 만의 방문이다. 이번 방문 목적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가족, 친지와 함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서울 구경도 하고. ‘빌라 마리아나’에서 프라이빗 이벤트를 가졌고, ‘케잌숍’에서 1시간 동안 셋을 틀기도 했다.
서울을 이전과 비교했을 때 느낀 분위기나 변화가 있다면?
사람과 차가 더 많아진 것 같다.
캐나다로 훌쩍 떠났다. 떠나게 된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나?
나에게 중요한 가치들을 우선하여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다. 자세한 건 노코멘트.
현재 살고 있는 캐나다가 매우 한적하다고 들었는데, 그곳에서의 일상은 어떠한가?
한적하지만 촘촘하다. 매주 거의 일정하게 돌아간다.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을 준수하고, 산책을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는 것이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산책하면서 청설모, 거위, 스컹크 등 야생 동물들과 교감하고, 자주 가는 브런치 가게와 카페에서 지역 주민들과 교류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음반의 소재다. 집 근처 슈퍼마켓에서 좋은 음악이 많이 나와서 클럽에 갈 필요도 없다.
캐나다로 혼자 이민을 간다면 겁이 날 것 같은데, 당신은 어떤 고민을 했나?
못 살겠다 싶으면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가면 되니 크게 걱정하거나 고민하지 않았다.
캐나다의 한적한 일상이 당신의 음악 스타일이나 창작 과정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불러왔나? 있다면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나?
캐나다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장비를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중고 시장이나 커뮤니티 형성이 잘 되어 있어서 스튜디오 셋업이 자연스럽게 업그레이드되었고, 새 장비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다른 장르 음악에도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드럼머신으로 작업을 시작하면 리듬이 강조되는 데모를 더 많이 만들게 되고, 신디사이저나 모듈러로 시작하면 멜로디나 소리의 질감이 도드라지는 스케치를 하게 된다. 앨범 [Metro Blue]를 작업할 때는 어릴 때 좋아하던 2000년대 한국 인디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이런 장르의 느낌을 살리려면 기타와 베이스 같은 리얼 악기를 사용하고 직접 노래도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시도였고, “이 정도는 해야 된다”라는 혼자만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에 사용하던 샘플들만으로는 음악을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프리앰프와 마이크를 업그레이드하고 드라이한 보컬 녹음을 위해 최소한의 방음도 만들었다. 동시에 기타 페달도 계속 사고 팔면서 원하는 질감을 찾아가려 했다. 앨범을 함께 만든 공동 프로듀서 조엘 이엘(Joel Eel)은 물론이고, 동네 악기점 스태프들이나 중고 거래 판매자 등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앨범을 만드는 동안 마치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정말 많이 배웠다.
새로운 환경에서 창작할 때 자유로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뒤바뀐 환경에서 마주하는 한계도 있을 것 같은데, 토론토에서의 작업에서 한계가 있었다면?
갑작스럽게 1세대 이민자로 살아가다 보니 결국 정체성의 혼란이 오더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감을 느낀 때가 종종 있었다.
과거 “미혹”이라는 영화의 음악을 제작하기도 했다. 다른 작업과의 차이점은 무엇이었나?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영화 음악 작업의 경우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태도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내 개인 음반을 만드는 일은 나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일이니까, 아무래도 성격이 많이 다르다.
2024년 발매된 당신의 앨범 [Metro Blue]는 서울과 캐나다 사이의 문화적, 정서적 여정을 표현한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이 앨범을 통해 청중이 무엇을 느끼길 바랐나?
생존의 공허함,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희망.
당신의 음악은 자서전적이며 당신의 감정 일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기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또한 과거와 현재의 당신을 잇는 연결고리는 무엇인지?
지금은 감정보다도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적어 내려가는 데 흥미가 있다. 잊혀져가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음악을 만든다는 마음은 여전하다.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지만,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면 개인적이 되고, 너무 억누르면 진정성이 부족해질 수도 있다. 이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있는가?
균형을 잘 못 잡고 있다. 사람이니까 어느 정도 부족함이 있어도 괜찮지 않나. 늘 방향을 잘 잡으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당신이 계획하고 있는 미래는?
내일 아침으로 먹을 오트밀에는 피넛버터를 한 스푼 추가해 볼 예정이다.
Editor │ 황선웅
Photographer │ 한예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