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은 본능적으로 동화의 낭만을 상상할 것이다. 열정, 화려함, 운명적인. 그러나 현실은 꽤 다르게 비쳐진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의 유형은 주제를 탐구하는 예술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다. 내게 사랑이란 감정은 별처럼 불분명하면서 또 분명한 존재다. 확신과 불 확신이 뒤섞이는 기분. 사랑이란 감정 속에서 혼란을 느낄 때면 카메라를 꺼내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려 애썼다. “우리는 지금 행복한 순간에 있어. 시간이 지나가더라도 이 순간은 분명할 거야.”라고 되뇌면서.
사랑에 빠진 많은 사진가가 카메라에 사랑을 기록하려 했다. 아마 사진을 업으로 삼는 이가 아니더라도 같은 마음 아닐는지. 연인과의 행복한 순간에 카메라를 꺼내는 일은 자연스러운 행위다. 가장 가까운 타인이자 자신보다 더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을 영원히 향유하기 위해서.
일본 사진작가 후카세 마사히사(Masahisa Fukase) 역시 아내 요코와의 관계를 기록했다. 그 중 ‘From the Window’ 시리즈는 1978년 발행된 사진집 ‘Yohko’에서 추려낸 일부 사진이다. 사진집은 아주 긴 시간 동안 찍어온 아내의 사진으로 구성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사진집이 발행된 1978년은 후카세 마사히사와 요코가 이별한 뒤였다.
1963년에 만나 1년 만에 결혼한 둘. 작가는 요코를 알게 된 직후부터 사진을 찍어 그녀의 매력적인 표정과 제스쳐를 기록한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처음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삐걱댔다. 심지어 후카세 마사히사는 수차례 가출한 적도 있다. 그러던 1973년, 그는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라도 일단 1년간은 요코를 계속해서 찍어보기로 한다.
그때부터 작가는 매일 아파트 창가에서 집을 나서는 아내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즐거운 날도, 사진 찍기 싫은 날도, 미치도록 미운 날도 있었을 거다. 사진처럼 이 둘이 관계를 지속했다면 이 사진집은 로맨스로 기록됐을 것이다. 그러나 1976년, 요코는 자신의 삶에 더 많은 통제권을 부여하려는 후카세 마사히사에게서 떠난다. 그 뒤로 후카세 마사히사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몸이 쇠약해질 정도로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는 이혼 후 까마귀에 집착했는데, 1982년까지는 까마귀를 주제로 사진을 찍었다. 고독했던 그에게 까마귀는 잃어버린 사랑이자 견딜 수 없는 비통함의 상징이었다. 불행히도 후카세 마사히사는 1992년 자주 가던 바(Bar) 계단에서 쓰러져 뇌가 손상되었고, 혼수상태로 여생을 살다 2012년 9월 사망했다.
요코의 사진은 더는 로맨스로 해석되지 않는다. 관찰자와 피사체. 남자와 여자. 두 개의 자아와 정념이 충돌하는 처절한 사진이 되어버렸다. 요코라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자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이별한 전 부인의 사진이기도 하니까. 후카세 마사히사는 상실한 모든 걸 이 사진으로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불안정한 결혼 생활, 예견된 고통에 대비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던 걸까.
누군가는 사진으로 사랑을 기록하는 일이 예견된 실패라고 말한다. 시간이 지나고 관계가 바뀌면 연애 사진을 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우리는 옛 애인의 사진을 보며 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낀다. 사랑에서 증오로. 증오에서 아련함으로. 아련함에서 무미건조한 기록으로 보일 때까지. 후카세 마사히사는 ‘Yohko’ 사진집 표지에 포트레이트 2장을 사용했는데, 그중 1장은 액자 유리에 금이 간 이미지였다. 아마 긍정적인 의도는 아니었을 터. 연애 사진은 참으로 슬프다. 사진을 보는 자신의 감정도 변하는데, 하물며 어떻게 타인의 감정을 박제하려 하는가.
사랑은 가장 전복되기 쉬운 감정이 아닐까. 그것이 부질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동화 같은 로맨스가 끝나면 그 아름다웠던 순간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자신의 사진을 보며 작가가 느꼈을 우울감, 사랑의 기록에 실패한 상실감에 대해 생각해본다. 비통하지만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