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의복 역사에 디자인만큼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그와 함께 발전해온 ‘원단’에 있을 것이다. 이런 원단 발전의 가장 큰 수혜자는 그 무엇보다 아웃도어 브랜드에 있을 텐데, 언제 어디서 덮쳐올지 모르는 악천후, 극한의 환경을 견디기 위한 기능성 원단은 어느 순간 아웃도어를 넘어 우리의 일상 속 깊숙이 침투해있다. 점차 발전하는 기능성 원단 중 발군의 스펙으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브랜드가 있으니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고어텍스(Gore-Tex®)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58년 빌 고어(Bill Gore)와 비브 고어(Vieve Gore) 부부에 의해 지하실에서 시작된 이 브랜드는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polytetrafluoroethylene, PTFE)이라는 기억하기도 어려운 소재를 변형해 강력한 다공성 물질을 구성하는 방법을 발견, 이를 확장한 EPTFE를 처음으로 탄생시켰다. 이를 활용한 방풍과 방수, 투습 기능의 고어텍스 원단은 초기 아웃도어 업계에 굉장한 혁신을 가져왔으며, 더불어 의료, 제약, 항공 우주, 반도체 산업 등에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오랜 시간 다양한 산업 전반에 적용된 고어텍스 원단이지만, 수많은 아웃도어 브랜드의 뮤즈로 활약했고, 최근엔 아웃도어를 넘어 다양한 패션 브랜드와 결합, 세련된 기능성 의류의 바탕이 되고 있다. 점차 보편화하는 아웃도어 트렌드의 발판은 역시 간편함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특성이 묻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이에 많은 패션 브랜드가 고어텍스 원단을 활용한 각종 프로덕트를 내놓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는 물론, 기능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까지도 고어텍스 소재의 재킷과 스니커, 각종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일본 스트리트 브랜드의 선두, 베이프(A Bathing Ape)는 그 시그니처인 카모 패턴을 고어텍스 소재에 적용한 카모 후디 재킷을 선보였으며,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수석 디자이너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 또한, 꼼데가르송과의 협업을 통해 단순하지만, 멋스러운 기능성 재킷을 제작했다.
그리고 현재 고어텍스를 가장 잘 적용하는 브랜드라면 아크로님(ACRONYM)과 나나미카(nanamica)에 대해 알아보자. ‘테크니컬 웨어’라는 조금은 생소한 의류를 제작하는 아크로님은 디렉터인 에롤슨 휴(Errolson Hugh)의 독창적인 디자인과 직관적인 접근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테크니컬 웨어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의류 원단 대부분을 고어텍스로 적용, 고어텍스의 기능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고차원적인 하이테크 웨어를 내놓으며 많은 이의 마음을 흔든다. 아크로님이 불필요한 감성을 소거했다면, 일본의 아웃도어 브랜드 나나미카(nanamica)는 아웃도어 의류에 ‘감성’을 더해 또 다른 분위기의 아웃도어 캐주얼을 확립했다. 아웃도어 고유의 기능성을 크루저 코트나 트렌치코트, 셔츠 등에 적용한 나나미카의 제품은 도시 속에서도 충분히 멋진 기능성 의류를 즐길 수 있는 차분한 디자인의 기능성 의류를 제안한다. 역시나 이 브랜드의 바탕에 고어텍스가 자리하고 있음은 두말할 것 없는 이야기다.
고어텍스의 훌륭한 기능은 위아래로 걸치는 의류 외 스니커에 까지 미치고 있다. 아디다스(adidas)는 오랜 전통을 가진 자사의 스니커 스탠 스미스(Stan Smith), 가젤(Gazelle) 등의 스니커에 고어텍스 소재를 적용해 고기능성의 스니커로 재탄생시켰고,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이지 컬렉션(YEEZY Collection)의 의류 또한 고어텍스 소재를 사용한 의류로 스타일리쉬한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기능성 의류의 시장 속 고어텍스의 활약은 쉬이 끊이지 않을 것 같다. 이제 곧 60년을 바라보는 이 독특한 소재를 ‘고기능’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할 법하지만, 여전히 많은 의류에 혁신을 일으키며 변신하는 중이다. 아웃도어를 지나 이제는 어반 라이프스타일 영역까지 뻗어 나가는 고어텍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활용하는 여러 의류 브랜드의 움직임을 계속해 지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