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남자, 비보이(B-Boy)들은 한때 나라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의 일부로 귀속되었고, 문화 산업은 이들을 등한시한 채 새로운 것들로 돌아섰다. 비보이들이 단순히 대회를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하거나 생각 없이 춤만 추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번 인터뷰를 조금 더 관심있게 읽어봐야 할 것이다. 시대와 세상의 흐름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남자들 BFW는 지금도 춤이라는 라이프 스타일을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Rivers Crew, Gorilla crew, Nasty Fellaz 등 내로라 하는 비보이 크루에 소속된 BFW에게 비보이 문화의 흐름과 뒷 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Fihz(이하 F): BFW와 Aori를 대표하는 피즈(Fihz)라고 한다.
Naughty one(이하 N): 너티 원(Naughty one)이다. BFW, Rivers Crew, Nasty Fellaz, Kadence를 대표한다.
Gonzo(이하 G): 비보이 곤조 로드러너(Gonzo Roadrunner)다. BFW, 아오리, 그리고 Nasty Fellaz를 대표하고 있다.
-BFW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F: BFW는 비 보이 본(B-boy Born), 포토그래퍼 찬(Chanyc), 피즈(Fihz)로 시작된 움직임이다. 우리가 받은 모든 에너지를 지금까지 사진과 춤으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도 풀어내고 싶었다. 새로운 표현의 방식이 하나 더 생겨났다고 생각하는데.. 음 내가 무슨 말하고 있었지?
N: 마음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인 거다. 너무나 당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누가 먼저 하자고 말하지도 않았지만 어느새 모두 함께 하고 있더라.
-서로 어떻게 알게 되었나.
N: 나는 피즈를 16살 무렵에 만났고 곤조는 춤을 추다가 알게 되었다. 곤조와는 Nasty Fellaz라는 무브먼트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때도 이미 서로 이름들은 알고 있었다. 워낙에 다들 유명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원년 멤버 B-boy 본(Born)과 포토그래퍼 찬(Chanyc)에 대한 설명도 부탁한다.
N : 원년 멤버라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힙합이 너무 좋아서 함께 큰 동네 형제들이다. 본과의 첫 만남은 미성년자 시절, 족발과 소주를 먹으면서 이루어졌고, 우리는 찬의 집에서 음악을 듣고 노래부르고 소리지르면서 함께 컸다.
-언제부터 춤을 추기 시작했나.
G: 아주 어렸을 때부터다. 명절이 되면 할머니가 춤을 추게 했는데, 당시 방송에서 보던 춤을 따라하고는 했다. 나중에 친구가 투 킥(Two Kick), 원 킥(One Kick)과 같은 기술을 하는 걸 보고 가르쳐달라고 한 것이 시작이 됐다. 그 때가 11살 정도?
N: 처음 내가 춤을 만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 영턱스 클럽의 “정” 안무를 따라 추면서부터 였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유행하던 TV 프로그램인 “댄스 불패”를 보게 되었다. 리버스 크루도 나왔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꽂혀서 어머니에게 춤을 배우겠다고 단식투쟁을 했고 결국 춤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전학을 했다. 원래는 강원도 강릉 출신이다.
-현 세대는 인터넷으로 비보잉을 보고 자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볼 때 드는 생각은?
F: 옛날과 비교한다면, 새로운 것을 접하는 방식이 너무 쉬워지다 보니 간절함이 사라진 것 같다. 그 때는 내가 춤을 배우고 싶고 비보이를 만나고 싶으면 직접 수소문하며 찾아다녔는데 요즘에는 클릭 한 번에 비보잉 영상과 워크샵을 얻을 수 있다. 간절함이 없다고 해야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
N: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비보이들이 나를 알게 되었고, 엄청난 양의 영상들이 유투브에 올라오면서 씬 자체는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소중함이 사라진 것 같다.
G: 옛날 비보이계의 슈퍼 히어로들은 상당히 신비한 존재였다. 행사장이나 그 사람들의 동네에 가야지만 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클릭과 유튜브로 바로 볼 수 있지 않나? 그런 신비함이 사라졌다.
-힙합이 BFW에게 준 영향이라면.
F: 예전에는 겉모습만 보고 흉내를 내려고 했다. 어느 순간부터 앞으로만 가려고 하다 보니 벽에 부딪히더라. 진정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작점을 알아야 순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부터는 오히려 거꾸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힙합의 시작과 과정을 공부하고 외국에 나가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든 퍼즐이 맞아 떨어졌다. 겉모습만 따라할 때 가졌던 질문들이 오히려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하다보니 해결되었고, 춤의 깊이가 깊어지면서 희열을 느꼈다. 또한 자긍심과 책임감이 생겼다. 흔히 “Dance is my life” 이라고 하지 않나?
N: 힙합은 내 가치관을 만들어준 계기가 됐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학교를 졸업 하고, 취업을 하고, 가족을 만들고, 가족을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데에 있어 금전적인 부분은 생각보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을 어떻게 보다 흥미롭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다음에 다음을 준비하며 사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누리고 살아야 하는 지를 배웠다.
G: 뭐가 있을까? 하하. 나 자신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되었고 내가 어디서 왔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야 될지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무언가에 심취한 또라이가 되는 것이 좋다. 사실 어떻게 하다 보니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는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길잡이가 되어주는 형과 동생들이 생겨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보는 시각이 넓어지다 보니 생각이 확고해지고 예뻐지더라.
F: 흔히 말하는 힙합의 4대 요소가 있지 않나. 그런데 사실 4대 요소는 표면적으로 나눈 것들이다. 힙합의 요소는 너무나도 많다. 우리는 힙합이라는 문화 자체로 이해를 하고 움직이다 보니 얘는 MC고 누구는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힙합을 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인다.
N: 직업을 말할 때 그래피티 아티스트, 디제이, 이렇게 콕 찝어 하나로 규정 지어놓을 필요가 있을까? 비보이를 하다가 힙합이 좋아지면 다른 것들도 할 수 있지 않나.
Fihz와 Naughty 1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비보이 문화가 엄청난 인기몰이를 할 때가 있었다. 그 때의 분위기는 어땠나?
N: 일이 많아지나 보다 했지.
F: 일은 많았지만 속빈 강정이었다. 엔터테인먼트로만 인식되었고 너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N: 비보이들은 티비를 비롯해 어떤 매체에 나가더라도 비보잉, 힙합은 하나의 문화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 리버스 크루의 경우에도 정부를 비롯해 굵직한 기업들에게 스폰을 받았지만 케이 팝(K-Pop)이 뜬 뒤로는 하나씩 다 떨어져 나갔다. 뽑을 걸 다 뽑아 먹었는지 헤어진 여자 친구 마냥 떠나가 버렸다.
F: 그 시절에는 진짜 난리 났었다. 일반인들도 비보이 하면 한국이 최고라고 했다. 대신 그때도 그들은 그 속을 알기보다는 겉모습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또한 그 당시의 우리 비보이들도 이 문화가 오래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어야 했다. 길게 생존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데 누구는 어디 소속, 뭐 이런 걸 많이 따졌던 것 같다. 서로 눈에 띄려고 뽐내기 바빴던 시기였고 그런 것들이 비보이 문화를 오히려 병들게 했다.
N: 매체에서 몰아간 부분도 있다. 사실 여기저기서 띄워주기 전부터 한국의 비보이들은 전 세계의 대회에서 우승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금방 타올랐고 다시 금방 식었다. 비보이의 IMF라고 하면 감이 잡히나? 그때 수많은 비보이들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다녔다.
-원래 문화라는 것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은 아닌가.
F: 곡선이 떨어지면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 다시 끌어 올려야한다. 그것이 우리의 숙제다. 춤을 춰서 어떻게 생활을 하고 돈을 만들고 하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시기다.
-비보이들에게 크루와 팀은 어떤 개념인가? 한 사람이 여러 팀이나 크루에 속한 경우도 많이 봤다.
N: 비보이들 사이에서는 팀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크루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친한 친구들이 많다는 뜻이다.
F: BFW도 하나의 크루다. 원 안에 조그만 동그라미들이 생기고 그 안에서 또 동그라미가 생기는 것이 싫었다. BFW 멤버가 되었으니 이제 계약서를 쓰고 대회를 나가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같은 뜻으로 모인 친구들이다.
-배틀을 할 때 멤버가 겹치면 어떻게 되나.
F: 그럴 때는 자기가 더 끌리는 쪽에 나간다. 같은 크루라고 해도 맘에 맞는 사람끼리 하는 거지. 대회의 경우도 그렇다. 다른 비보이들의 경우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번 대회에는 이 멤버로, 다음 대회에는 저 멤버로 나가기도 하고 자유롭게 하는 편이다.
-세 멤버 모두 스케이트보드 샵의 스폰을 받는 것이 특이하다고 하면 특이한 부분이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F: 일 년 전부터 아오리(Aori) 스케이트보드샵과 움직임을 함께 하고 있다. 스폰서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그쪽 분들이 비보이 문화에 관심이 많은 듯하다. 이 문화가 좋아서 우리를 서포트해주니 마치 든든한 지원군 같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옷을 입히는 그런 딱딱한 스폰서 쉽이 아니라 함께 걸어가는 동료다.
N: 나도 이 년 전부터 케이던스(Kadence) 친구들을 만났고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함께 술을 마시고 친해지다 보니 서로 돕는 사이가 됐다.
F: 처음에는 스케이트보드 문화에 대해 잘 몰라서 스케이트 샵에서 도움을 준다 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고민이 됐다. 그런데 스케이터들의 라이프를 보니까 우리랑 비슷한 점이 되게 많더라. 표현의 방식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같이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열렸던 레드불 BC one, R-16과 같은 큰 대회를 보는 시선이 궁금하다.
N: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메이저 대회들이 이 문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언더그라운드, 혹은 로컬 씬 역시 이 문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서로 돕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G: 큰 대회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들이 많다. 많은 부분이 인위적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뭐가 좋고 나쁘고 단순하게 바라 볼 문제는 아니다. 분명히 명과 암이 존재한다. 다만 비보이마다 색이 달라 큰 대회가 안 맞고 불편한 친구들은 있다.
N: 예전에는 그런 대회만을 원하는 친구들과 충돌이 잦았지만 요즘에는 각자 서로를 응원한다. 이제는 큰 대회에 나가는 친구가 있으면 열심히 응원해주고, 또 언더그라운드에서도 행사가 있으면 서로 교류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TV에서 봐온 것들이 있기 때문에 비보이의 가장 큰 목표는 대회 입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N: 그래서 나 스스로는 비보이라고 단정짓지 않기로 했다. 그냥 비보잉도 하는 춤추는 애, 춤추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재들은 왜 베뉴(Venue)에서만 춤춰?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BAR나 끝내주는 음악이 나오는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게 큰 대회보다 더 재미있다. 으하하.
F: 큰 대회가 있을 수 있고 작은 공간에서 눈을 마주치며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이벤트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후자가 맞다고 생각했지만, 울타리를 없애고 나니 편견이 사라졌다. 결국 힙합 안에서 다 같이 즐기면 되는 거다. 우리가 남을 욕할만한 입장도 아니고. 그저 성향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움직임 안에서 누군 잘 났네 못 났네 하는 건 결국 제 얼굴에 침 뱉기다. 내려놓으니 편해졌다.
Gonzo
-서울을 제외한 비보이 씬은 어떤가. 지방으로 비보이 워크샵을 자주 가는 것 같은데.
N: 지방도 씬이 크다. 어린 친구들도 있고 지역을 대표하는 비보이도 있다.
F: 색 또한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비보잉이라도 지역마다 다른 색이 나온다. 우리도 지방으로 워크샵을 가서 오히려 배워온다. 단순히 비보잉을 가르쳐주는 워크샵이 아니라 서로 교감을 한다. 그렇게 직접 만나야 서로 몸으로 배울 게 있으니까.
N: 우리가 배우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G: 지방의 비보이들은 너무 순수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내가 변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스스로에게 미안해질 때가 있다. 이 사람들에게 내가 이런 얘기를 해도 되나?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내 얘기를 듣고 있는 그들이 더 멋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우리나라 비보이의 전체적인 흐름은 어디서 확인할 수 있을까?
N: 올 댓 브레익(All that break)이라는 웹사이트를 소개 하겠다. 그 사이트를 운영하시는 분들이 행사를 찾아다니며 행사 영상도 올리고 인터뷰나 간단한 강좌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최근 비보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영상을 그곳에서 확인한다.
-너티 원은 최근 ‘Battle Of The B-boy’라는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N: 원래 제목은 Battle Of The Year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비보이 대회, Battle Of The Year와 동명의 영화 / 대회가 열리는 동안 같은 장소에서 영화 촬영도 진행되었다.)인데 한국 사람들이 그 대회를 잘 몰라서 제목을 바꿨을 거다. 망했다는 소문이 있다 하하. 영화 한 편 찍자고 해서 재밌게 촬영했다. 나도 배우라고 프랑스에서 원하는 걸 다 들어주더라. 나는 BOTY에 영화 촬영차 왔고 곤조는 대회 참가자로 왔다. 나는 술 진탕 마시고 편하게 쉬었다.
-해외의 공연에 초대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N: 해외로 초청받으면 우리는 항상 후한 대접을 받는다. 비행기 표와 호텔도 제공 받는다. 유튜브로 보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서 그런지 많이 사랑해 주는 것 같다.
-포토그래퍼 찬과 비보이 본은 현재 활동을 쉬고 있는 것인가.
F: 얼마 전에 뉴욕에 갔다 와서 찬을 만났다, 우리의 활동이 꼭 의무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친구도 넥스트 레벨로 가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본은 그 친구 나름대로 브루클린에서 거주하며 BFW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고, Zulu Kingz의 멤버로서 소신 있게 활동하고 있다.
-본의 경우 한국의 생활이 힘들어서 떠난 것인가?
F: 그런 면도 있다. 그 친구이기에 대단한 결심을 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서 또 묵묵히 잘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파이팅을 하고 좋은 에너지를 만들려고 다짐한다.
-당신들도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N: 굳이 비보잉이 아니어도 외국에서 살아보고는 싶다. 평생은 아니어도 계속해서 여행하고 싶다. 중학교를 그만두고 18살부터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에 남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나는 여행을 통해 배웠다.
-비보이 문화는 언어의 제약이 약하기 때문에 외국과의 커넥션도 수월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는가?
N: 해외 비보이들의 열정을 보면서 또 다른 기운을 느낀다.
F: 서울이 아닌 지역에만 가도 이런 친구들이 있구나 하고 놀라는데 오죽하겠나. 나라가 달라지고 또 그 나라에서도 지역이 달라지면 엄청난 색깔의 차이가 생기더라. 다른 문화의 색깔을 느끼고 오면 나조차도 엄청 달라져있다.
N: 해외의 비보이 친구들이 생겨서 어느 나라를 가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 같다. 국제적인 친구들이 많아졌다. 하하.
– BFW에게 영향을 준 비보이는 누구인가.
N: 처음에 춤을 접했을 때는 미국 본토의 오래된 비보이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너무 많은 에너지를 주어서 비보이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내 춤과 마인드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외국의 비디오에서 보던 Boogie Brats, Rock Steady Crew, Skill Methods 등 너무 많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형들 중에는 Skill On The Groove, Rivers Crew, 오보왕, 고릴라 크루 등.. 아 우리나라에도 너무 많다. 또 이제 그런 우리나라의 팀과 내가 한 팀이 되고 그 뿌리에 내가 포함이 되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F: 동생들도 우리를 보면서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형들한테 영향을 받았으니 동생들한테도 영향을 주는 거지. 그래서 모든 행동이나 표현하는 과정에서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비보이라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더욱 겸손하려고 한다. 어느새 내가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보다 나를 형이라 부르는 사람이 많아진걸 알고 나니 더 열심히 해야겠더라.
G: 멀리서 바라보던 멋진 형들이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그게 제일 신기했고 그만큼 계속 변하지 않고 이어가야 한다.
-곤조는 영화배우에도 관심이 있다는데 정말인가?
G: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 좋다.
N: 우리는 춤추는 사람이지만 프리스타일러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 되는 사람들이다. 구미가 당기면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 울타리를 두고 있지 않다. 본질은 춤추는 사람이지만 이것을 통하여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도 많으니까.
F: 멈춰있지 않는 것이다. 스케이트보드도 그래피티도 다 마찬가지다.
N: 곤조의 경우 복싱도 하고 있다. 나도 음악이 좋아서 비트를 만들어 보기도 한다. 하고 싶은 것은 해야지.
F: 여러 가지 요소들을 시도해 보지만 그래도 춤 만한 것은 없더라. 춤이 가장 재미있다.
N: 그래서 춤이 우리의 본질인 것이다.
F: 어쨌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기다리지 말고 다가가야 한다.
-피즈는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와 같은 댄스와 뮤지컬이 섞인 퍼포먼스에 참여했었다. 주변 비보이들의 반응은 어땠나.
F: 거기에 참여한 덕분에 고릴라 크루의 멤버가 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나도 댄스컬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이건 그냥 표현의 방식이 달랐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지금에 와서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때 당시에는 혼란스러웠다.
-댄스컬도 비보이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N: 춤을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한다. 비보이에게는 그런 경험이 스스로에게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도 모르는 거니까. 처음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의아했지만 이제는 다시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G: 없는 것 보다는 낫다.
F: 오히려 그 때는 내가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의 과정인데 말이다. 그런 과정들이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오히려 더 편해졌다. 공연으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소신이 있다면 그 누가 욕을 해도 상관없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은?
N: 우리들은 언제나 놀면서 일을 만든다. 만나서 회의하고 이런 스타일이 아니다. 그냥 우리끼리 술을 마시고 놀다가 이거 해볼까? 하자! 이렇게 되는 거지.
F: BFW는 굳어진 찰흙이 아니다. 계속 빚고 있는 과정에 있다. 그게 어떤 모양이 될지는 우리도 모른다. 추측을 해보자면 앞서 말한 종합적인 영상이나 전시회 같은 활동을 할 생각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G: 친한 사람들과 또 여행을 하고 싶다.
-BFW가 알려주고 싶은 국내 비보이의 움직임이 있나?
N: 너무 많다. 그런 개체를 일일이 소개시켜주기보다 힙합이라는 문화 안에서 전체적으로 살펴봤으면 좋겠다. 우리의 소개와 상관없이 그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쭉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말로 관심이 있으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보고 느꼈으면 한다. 전체를 봤으면 좋겠다.
F: 모든 것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심이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기억에 남는 팬이 있다면?
N: 최근에 열린 대회였는데, 천안에서 오신 댄서 아저씨 팬 분이 생각난다. 엄청난 팬이라며 술을 사주겠다면서 계속 따라오셨는데 우리가 술을 무료로 교환할 수 있는 팔찌를 가지고 있어서 그냥 술을 드렸다. 이런 팬 분들을 만나면 따뜻함이 느껴진다. 너무 감사하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솔직히 각자 집에 있을 때는 한없이 고독한데 그런 사랑을 받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G: 최근 지방에서의 워크샵 모습을 담은 ‘Walk this way’영상을 보고 미국에 사는 친구가 나를 만나고 싶다며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비보잉과 관계없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말이었다. 나의 인생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하더라. 아직 쓰진 못했지만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겸손해지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BFW : BFW는 팀이나 크루가 아니다. 정해진 울타리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말 그대로 Brother From Whole.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이 문화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친구들이다. 여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가 잘하는 것, 우리가 최대한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을 친구들에게 권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앞으로도 겸손한 자세로 순수한 재미를 위해 걸어가는 친구들이 곧 BFW hood이자 BFW 정신일 것이다.
진행 ㅣ 최장민
편집/텍스트 ㅣ 권혁인 최장민
이미지 ㅣ 박진우
사진 ㅣ 김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