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속 조르바는 입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허공을 자유로이 가르는 손과 발 그리고 환희로 가득 찬 표정이 그의 혀를 대신한다. 지난가을, 전국을 들썩이게 만든 “스트릿 우먼 파이터”가 전했던 감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몸짓 하나하나에 담긴 응축된 열정과 감정들. 제아무리 섬세한 언어라도 모든 걸 전할 수는 없으며, 때로는 소리 없는 몸짓이 소란스러운 말보다 많은 걸 전하는 법이지 않은가. 스우파를 보며 덩달아 들썩였던 우리의 몸이야말로 이에 대한 방증일 테다. 네덜란드의 비주얼 아티스트 아누크 크라웃호프(Anouk Kruithof)는 세계 곳곳의 이색적인 댄스 스타일을 한데 모은 사진집, ‘Universal Tongue’을 통해 문화, 지역, 시대를 관통하는 인류 공통의 언어 ‘춤’을 조명했다.
문명사회에서 잊혀진 고대 부족의 전통 춤은 물론, 싸이의 ‘강남스타일 댄스’부터 일렉트로닉 음악에 고스(Goth) 문화를 가미한 ‘사이버고스(Cybergoth) 댄스’, 쓰레기통 앞에서 추는 ‘쓰레기 댄스’, 신생아들의 만국 공통 ‘유아 댄스(Infantile Dance)’ 그리고 해시태그 #crazydance로 광란의 춤 대결을 불러일으킨 ‘미친 댄스(Crazy Dance)’까지. ‘Dancyclopedia’로도 정의되는 아누크의 이번 사진집은 인터넷이라는 광대한 플랫폼에 존재하는 댄스 동영상을 기반으로 총 1000개의 춤을 선정하고 그 스크린숏을 이미지로 삼았다. 틱톡과 릴스가 지배하는 쇼츠(shorts) 시대에 발맞춘 유쾌한 작업물이 아닐 수 없다.
거대 생명체의 혀를 연상시키는 ‘Universal Tongue’만의 독특한 외형도 눈길을 끈다. 무려 2,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댄스 아카이브가 춤을 추듯 힘없이 흐느적거리는 모습은 ‘Tongue’의 의미를 재치있게 해석한 아누크의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듯하다. “우리는 춤추기를 좋아하고, 춤을 출 때 가장 멋진 것은 그 이유를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오늘 하루 힘든 일 혹은 기쁜 일이 있다면, 1000개의 춤 중 하나를 골라 신명 나게 춰보는 건 어떨까. 사진집은 ‘Universal Tongue’ 공식 웹사이트에서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