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생소한 이름일 수 있지만,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는 사진가이자 동시에 리처드 아베돈(Richard Avedon), 어빙 펜(Irving Penn) 등 기라성 같은 패션 사진가를 길러낸 교육자이기도 하다. 정식으로 사진 수업이 존재하지 않을 때부터 워크숍을 진행한 선구자라 할 수 있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때 워크숍을 NSSR(New School for School Research), 즉 사회연구학 신(新)학교에서 진행했다. 학교 이름만 봐도 얼마나 급조된(사진과 관련이 없는) 환경에서 수업이 열렸는지 알 수 있다. 패션 사진을 공부하다 보면 워낙 브로도비치의 제자가 많다 보니 이 학교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자세한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이곳이 대체 어떤 사회연구를 하길래 사진가를 이리도 많이 배출했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수업에서 그는 제자들에게 늘 사진은 ‘충격’을 주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본인이 내뱉은 말의 책임을 지기라도 하듯이 충격적인 패션 사진을 세간에 보여주었다. 1934년부터 1958년까지,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하퍼스 바자(Harper’s Bazaar)와 함께 일을 하면서 남긴 그의 사진을 보면 정말 ‘디자인적’이다.
요즘 보면 식상해 보일지 몰라도(패션 사진계 전체가 그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미지가 익숙하기 때문), 브로도비치의 등장 이전에 잡지들을 살펴 본다면 브로도비치의 전과 후로 나누어 발전을 이야기해도 무방할 정도.
그리고 1923년부터 1926년까지. 하퍼스 바자에서 작업하기 전에 그가 딱 3년간 발행한 잡지 ‘G’에는 그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패션과 잡지에 디자인적 발전을 일으킬 수 있었는지 그의 철학과 메시지가 잘 드러나 있다(잡지 제목이 워낙 단순하다보니 이 잡지에 관해 정리한 책의 제목을 대신해서 검색하면 원하는 자료를 좀 더 빨리 찾아볼 수 있다. 책의 제목은 ‘G: an avant-garde journal of art, architecture, design, and film, 1923-1926’).
이 잡지 속에 등장하는 폰트가 바로 브로도비치가 직접 개발한 ‘Albro’ 폰트이다. 이 폰트는 그의 사진만큼이나 잡지에서 사용되는 폰트의 국면을 뒤엎었다. 그가 개발한 여러 폰트 중 첫 번째이기도 한 이 폰트는 한 눈에 음표같이 리드미컬한 외형이 눈에 띈다. 글자 사이 간격에 균형을 조화롭게 유지하면서도 시각적 재미를 잃지 않는다.
이 폰트는 2007년에 아트 디렉터 폴 반스(Paul Barnes)에 의해 디지털화되었다. 하우스 폰트에서 폰트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맘에 든다면 구매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잡지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면, 이 폰트를 사서 브로도비치가 된 듯이 작업해 보자. 그는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접한 순수 예술 작품과 작가들을 모두 흡수해서 상업에 서슴치 않고 적용시키는 파스티슈(Pastiche)의 대가답게 우리의 시도 또한 아마도 환영해 줄 것이다. ‘충격’일 정도로 멋지기만 하다면.
이미지 출처|Pinterest, Itsliquid, Index Grafik, Domus, Fonts in Use, Fli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