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 1949년 쓰인 소설은 당시 기준으로 40년 앞을 내다본 1984년, 개인이 미디어에 의해 감시, 억압당할 것이라는 사상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같은 해 조지 오웰의 예견을 완벽하게 비틀고, 심지어는 예술로써 증명시킨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백남준이다. 1984년 당시 백남준은 인공위성을 활용하여 전 세계인들이 연결 짓는 생중계 TV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Orwell)’이라는 제목의 쇼는 미국, 프랑스, 독일, 한국 등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며 약 2천5백만 명의 사람들이 시청하는 등 매우 큰 주목을 받았다.
서울 태생의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은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미술사와 음악사를 전공했다. 이후 독일 유학을 통해 음악, 미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깊이 있는 공부를 시작했다. 1957년, 백남준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과 존 케이지(John Cage)의 음악을 처음 접하고 전위음악에 완전히 매료됐다. 이후 슈톡하우젠이 소속되어있기도 했던 서부 독일 방송(West deutscher Rundfunk Köln)의 전자 음악 스튜디오에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존 케이지를 자신의 아버지이자 스승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고, 그의 실험정신을 본받아 전위적인 음악 퍼포먼스를 시도하여 전위 예술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백남준은 그의 파트너이자 첼리스트인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과 함께 무대 위에서 첼로를 연주하며 옷을 벗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경찰에게 잡혀가기도 하고, 피아노를 도끼로 내려치는 등의 독특한 퍼포먼스로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행위예술을 시도했다.
전위 예술가로서 새로운 커리어를 나아가던 중, 부유했던 그의 집안은 당시 불안정했던 경제 상황과 부친의 사망으로 인해 사업 파산에 이르게 된다. 가난해진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다시 한번 재정립하며 “재미가 없으면 예술이 아니다.”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작업에 돌입한다. 1963년, 독일에서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이라는 제목의 첫 개인전을 열고, 동양사상과 현대문명의 상대성을 표현한 ‘TV 부처’, 비디오아트를 이용한 조형물 ‘다다익선’, 정치•종교인들의 도그마(dogma, 독단적 신념)를 위트 있게 풀어낸 ‘Dogmatic’ 등 다양한 비디오아트 작품을 선보인다.
그간의 작업을 바탕으로, 백남준은 마침내 새로운 형태의 작업물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1984년 1월 1일, 파리 퐁피두센터와 뉴욕에 위치한 미국의 공영방송 스튜디오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하여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생중계한 것. 해당 프로그램에는 존 케이지, 샬럿 무어먼, 어반 삭스(Urban Socks), 톰슨 트윈스(Thompson Twins) 등의 아티스트들이 출연했으며, 실시간 생중계와 편집 기술, 백남준의 아트워크를 활용하여 국경을 아우르는 유일무이한 예술 프로젝트로써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음악과 춤, 코미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퍼포먼스를 그래픽적 요소와 결합하여 독창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최첨단 과학 기술을 이용하여 예술성과 대중성을 아우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개최하는 이번 특별전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40주년을 기념한 기획전으로, ‘일어나 2024년이야!’와 ‘빅브라더 블록체인’ 두 가지 전시를 선보인다. 먼저 ‘일어나 2024년이야!’는 당시 쇼에서 뉴욕 출신의 뉴웨이브 밴드 오잉고 보잉고(Oingo Boingo)가 선보인 노래 “Wake Up It’s 1984″를 2024년의 시점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성난 말로 우리를 겁주나 거짓임을 우리는 알죠’라는 가사의 곡은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가상의 독재자 ‘빅브라더’의 개인에 대한 억압에 맞서는 내용의 곡이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아티스트 바밍타이거와 미술가 류성실이 당시의 쇼를 오마주하여 제작한 ‘SARANGHAEYO 아트 라이브’를 만나볼 수 있으며, 이는 40년 전 백남준이 제시했던 글로벌 네트워킹을 활용한 세계평화 메시지를 유니크한 비디오를 통해 전한다.
한편 ‘빅브라더 블록체인’은 당시 여러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현대판으로서 권희수, 삼손 영, 상희, 이양희 등 영상, 퍼포먼스, 음악과 같이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협업하여 백남준이 제시했던 예술적 관점을 2024년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이외에도 ‘TV 부처’ 등 백남준의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이처럼 백남준은 음악, 퍼포먼스, 조형물, 비디오아트 등 한계가 없는 형태의 작품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했으며, 각 분야의 정통성과 질서를 깨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조합했다. 이는 삶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1960년대 전위 예술 운동인 ‘플럭서스(Fluxus)’ 로 이어져 존 케이지, 오노 요코(Yoko Ono),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함께 20세기 예술 체제에 대한 ‘아방가르드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의 축복과 혼돈 속에 사는 현대사회. 지하철 속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풍경을 보다 보면 소설 ‘1984’의 예견처럼 정말 온 세상이 미디어에 지배된 것 같은 오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백남준이 40년 전에 ,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 남겼을 메시지와, 이것을 현재의 시각으로 풀어낸 다양한 작품을 통해 미디어가 우리에게 주는 가치에 대해 고민하고, 또 다른 기발한 상상을 해보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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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 일어나 2024년이야!
일시 | 2024. 3. 21.—2025. 2. 23.
장소 |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
참여작가 | 백남준, 바밍타이거 x 류성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 빅브라더 블록체인
일시 | 2024. 3. 21.—2024. 8. 18. 아트센터 개관 시간 동안 상시 상영
장소 | 경기 용인시 기흥구 백남준로 10, 백남준아트센터 2층
참여작가 | 권희수, 삼손 영, 상희, 이양희, 장서영, 조승호, 황 휘(HWI), 홍민키, 히토 슈타이얼
이미지 출처 | 백남준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