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중 ‘양놈’의 음악 재즈가 한국에 수입되었다. 김해송, 홍난파의 코리안 재즈 밴드(Korean Jazz Band) 등의 한국 재즈 선구자가 등장한 것도 이시기. 래그타임(Ragtime)과 스윙(Swing), 그리고 블루스(Blues)의 주변에서 발전하던 한국 재즈 문화가 주춤한 첫 계기는 40년대 발발한 일제와 미국 사이의 태평양 전쟁이다. 미국의 문화로 여겨지던 재즈가 일제에게 눈엣가시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 그 때문에 탄압 받던 재즈는 해방을 맞이해 엄토미 악단 등의 등장으로 어깨를 펴나 싶었지만 70~80년대 군사 정권 하 다시 업신여겨진다.
그러나 재즈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70년대 들어서 재즈 1세대 음악가가 트로트와 공존의 길을 모색할 동안, 그 유명한 재즈 클럽 야누스에 모인 작곡, 편곡가 이판근을 위시한 박성연, 최선배 등의 동호회는 재즈 외길을 걸으며 후일을 도모했다. 동시기 정성조는 최초 유학파 재즈인으로 자신이 이끄는 메신저스와 퓨전 재즈를 선보였고 류복성은 라틴 재즈를 들여왔다. 그리고 90년대, 선배 음악인이 꿈꾸던 한국 재즈 전성기가 찾아온다.
재즈를 지켜온 한국 음악인들의 사연은 많고 제각기 다르다. 그렇게 쌓인 그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렌즈에 담은 작가 노상현. 그는 2019년을 맞아 ‘Korean Jazz’ 온라인 전시를 시작했다. 1주일마다 음악인 한 명씩의 사진이 사진 스튜디오 업노멀(Abnormal)의 웹사이트에서 전시된다. 현재는 이판근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 중이니 직접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