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물로 둔갑한 일상의 멜로디, ‘옥류체로 쓰여진 노래’

시뻘건 핏빛과 굵게 휘어진 서체, 얼핏 스친 이미지는 북한 공공기관에나 걸린 선전 패널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맴돈다. 빨간 맛 가득한 문장은 국민가요라 칭해도 과하지 않은 엑소(EXO)의 ‘으르렁’ 후렴구를 발췌한 부분이다.

작가 신정균이 사용한 옥류체는 김일성이 일제강점기 백두산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 승리한 것을 기념해 만든 청봉체를 개량한 것으로, 북한 대중매체의 트레이드마크라 가히 말할 수 있다. 수준급의 정보 검색 능력이 보편화한 우리나라에서도 북한에 관한 정보는 쉬이 접근할 수 없는 미지와 묘한 불안감의 영역에 놓여 있다. 한국 사회 특유의 인식을 바탕으로, 작가는 형식이 본래의 내용을 지배하는 과정을 위트있게 풀어낸다. 

신정균은 분단 이후인 1980년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한국인들은 일상적으로 전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막연한 안전불감증을 지니기도 한다. 작가는 분단국가라는 대한민국의 타이틀과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사회 이슈를 재료로 영상, 설치, 아카이브, 드로잉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선보여 왔다. 북파공작원이었던 인물을 초청해 은신술 특강을 진행하는 장면을 담은 ‘은신술 특강’, 주민 가이드가 옛 안기부 자리인 석관동 일대를 소개하며 장소와 관련된 괴담이나 실제 사건을 설명하는 모습을 기록한 ‘석관 투어’ 등 연출된 상황이 마치 실제처럼 보이게 하는 ‘모큐멘터리’ 기법을 이용한 영상 작업 역시 인상적이다.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 남북 관계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놓여 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두껍게 깔린 오묘한 불안감은 종전이 선언된다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이러한 일상적 불안이 빚어내는 움직임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싶다면, 신정균의 웹사이트를 방문해 보자. 

신정균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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