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계절은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다. 더구나 사계를 지나는 한국에서는 그 감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 같다. 프랑수와 오사무(François Osamu)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스케이터이자 필르머 정필규도 이러한 의도였을까. 2년 전 공개한 스케이트보드 비디오 “여름방학”에 이어 “여름, 모라토리움(SUMMER, MORATORIUM)”이라는 영상으로 또 다른 여름을 이야기한다. 잔잔한 선율로 흐르는 영상은 스케이터 밥정일(이현신)의 일상을 조용히, 차분하게 훑는다. 청명한 여름의 색, 아스팔트를 뜨겁게 데우는 여름의 열기와 스케이팅을 다양한 구도로 잡아내는 필르머는 7분여간의 영상을 유려하게 이어나간다.
여타 스케이트 비디오가 집요하게 스케이터를 따라가며 그 트릭을 잡아내기 위한 노력을 펼쳤다면, 정필규는 그저 그 주변을 맴돌며 관찰한다. 부엌 한편에서 잡지를 보고 접는 인트로와 엔딩은 마치 한여한름의 낮잠, 공상이 아니었을까. 지리한 여름이 그리워질 때쯤 꺼내보면 좋을 프랑수와 오사무의 새로운 영상, “여름, 모라토리움”을 감상해보자. 아래는 영상에 관한 짤막한 질문과 필르머의 코멘트다.
여름방학에 이어 두 번째로 여름과 스케이터를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여름은 본인에게 특별한 계절인가?
여름은 아무래도 활동적인 계절이다. 비단 스케이트보더 뿐만이 아니라 겨우내 움츠려있던 모든 것들이 활동적으로 변모하는 시간이니까. 휴가, 휴양지 하면 아무래도 여름이란 계절을 상상할 수 있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현기증이 날 정도의 찌는 듯한 더위에 많은 것들이 얼룩지는 계절이라는 생각도 든다. 너무 더워서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지 않나. 얼룩진 사고, 그 사고회로가 조금씩 더뎌지는 시간들, 그 안에서 보는 새로운 것들이 있다. 그러니까 뭐랄까, 새로운 것들과 만나게 되는 설렘이 있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든, 공간이든, 생각이든.
잡지를 펼치고 접는 행위를 인트로와 엔딩으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잡지 자체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현신이에게 그냥 무언가 읽을거리를 준 것뿐이다. 잡지가 아니어도 괜찮았다. 그 자리는 원래 내가 담배도 피우고 뭔가 읽기도 하고 멍 때리는 공간이어서 이와 같은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시작과 끝이 같은 장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하나의 흐름처럼 편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