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디자이너 율리우스 레이드 아빈쿨라(Julius Raymund Advincula)가 신체 부위를 촬영해 만든 ‘바디 타입페이스(Body Typeface)’. 전통적 서체는 붓이나 펜 등의 필기구로 쓴 글자나 컴퓨터로 그린 글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지지만, 현대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전형적인 서체 개발 방식에 도전, 서체 디자인을 시각적 실험의 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바디 타입페이스 역시 이와 같은 의도에서 시작된 서체로, 36일 동안 하루에 한 글자를 디자인하는, ’36일의 서체(36 Days of Type)’ 챌린지의 일환으로 탄생했다. 바르셀로나 출신 디자이너 니나 산스(Nina Sans)와 라파 고이코에체아(Rafa Goicoechea)의 주도로 2014년에 시작한 해당 프로젝트는 글꼴과 레터링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들이 창의력과 새로움에 도전하는 장으로 발전했다.
2020년에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36daysoftype07’을 통해 총 13만 개가 넘는 작업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 가운데 아빈쿨라의 기괴한 작업이 특히 주목받았다. 그의 서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C는 배꼽, F는 목주름, O는 젖꼭지, 심지어 P는 손가락으로 귀를 접어서 만드는 등 반라로 적나라하게 거울 앞에 앉아 찍은 신체 부위로 서체를 만들었기 때문. 몇 글자는 아예 신체의 어떤 부위를 촬영한 것인지도 짐작하기 어려운데, 그는 작업의 신비로움을 위해 정확한 신체 부위를 밝히지 않았다. 아빈쿨라는 서체를 만들기 위해 올리브 오일과 물을 섞은 액체를 몸에 뿌린 후, 피부 주름과 몸의 뒤틀림에서 다양한 숫자와 글자 형태를 찾았다고.
단절과 고독의 시기로 기록될 2020년에 발표한 이 작업은 록다운 상황에서 디자이너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어디로 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됐다. 그는 “전통적 방식에서 벗어나 그림 자체를 찾는 과정을 탐구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가 ‘체형’과 ‘바디 랭귀지’였다”고 바디 타입페이스를 만들게 된 이유를 전했다.
이미지 출처 | Dez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