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미국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미국 최대 보험회사 ‘유나이티드헬스케어(UnitedHealthcare)’의 최고 경영자 브라이언 톰슨(Brian Thompson)이 총격으로 숨졌다.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범인은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을 꺼내 침착하게 발사한 뒤 자전거를 타고 사라졌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탄피에는 ‘부인(Deny)’, ‘방어(Defend)’, ‘증언(Depose)’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이는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기 위해 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특히 유나이티드헬스케어는 보험금 지급 거절률이 32%에 달하는 악덕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이를 증명하듯 온라인상에는 숨진 브라이언 톰슨에 대한 애도는커녕 보험사를 향한 조롱만이 가득했다. 2010년 ‘오바마 케어’ 이후 미국인들은 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여야 했고, 가입신청을 거절할 수 없는 보험업계는 보험금 지급 규정을 까다롭게 만들어 수익을 지키려 했다. 보험료를 지급하지 않는 민간 의료보험 회사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과 좌절감이 쌓이다 못해 폭발한 것이다.
6일 뒤인 월요일 새벽, 펜실베니아 서부 알투나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 들어온 한 남자를 보고서 누군가 “뉴욕에서 온 총격범 같지 않아?”라고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그 남자에게 마스크를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최근 뉴욕에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말이 없어지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가방 안에는 손으로 쓴 선언서와 3D 프린팅 권총, 소음기가 들어있었다. 용의자 루이지 만지오네(Luigi Mangione)가 체포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해당 맥도날드 지점은 온라인상에서 ‘별점 테러’를 받았다. 여기에 더해 “그는 범인이 아니야. 그때 나랑 새끼 거북이들을 구해주고 있었어”라는 댓글을 달거나, 그를 보호하기 위해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그의 인상착의와 비슷한 옷을 입고 모인 사람들이 ‘닮은꼴 콘테스트’를 여는 등, 만지오네를 의인으로 칭송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의 화려한 배경과 훤칠한 외모는 단숨에 세간의 안목을 끌었다. 26세의 만지오네는 볼티모어의 저명한 부동산 가문 출신이며 아이비 리그 중 하나인 펜실베니아 대학교를 졸업한 수재다. 명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만지오네가 6개월 동안 거주했던 하와이의 거주 공간 ‘Surfbreak’의 설립자에 따르면 만지오네는 척추 정렬의 이상으로 인해 허리 문제로 고통받고 있었다고. 또한 그는 책 리뷰 사이트 굿리즈(Goodreads)에 ‘유나바머’로 불리는 폭탄 테러범, 시어도어 카진스키에 대한 호의적인 글을 남기기도 했다.
반면,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의 한 직원은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톰슨이 가입자의 불만에 대해 조처하고 싶어한 몇 안 되는 임원 중 하나였으며 국가의 건강보험 상태와 회사 문화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얘기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만약 만지오네의 행동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와 보이지 않는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항거라면, “폭동은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의 언어”라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처럼 그의 심정을 일부 이해할 수도 있을 터. 그러나 폭력이 과연 지속 가능한 변화의 방식인지 재고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몫으로 남았다.
이미지 출처 | Benjamin B. Brau—Pittsburgh Post-Gazette Via AP, CNN, Talia Jane/ Story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