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6월, 영국의 웨스트 런던(West London)에 자리한 임대 아파트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의 원인은 냉장고 폭발로, 불길은 단 15분 만에 24층 전체로 퍼지며 72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를 냈다.
당시 소방당국은 소방차 40여대와 소방관 200명을 투입하여 진화를 시도했으나 아파트의 구조가 복잡하고, 건물 내에 최소한의 안전시설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에 불길을 잡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영국의 미흡한 화재 대비 규제의 실상이 만천하에 낱낱이 드러났으며,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지는 이 사건을 ‘영국판 세월호 사건’으로 칭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고층 건물 외벽에 가연성 소재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노라 약속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정부가 약속한 조치들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런던 시내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건물들이 있으며, 값싼 외장재를 이용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실제로 가디언(The Guardian)지의 보도에 따르면 현재 런던에는 그렌펠 타워와 동일한 외장재를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146채 존재하며, 지난 4개월 동안 외장재가 교체된 것은 고층 건물 3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같은 정부의 늑장 대책을 비판하고, 재발 방지책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비영리 단체 그렌펠 유나이티드(Grenfell United)는 자신들의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할 수 있는 게릴라 캠페인을 기획했다.
지난 6월 12일(현지 시각), 이들은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런던(London), 맨체스터(Manchester), 뉴캐슬(Newcastle) 지역에 위치한 건물에 자신들의 메시지를 새겼다. 그렌펠 타워 근처에 위치한 프린스테드 하우스(Frinstead House)에는 ‘그렌펠 사건 2년 후에도 이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없다’라는 글이 투사되었고, 뉴캐슬의 크루다스 파크 하우스(Cruddas Park House)에는 ‘그렌펠 사건 2년 후에도 이 건물의 방화문은 제기능을 못한다’라는 글이 덧입혀졌다. 맨체스터의 NV 빌딩(NV Building)에도 ‘그렌펠 사건 2년 후에도 이 건물은 아직 위험한 외장재로 뒤덮여 있다’라는 글이 투사되었다.
시민들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진행된 그렌펠 유나이티드의 강렬한 캠페인은 위 영상을 통해 더욱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들 외에도 래퍼 스톰지(Stormzy)는 작년 브릿 워어드(Brit Award) 공연에서 정부의 대처를 비판하는 가사를 선보였으며, 런던의 젊은이들은 그렌펠의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매거진 ‘오프 더 블락(Off the Block)’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들이 전하는 먼 이국땅의 이야기는 비슷한 아픔을 겪었던 우리에게는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목소리가 정부의 발빠른 대처로 이어지길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