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우린 타인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감정과 이야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게 되었는지, 뜨거운 머리와 차가운 가슴이 미덕이 되어 버린 시대에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풍요, 편리와 맞바꾼 우리의 체온은 지금 몇 도인지. 이 시점에서 일본 소설가 사카구치 안고(Sakaguchi Ango)의 작품 “어디로”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침으로써 진정한 자족에 이를 것. 나를 버림으로써 나를 찾아낼 것.’
그렇다. 희생 없는 예술 작품이란 생명력을 잃고 사멸하는 필연을 지니기 마련이다. 허나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것 중 시대가 강요하는 미덕에 반하며 진정한 희생을 실천하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집구석 먼지 쌓인 사진 앨범에서마저도 세련됨을 찾는 우리의 불감증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은 정녕 없을지. 물론 있다. 희생을 통해 자족을 이룬 어느 일상에 대한 진실한 시선을 통해 감화되면 되겠다. 그리고 지금 어느 예술가의 음악과 그의 헌신이 이룩한 세계가 그 시선이 될 수 있으며 직접 목도할 수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 6월 뮤직 프롬 메모리(Music From Memory)를 통해 팀 코(Tim Koh)와의 협업 앨범 [Salt And Sugar Look The Same]을 발표한 뮤지션 선 안(Sun An)이 다가오는 11월 10일 이태원 소재 코끼리에서 첫 내한 공연을 갖는다. LA를 기반으로 그래픽 디자이너와 사운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2012년부터 단단히 디스코그래피를 이어온 그. 기타와 신디사이저란 단출한 구성을 그만의 독특한 샘플링 기법으로 버무리며 구축한 그의 음악은 요즘 우후죽순으로 재생산되는 앰비언트 음악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전작 [What’s the Difference]를 비롯해 디스코그래피를 관통하는 진실된 희생과 탐구에 대한 실천과 그 모티프는 지극히 서정적이고 개인적인 감정과 감상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음악 앞에 원대한 이상과 대담한 담론도 필요가 없어진다. 그저 차가워진 우리 폐 운동을 촉진할 잔상과 잔향을 흘려보낼 뿐. 이러한 그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어볼 수 있는 이번 공연에 오비덕트(Oviduct)와 모과(Mogwaa)의 라이브 셋, 마크툽(Maktoop)의 디제잉이 함께할 예정이라고 하니, 선 안이 연주하는 선율과 주파수가 스친 우리 마음이 누구를 향해 갈지 지금 바로 확인해 보자.
Sun An 인스타그램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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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보
일시 | 2024년 11월 10일 일요일 18시 ~ 24시
장소 | 코끼리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우사단로 46)
입장료 | 예매 20,000원 / 현매 25,000원
이미지 출처 | Post Poe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