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Prada)가 2022년 봄, 여름 남성복 컬렉션 공개와 동시에 호응을 얻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라프 시몬스(Raf Simons)는 뜨거운 화두였고, 패션계 내에서 이번 컬렉션에 관한 호평이 오가는 중. 허나 우리가 이번 컬렉션에서 의상만큼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공간‘이다.
건축가 램 쿨하스(Rem Koolhaas)가 이끄는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의 싱크탱크로 프로젝트 리서치 작업과 독자적 디자인 작업을 해온 AMO가 프라다의 이번 2022년 S/S 남성 컬렉션 공간 설계를 맡았다. 우리에게는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대학교 미술관, 광교 갤러리아 백화점으로 익숙한 그 램 쿨하스 맞다.
프라다와 AMO 측은 이번 공간 디자인에 대해 초현실적인 인공물과 자연의 병치를 통한 피서지를 상상했다고 설명한다. 허나 위 공간을 몇 문장으로 논하기에는 부족할 터, 우리는 이 공간을 건축적 맥락에서 독해할 필요가 있다. AMO와 프라다는 오랫동안 합을 맞춰 왔지만 저번 시즌부터 기존과는 아예 다른 양상의 공간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팬데믹에 대응하는 패션계의 생존 전략으로 보이는데, 바로 건축적 실험으로 가득한 실험 공간을 적극 취하는 것. 한편 이번 22 S/S 컬렉션은 지난 2021 F/W 컬렉션의 공간과는 다른 스케일, 다른 구성, 다른 동선, 다른 시퀀스, 다른 재료와 질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OMA 초기의 작품과 맞닿아 있어 학계와 평단에 적잖은 파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들어와서 찾기 어려워졌지만, 램 쿨하스식 인용과 차용이 이번 설계에서 돋보였고 모든 그의 작품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예외 없이 인용과 차용은 분해되고 재해석된다. 다시 말해 이번 프로젝트는 OMA다움을 현시점의 소통 가능한 언어-문법으로 구사한 완벽한 단문(短文)이다. 폭 3m, 높이 3m로 고정된 모듈은 정형과 비정형이 결합된 평면의 기본 단위가 된다. 이러한 점은 알바 알토(Alvar Alto)의 MIT 베이커 하우스 기숙사(Baker House Student Dormitory, 1948)를 인용한 듯한데, 공간감을 주고 시각적 속도감을 낮추는 건축적 움직임을 주기 위함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열린계의 공간을 닫힌계로 둔갑시켜 그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렇게 구성된 평면은 약 80m 동안 벌어지는 시간적 경험과 결합하며 가로(街路)로 변모한다. 실제 프라다 측에서 설명했듯 통로로 설정된 이 공간은 필요한 만큼만 좁은 완벽한 가로다. 이 가로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빛은 상당히 중요한 요소인데, 여기서 빛을 수용하는 하는 방식이 르 코르뷔지에(Le Corbuiser)의 라투레트 수도원(Monastery of La Tourette, 1957)을 부분적으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라투레트 수도원의 빛 대포는 빛을 채색된 벽에 반사시켜 스스로 색을 입히는데, 이를 램 쿨하스는 부분적으로 인용해 주광색 빛을 벽과 바닥을 이용해 빨갛게 채색했다.
이번 설계가 더욱 특이했던 것은 네덜란드 무용 극장(The Netherland Dance Theatre, 1987)과 쿤스트할(Kunsthal, 1992), 시애틀 중앙 도서관(Seattle Central Library, 2004)과 같이 비교적 자신의 초기-중기 작품들에서 사용한 스스로 구축한 논리 언어와 조형 언어 또한 과감하게 차용한 흔적이 보인다. 바리솔 조명의 형태와 구성은 평면과 대응됨에 따라 동선은 자연스럽게 평면과 조명에 종속되게 한다. 결과적으로는 평면, 조명, 동선이 이 곳에서 동의어가 된다. 이에 따라 제3자(시청자)는 시각을 분산시키는 요소로부터 해방되어 의상만을 집중하는 순수공간에 놓이는 것. 인용과 차용, 분해와 재해석 과정을 거친 철저한 논리적 공간이 그렇지 않은 행위를 위해서, 그렇지 않은 것들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는 아이러니를 만든다. 이러한 모순의 에너지는 적색 벽만큼 강렬하고 초현실적이다.
라프 시몬스의 합류가 원인이었는지, 아님 언택트로 인한 물리적 제약의 해방이 원인이었는지, 무엇이 독립변수로 작용했는지는 모르지만 2021 F/W 컬렉션 이후로 AMO의 설계가 프라다의 컬렉션을 압도할 만큼 감동을 선사한 것은 자명하다. 아르누보(Art Nouveau)를 끝으로 희미해진 패션과 건축의 공생 관계는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와 램 쿨하스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 두 대가가 던진 화두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지금 바로 감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