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이 의복 이상의 의미와 기능을 점유하게 되면서, 의복이 함축한 자연스러움에 대한 가치는 비일상적인 아름다움과 자연에 대한 도전으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자연을 닮고 절기에 맞게 호흡하는 의복은 친히 눈과 피부에 안락한 법인 데 반해, 과열되고 과잉된 패션계를 닮은 필자의 옷장 속은 필자의 시상하부를 교란하며 땀구멍과 체질에 변화를 주었다. 때문에 자연스러움과 익숙함을 탐미하는 경향의 일환인 ‘자미추’(‘자연스러운 미를 추구’의 준말로 필자가 방금 만들었다)는 단순 패션계를 넘어 시대적 요구이며, 이에 대응하는 패션 하우스들의 등장은 결코 일시적인 병리 현상은 아니겠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어느 브랜드의 컬렉션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쿄와 뉴욕을 기반으로 브랜드를 전개 중인 바울스(vowels)가 25 SS 컬렉션을 공개했다. SS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사계절(컬렉션 타이틀 Shunkashuutou는 사계를 뜻하는 일본어다)이라는 주제 아래 폭넓은 룩과 실루엣을 선보인 이번 컬렉션은 전통 공예 이미지와 실용적인 기능 사이의 균형을 맞춰 자연스러움을 이룩했다. 주목할 점은 프레젠테이션 방식과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된 베뉴와의 연계성이라 볼 수 있다. 비발디의 “사계” 아래 서로 다른 4개의 세트에서 쇼가 펼쳐진 파리 국립기술 공예박물관은 바울스의 디렉터인 유키 야기(Yuki Yagi)의 비전으로 변모했다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일본 빈티지 스토어의 데드스탁 원단들을 재해석한 패치워크를 비롯해 70년대의 자수 디테일과 프린팅 디테일 등 과거 아카이브를 복각-재해석의 과정을 공예적으로 접근한 컬렉션에 대한 당위성이 되어주고 있다.
엔트웨프와 파슨스에서 패션을 사사한 유키 야기의 이력과 그가 일본의 예술 사조로서 모노하를 끌고 오며 선보인 고급 원단의 스트릿웨어는 최근 각광받는 과거의 아카이브를 현재로 소환시킨 재해석들과 큰 차별점을 보이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변함없이 돌고 도는 절기와 그 속에서 다른 구성원이 다른 모습으로 역사를 이어가는 우리 인간에게 의복으로서 가치를 제고하고 고취한 바는 동시대에 대한 따스한 심도와 광도를 담은 그의 시선을 특별하게 한다.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떠오르는 지금, 인간사를 항해하는 배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바뀌어도 같은 배라고 볼 수 있는지, 그 배가 혹시 돌고 돌아 같은 자리를 배회하는 희극적인 운명을 따르고 있지는 않은지 이번 바울스의 컬렉션을 통해 한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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